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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Sep 04. 2020

어른스러운 말

 



 같이 모임을 하던 교회 전도사님께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교회를 가지 못한지도 벌써 반년이 다 되어가는 마당에 반가운 소식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참 좋아하고 잘 따르던 언니의 아버지가 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다며 함께 기도를 부탁한다는 내용. 언니가 직접 소식을 전하기에는 마음이 쉽지 않아 대신 부탁드린 거라 했다. 메시지를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아주 멀리 있어야 할 일이, 실은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꼭 자동차 거울에 붙은 경고 메시지 같았다.


 나이가 들면 삶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 만큼 마음의 힘도 세지는 걸까. 그래서 이따금씩 마음이 다 무너질 것 같은 버거운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시간의 흐름은 사람이 멈출 수 없는 것이고 그 섭리에 따라 모든 생명이 붙은 것들은 시들어간다. 어제 선물 받은 꽃은 며칠 지나지 않아 말라가고 맛있게 먹은 음식도 조금 두면 부패한다. 아는 이들의 병환이나 그들의 가족들의 장례 소식을 듣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시간의 흐름을 통제할 수 없는 존재의 미약함에 대해 생각한다.
 


 올해는 결혼식도 장례식도 참 많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내 이름 앞으로 된 청첩장을 받았을 적엔 모든 게 어설펐다. 축하한다는 말만 몇 번을 되풀이하다 보니 내뱉는 스스로조차 진심처럼 느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제는 축하의 말들은 화려하기만 하다. 역시 결혼식 하객도 경험이 많아야 잘하는가 봐. 꼭 결혼뿐만 아니라도 축하해줘야 마땅한 수많은 일들에 이제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안다.


 익숙하지 않은 건, 익숙해질 수 없는 건 슬픔과 고통 앞에서의 말이다. 상대와 눈을 마주치는 나의 표정은 어때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온기로 그 손을 잡아줘야 할지 혹은 말아야 할지, 모든 것이 어렵다. 얼마 전 참석한 장례식에서 고작 내가 했던 말이라고는 끼니를 잘 챙기시라는 거였다. 와주어 고맙다며 잡는 손을 같이 꼭 붙드는 것뿐이었다. 그것 외에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몰랐다. 어떻게 하는 것이 어른다운 것일까. 무슨 말이 어른스러운 말일까. 사람을 생채기 내는 것은, 실은 큰 게 아닌 아주 작은 말들이라 이미 아픔을 겪는 사람의 앞에서는 말은 더욱 갈피를 잃는다.  


 의연한 척하는 게 어른스러운 것일까. 담담한 어조와 담백한 문장이 어른의 말일까. 얼마 전 내 생일을 축하한다며 다정하게 건네 온 언니의 말이 메시지 창의 마지막 대화였다. 여러 번 말들을 고쳤다 지웠다. 아끼는 이들의 아픔에 의젓하게 굴기엔 나는 아직도 어린애라 눈물을 겨우 참아가며 메시지를 보냈다. 보고 싶다는 말은 하나도 멋지지 않았지만 그게 내가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하나님, 낫게 해 주세요. 여덟 살, 병실 침대에 누워 있던 아빠를 보고 엉엉 울었던 그 날과 같은 기도를 한참이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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