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판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고기의 비명과 구석 어딘가에 달려있는 스피커가 아무렇게나 쏟아내는 음악, 그리고 상대의 귓가에 어떻게든 닿으려고 요동치는 성대들의 합창. 이 모든 난관 너머 선명히 드러나 있는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어느 모임에서였다. 눈은 앞의 사람을 보고 있지만 신경은 시선이 닿지 않는 그녀에게로 온통 쏠려 있었다. 뭔가 사람이 따로 움직이는 더듬이 2개를 가진 동물이었다면 단박에 내 상황을 들켰으리라 생각이 들 때였다.
“채-챙.”
중구난방처럼 보이는 그 순간을 일순간이나마 교통정리해 주는 것은 유리잔들의 힘찬 만남이었다. 짧고 높으면서도 간결한 울림은 귀와 손을 통해 각각 전달되며 모든 이의 기운을 갈무리한다. 나 역시 다른 한 곳을 향해 기울어있던 더듬이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유리잔의 안전을 도모했다. 사고를 쳐서 불필요한 주목과 내 이미지의 하락을 자처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녀를 가끔씩 바라볼 때에는 꼭 그 방향에 볼일이 있거나 어떤 이벤트가 발생한 경우에만 쳐다봤다. 마치 ‘어쩔 수 없이 그쪽을 보게 되었다.’라는 알리바이를 탄탄히 세워 괜한 피의자 신분이 되지 않도록 한 셈이다. 그러나 테이블 위에서는 나름의 용의주도함으로 치장했지만 정작 보이지 않는 아래에서 달달 떠는 내 다리는 두근거리는 심장 상태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아무도 보지 못했겠지만.
“잠시 화장실 좀...”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내 등 뒤로 지나가는 그녀의 발걸음이 유난히 천천히 느껴지는 건 내가 그녀에게 갖는 관심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서 생긴 중력 효과일까. 마치 순간의 시간을 휘어버릴 정도로 말이다. 당연히 시간이 느리게 간 것이 아니다. 그녀는 정상적으로 지나갔지만 그 빈자리에 남겨진 향이 나의 감각기관에 지대한 오류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마치 그녀가 그 자리에 머물러 서 있는 듯한 착각. 그래서 시간 감각이 순간 망가진 것이 아닌가 싶다.
여기저기서 계속 불고문을 당하는 고기와 지근하게 끓고 있는 된장술밥의 냄새 따위는 회 밑에 깔린 무채만도 못할 정도로 그녀의 향은 강렬하게 나의 모든 것을 정지시켰다. 샴푸인가, 향수인가, 아니면 화장? 그것도 아니면 핸드크림? 향의 근원을 너무나 알고 싶은 나머지 그만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허망하게 사라진 내 등 뒤의 빈 공간에 코를 들이댈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도 그녀의 등을 바라보지 않은 나를 아주 칭찬한다.)
슬프게도 그날엔 그녀와 대단한 접점은 만들어내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내가 살고 있는 상봉동에 막 이사를 왔고 이름은 ‘김미진’, 와인을 좋아한다는 점까지는 알게 되었다. 뭐.. 나에게만 알려준 건 아니지만. 그리고는 누구에게나 다음을 기약하는 형식적인 아쉬움을 주고받은 것이 전부였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대신 핸드폰을 들었다. 그녀의 향이 도무지 사라지지가 않아 이대로는 잠에 들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가입되어 있는 카페에 그녀를 검색했다. 그동안 쓴 글과 댓글, 그리고 ‘좋아요’를 누른 흔적들을 따라가며 그녀라는 퍼즐조각을 하나하나 꿰맞춰보려 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는 무관심한지, 그중에서도 내 글에는 반응을 보였는지는 빠짐없이 체크해 보며 퍼즐에 내가 들어갈 가능성에 대한 미래를 홀로 점쳐보았다.
‘아아. 나는 이미 그녀에게 빠져버린 걸까. 이제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정중하게 연락을 취해볼까. 시간이 너무 늦지 않았나. 뭐라고 말을 걸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손가락까지 물어서 사고를 치려던 때 나는 핸드폰을 놓치고 말았다. 그녀에게서 먼저 메시지가 왔기 때문이었다.
[상봉동 김미진]
“안녕하세요. 혹시 상봉동 와인바 추천할만한 곳 아세요?”
*상봉동 미진이: 부르고뉴 와인 마을 중 하나인 Chambolle-Musigny(샹볼 뮈지니)를 부르는 한국인들의 애칭. 이곳에서 만든 레드 와인은 다른 부르고뉴 와인에 비해 우아하고 섬세하며 무엇보다 여성스러운 정교함과 부드러움으로 좋은 평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