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부정적인 평가를 대하는 자세
7개월 정도 쉬면서 쫌쫌따리 취준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생각보다 면접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게 나의 현실이었다. 가만히 주저앉아 세상을 마음껏 미워하다 보면 기운이 영 나질 않았다. 그렇게 바닥에 처박혀 있는 날이 많아질수록 나는 더, 더, 아래로,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불현듯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7년 전에 땄어야 할 자격증이었는데, 그때 일하던 카페의 매니저가 학원 다닐 필요 없다. 도와줄 테니 다니지 말고 따라.라고 하여 그 말에 솔깃해 등록해 둔 학원을 취소했다. 그리고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생각도 취소됐다. 하하.
바로 시작할 수 있는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나라의 지원을 받고자 국비지원과정으로 알아봤다. 그렇게 지난 2월 말부터 저번주까지 자격증을 따기 위해 바리스타 학원을 다녔다. (이번 주 토요일에 시험이 예정되어 있어, 아직은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지는 못했다.)
내가 다닌 학원은, 어린이대공원역 근처에 있는 이름이 긴 학원이었다. 15명이 정원인 수업에 10명의 수강생이 모였고, 그다음 날 2명이 더 추가되어 총 12명의 수강생들과 한 달을 함께 배웠다.
커피에 대한 이론도 조금 배우고, 에스프레소, 스티밍 실습을 자격과정에 맞춰 배웠다. 나는 카페에서 독학으로 라테아트를 했던 경험이 있어 쉽게 생각했는데 그게 벌써 7년 전이니 마냥 쉽게 원하는 만큼 나오지는 않았다. 이래서 사람이 겸손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삶에서 배웠다.
주 3회, 아침 10시까지 수업을 가기 위해 늦잠 자던 몸을 일으켜 부지런이 움직였다. 뭔가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더 이상 바닥으로, 바닥으로 꺼지지 않을 수 있었다.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고. 또 기회가 올 거라고. 일단 할 수 있는 것들에, 하고 싶은 것들에 집중하자고.
그래도 금세 머신에 적응하고 감을 칮아, 마지막 수업에는 원하는 스티밍 폼과 아트를 만들어냈다. 그것만으로도 약간의 자신감이 붙었다.
좋은 마음과 아쉬운 마음을 담아 종강하자마자 블로그에 자세하고 꼼꼼히 후기를 작성했다. 그 글을 써내는데 2시간이 넘는 시간을 들였다. 당장 누워서 쉬고 싶었는데, 꾸역꾸역 후기를 채웠다. 그리고 다음날 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심지어 주말 저녁이었다.)
"후기 써주신 거 잘 봤어요. 근데 죄송하지만, 강의 자료가 너무 많이 드러나있어서 나중에 저작권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조금 수정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기분이 약간 상했지만, 그럴 수 있다 싶어 문제가 될만한 내용을 삭제하고 연락했다. 그랬더니 다시 전화가 와선 "아직도 커리큘럼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라고 했다. 그래서 정확히 뭐가 문제인 거냐 물었더니, 전체적인 글 흐름에서 커리큘럼이 너무 잘 보인다고. 이경우 저작권으로 나중에 나한테 피해가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커리큘럼에도 저작권이 있나? 싶었다. 그래서 "커리큘럼에도 저작권이 있나요?"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다른 학원에서는 하지 않는 방식이고, 본인들이 만들어서 하는 거라고.
머릿속에 물음표가 계속 떠다녔지만, 학원에서 직접 연락한 것도 아니고, 나와 한 달간 수업한 관계가 있는 강사님을 통해 연락한 거라 좋은 게 좋은 거다 생각하기로 했다.
"정확히 지금 올라가 있는 내용에서 이런 이런 부분이 문제가 되는 거죠? 다른 부분도 수정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한 번에 말씀해 주세요."
"아, 제가 아까 모호하게 말씀드린 것 같네요. 이런 이런 부분과 부정적으로 작성해 주신 내용도 좀 수정을 해주십사..."
역시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 말하려고 커리큘럼, 저작권으로 밑밥을 깔았겠지. 그마저도 학원을 생각해서 순화시킨 표현들이었다. 카푸치노로 시험을 봐야 하는데, 학원에서는 우유 100%로 실습하도록 제공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한정적인 재료비로 많은 연습을 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우유에 물을 섞어 실습하도록 했다. 그게 아쉽지 않을 수강생이 어디 있을까. 누구라도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마지막 실습에서는 한 번이라도 실제 우유로 실습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했다.
에스프레소 실습에서는 계속 맛을 봐야 하는데 맛만 봐도 좋은 원두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맛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 하고 표현한 내 생각이 학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수정해 달라고 했다.
아무리 학원이라지만 위생적이지 않은 환경이었다. 계속 설거지해서 사용해야 하는 수세미는 거의 너덜거리기 일쑤였고, 그마저도 슬쩍 수세미 좀 바꿔주시면 안 되냐고 말하고 나서야 교체해 준 것이었다. 수세미도 그런데 배수구가 깨끗할 리가.
매장도 운영하고 있는 학원이라고 들어서 더 아쉽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용까지는 심지어 적어 놓지도 못했는데, 이 정도로 돈 내고 수강한, 다음 주에 그곳으로 시험 보러 가야 하는 수강생에게 주말 저녁에 강사를 통해 전화할 일인가 이게.
통화를 하다 보니 화가 났다. 내가 학원에서 뭔가를 제공받은 것도 아니고, 내가 내 돈 내고 학원 다니고 후기 좀 솔직하게 적겠다는데, 그걸로 이렇게까지 불편하게 만드나? 그래서 그냥 글 내리겠다고 했다. 사실 그렇게 얘기하면 아니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덥석 그게 좋을 것 같단다. 솔직히 너무 쪼들리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을 곱씹다가 문득 받아들이는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나 또한 부정적인 누군가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고깝지 않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일단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것은 변명이 되고, 나를 방어하기 위한 또 다른 공격이 되곤 한다.
물론 모든 부정적인 평가들을 다 받아들이고 감내해야 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어쩌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공을 들여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그게 아니라면 아닌 이유에 대해 잘 표현할 수 있어야 성장할 수 있는 것 같다.
어쩌면 학원에서도 그렇게밖에 반응하지 못한 건, 그냥 그 정도의 깜냥이라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다른 방법과 설명이 있었을 텐데, 그저 그 평가를 삭제하는 것에만 너무 집중하지 않았나? 그래서 원하는 바를 얻었으니, 그냥 그 정도로 만족할 것인가? 이것도 내가 판단할 문제는 당연히 아니겠지만, 나는 조금 다른 성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받고 지금까지 놓지 못하고 계속 스트레스받다가 결국 이렇게 쏟아낸다. 지금은 나도 마음의 그릇이 이 정도 밖에는 못 되는 것 같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이후로 나의 깜냥은 그보다는 더 넓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