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를 시작하며
여행은 대체 뭘까. 뭐길래 그걸 읽기만 해도 설레고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걸까. 글로벌 역병이 힘든 건 이제는 피부와 다를 바 없는 마스크 때문도 아니고 감염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몸을 사려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원할 때 원하는 곳으로 떠나지 못한다는 것. 그 사실이 이따금씩 마음을 갑갑하게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여권을 꺼냈다. 되도록이면 한국과의 시차가 큰 곳으로 아무쪼록 긴 시간 동안의 여행을 위해. 장기 휴가에 너그러운 회사와 팀장님들을 만나왔던 덕에 얻은 행운이었지만 이것도 19년도까지의 이야기다. 충분히 나돌아 다닌 것 같은데 고작 2년 발 묶인 게 뭐가 그렇게 억울한 건지, 나는 누구보다 엔데믹을 기다렸다. 점점 완화되는 출입국 규제들과 그에 따라 조금씩 해외여행을 떠나기 시작하는 유튜버들, 신혼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을 보면서 발을 굴렀다. 나도. 나도 나갈래. 나도 갈래.
차라리 태어나고서 단 한 번도 해외를 못 나가봤으면 또 모를까. 어렸을 때 엄마 아빠와 손 잡고 떠났던 두 번의 해외여행이 내겐 그토록 강렬했나 보다. 성인이 되길 기다렸다. 혼자 떠날 수 있을 때를, 그래도 괜찮은 때를. 물론 성인이 된다는 게 만능카드는 아니라, 나이가 먹었다고 여행이 뚝딱 가능해지는 건 아니었다. 학비는 아득했고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사방에 산적해 있었다. 그런 내 주위 사람들은 다들 짠 것 마냥 방학만 되면 어디론가 떠났다. 몇 월 며칠부터 몇 월 며칠까지 연락이 어렵습니다. 카톡 상메는 그런데 프사는 일자별로 바뀌더라고. 그걸 구경하고 감탄하고 부러워하면서 다짐했다. 언젠가 내 힘으로, 반드시.
내 힘으로. 그게 얼마나 멋진 말인지 모른다. 물론 그걸 배우는 과정이 좋기만 했다면 완전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홀로, 내 힘으로 원하는 것들을 하나씩 해치워 가는 과정의 쾌감을 안다. 첫 혼자 해외여행이 그랬다. 알바를 하고 생활비를 충당하는 와중에 틈틈이 모은 적금으로 끊었던 뉴욕행 비행기 표. 그 설렘과 떨림은 앞으로 어떤 여행에서도 맛볼 수 없을 거다. 간절한 마음은 무엇이든 해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누군가에겐 고작 여행을 떠나는 일이지만 적어도 나에게 하나의 성취였다.
최소한의 경비로 떠난 여행이라 유명하다는 뉴욕의 스테이크는 구경도 못했고, 가성비 최고의 베트남 음식점에서 남은 음식을 포장해 숙소로 돌아와 데워먹기도 했지만 여전히 내 인생 여행지가 뉴욕인 이유다. 우연히 동행하게 된 친구와 브루클린의 야경을 보며 나눠 먹은 아이스크림과 숙소에서 만난 언니가 자신이 티켓 값을 내주겠다며 함께 오른 탑 오브 더 락에서 본 뉴욕의 전경. 여전히 생생하게 만져질 것 같은 감각. 타임스퀘어 한가운데 서서 마음을 먹었었다. 세상은 너무 넓고 내가 봐야 할 것이 도처에 널려 있으니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나는 직접 보면서 살아야겠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동네 마실 가듯 떠나던 유럽 배낭여행을, 마음속에 오랜 시간 묵혀두고 있던 소망 하나를 꺼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지금이 가장 필요한 때일 것 같아서. 떠나야 할 이유는 이토록 빈약하고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몇 배는 더 되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행지에 올랐다. 적은 이유를 꼭 붙들고 무언가를 해내는 것이 생각지 못한 근사한 일을 만나게 할 거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나는 한 달짜리 방학을 떠났다. 이번에도 되도록 멀리, 시차가 많이 벌어지는 곳으로. 너무 흔하게 발에 차이는 이름의 도시들이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 런던과 파리의 여름을 숨 쉬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