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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

드러난 첫 번째 결핍

by 써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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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따라 나의 결핍을 자주 마주한다.

회사에서 나온 지 7개월이 되었고, 서류탈락을 거듭하고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회사에 다녔더라면 회사가 힘드네 어쩌네 저 사람이 이상하네 어쩌네 하면서 보내고 있을 시간을 온전히 나와, 나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나를 둘러싼 관계들에 대해 생각하며 보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시간들이 쌓이면서 같이 적립되고 있는 것은 나의 결핍.


적립된 첫 번째 결핍.

나의 인간관계는 전부 포장되어 있다.


원래 나는 기질이 불안하거나 우울한 사람은 아니었다. 밝고 맑고 천진난만했다.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전학이라는 환경이 변한 탓에 불안과 우울이 생겼다. 서울에 와 처음 맺은 친구들과의 관계는 원활하지 못했다. 천진난만하게 스스로가 최고고 짱인 줄 알았던 13살의 어린아이 었던 나는 서울에 와서도 천진난만했다. 그런 나는 아이들의 타깃이 되었고, 어느 날엔 친구라고 여겼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그중 가장 친한 줄 알았던 여자아이에게 뺨을 맞았다.


볼이 빨갛게 부어 그 당시 신세 지고 있던 고모집에 돌아가야 했다. 나는 울지도 못했다. 그냥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고민했다. 그런 내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고모가 눈치챘는지 아빠한테 연락했다. 나의 아빠는 내가 우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분이셨다.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진 않겠다는 마음으로 어릴 때부터 자존심이 세던 나는 아빠 앞에서는 절대 울지 않고 밖에서 우는 아이였다. 그날은 참지 못하고 아빠 앞에서 엉엉 울었다. 그때 내 마음은 그냥 덤벼볼 걸, 한 번이라도 나도 똑같이 해볼걸. 속에 화가 많은 나는 그 후에도 성인이 된 지금까지 가끔 그때 꿈을 꾼다.


나는 애써 괜찮은 척 다음날 학교에 가서 나보다 먼저 그 일을 겪었던 나처럼 씩씩했던 친구에게 먼저 다가갔다. 혼란스러운 줄도 모르고 그냥 본능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떻게든 티 나지 않게 어울리려고 했다. 그러다 담임 선생님이 부르셔선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으셨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냥 견뎌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그래야 지나갈 것 같았다고 얘기했던 것 같다. 사실 그런 디테일한 내용까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내 대답을 듣고 선생님이 어이없어하는 반응을 보였던 기억만 남아있다. 돌이켜보면 그렇다고 딱히 좋은 선생님도 아니셨나 보다. 무언가 해결해주진 않았고, 그저 나 혼자 애쓰고 다른 친구를 찾아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졸업할 때쯤 학급에서 발행하는 책자에 그 친구들이 나에게 미안하다.라고 적은 문구만 마음에 남아있다. 뭔가 화해를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다음에 또 그런 일들이 벌어지진 않았으니, 내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었다 싶다.


그 후에 들어간 중학교에서도 나는 친구관계에서 실패했다. 처음 사귄 친구 무리에서도 나는 떨어져 나와야 했다. 초등학생 때처럼 맞진 않았지만, 마음이 많이 다쳤다. 그즈음부터 자주 죽음을 생각하게 됐다. 얼마 전 중학교 때 썼던 일기장을 발견해서 아련한 마음으로 보다가 다 못 보고 덮어버렸다. 너무너무 우울해서 도저히 읽을 수 없는 글들이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나 모르겠다.


나는 그때부터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는, 사랑받을만한 나, 좋아할 만한 나로 포장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주 버거웠다.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며 의도하지 않게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 그 덕에 센스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었지만, 이젠 그게 상대를 위한 게 아니라 내가 상처받고 싶지 않음에서 비롯된 감각이라는 걸 안다.


물론 그 후에 좋은 친구들도 만났다. 하지만 무언가 마음이 어렵거나 울고 싶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 그게 요즘은 사무치게 외롭게 느껴진다. 적당한 말들로 포장해서 내 마음의 무게보다 조금 더 훨씬 가볍게 만들어 전달한다. 사실 나조차도 나를 온전히 받아내기 어려운 것 같다.


온전하지 못한 마음이라 나는 선 긋는 사람이 되었다. 적당히 상대를 보며 선을 긋게 된다. 그럼에도 그 선을 더 가까이 긋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럼 나는 마음을 더 내어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마음을 내어주고 나면 그만큼 받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와 상대의 기준이 다르기에 충분하게 여겨진 적이 없다. 결국 나는 또 실망한다. 그리곤 여러 발 물러나는데, 아무도 상처 주지 않았지만 나 혼자 상처받게 된다. 그러면서 오만가지 생각을 하곤 관계를 정리한다. 어쩌면 회피인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게 회피라고 해도 지금은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은 그것밖에 얻지 못했다.


그 모든 게 내게 결핍이 되었다. 이 결핍을 처음 마주하곤 외면하고 싶었고, 사실 외면 했던 것 같다. 내게 상처였던 관계를 다 덮을 만큼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중엔 내게 귀한 친구가 되어준 이들도 있지만, 다 각자의 생이 우선이므로 결국엔 내가 채워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조급한 마음에 빨리 해결하고 싶은데, 사실 그렇게 해결될 문제들이 아님도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꺼내어 대나무 숲을 만들어 본다. 이 숲에서 부는 바람이 다시 내게 돌아와 새로운 무엇을 속삭여주길 바라면서. 혹은 나와 비슷한 결핍이 있는 사람에게 새로운 무엇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그때를 견딘 것도 내겐 용기였고, 그때를 꺼내어 남기는 것도 내겐 용기였다. 결국 나는 나의 결핍 앞에서 용기를 낸다. 어쩌면 결핍은 용기의 다른 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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