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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이 같은 와인

Rocim Alicante Bouschet 로심 알리칸테 부셰

살다보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 채 꾹꾹 눌러담아 억지로 삼키는 일이 반드시 생긴다. 말티즈같이 참지 않는 삶을 살고 싶지만 인간사가 어디 그렇게 되겠는가. 


진정으로 화를 내고 싶을 때조차 상대와의 관계와 앞으로의 껄끄러움을 감당할 수 있을지, 누가 더 아쉬울 것인지 계산부터 하게 되는 내 모습은 마치 이미 사회라는 검은 색상에 염색되어 더이상 신나는 색상으로는 바꿀 수 없는 사람같아 기분이 좋지 않아진다. 


'저는 뇌와 입이 직통이라서요 하하하' 라며 호탕하게 웃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멋지다고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실제로 그들은 꽤나 솔직하고 직선적인 화법을 구사한다. 그렇다고 무례하거나 뚱딴지같은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니 그 말처럼 뇌와 입 사이에 장기 몇가지를 포기해도 얻을만한 꽤 괜찮은 능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나는 뇌와 입 사이가 마치 미로처럼 복잡해서 쉬이 말문을 트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왠지 어릴 때 많이 혼나서 그런 건 아닌가 괜시리 선생님, 부모님 탓으로 돌려보곤 한다. (그 분들 속이 탄 것은 모르쇠)



와인에서도 저런 사람같은 포도가 있다. 


그 전에 잠깐,


화이트 와인은 청포도로 만들고, 청포도의 속살은 하얗다. 아니 투명하다. 그래서 화이트 와인은 투명하고 밝은 색상을 띈다.


그리고 레드 와인은 적포도로 만들고, 적포도의 속살은 빨갛...지 않고 청포도와 똑같이 투명하다. 


?!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그냥 넘어가는데, 적포도를 짜도 청포도와 마찬가지로 투명한 즙이 나오기 때문에 레드와인의 붉은 색을 위해서는 포도 껍질을 사용하게 된다. 이 부분은 양조와 관련된 부분이니 일단 넘어가고..


하지만 드물게 붉은 알맹이를 갖고 있는 '진짜' 적포도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알리칸테 부셰다. 


그래서 나는 이 와인을 마시면서 묘한 매력을 느꼈다. 마치 내가 뇌와 입의 핫라인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했듯, 이 포도품종도 그런 삶을 살아왔을까? 겉과 속이 다른 일반적인 적포도들의 부러움을 사면서...



Herdade do Rocim Alentejo Alicante bouschet 

Portugal, 14%

짙은 컬러의 존재감 그리고 꼬소한 레드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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