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도 Apr 18. 2024

05. 사람의 바다에서 너희의 작은 섬을 만들어라.

‘섬 만들기’의 법칙


어렸을 때 너희들은 유치원을 여러 번 옮겨다녔다. 당시의 나는 너희들이 새로운 환경에서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잘 적응한다고 생각해서 유치원 옮기는 일을 큰 일로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그때만 해도 나는 회사를 다녔기 때문에 퇴근 후 늦은 저녁에서야 너희를 만날 수 있었다. 저녁에 만나는 너희들은 늘 깔깔거리며 웃고 있어서, 나는 하루하루 너희가 느꼈던 모든 감정들을 알지 못 했다. 무덤덤하게 지나간 것은 우리에게 좋은 일이었지만, 너희의 수많은 표정들을 다 보지 못했던 것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너희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낯선 환경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말이다. 곁에서 본 너희들은 학기가 시작하기 전이나 새로운 환경을 만났을 때에 굉장히 많이 불안해하고 긴장하곤 했다. 사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 또한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 가게 되었을 때 매우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처음에는 떨리는 게 당연해. 그래도 너희는 잘 해낼 거야. 걱정되면 그냥 걱정해도 돼. 하지만 난 알아. 너희는 잘 해낼 거라는 걸."이라고 말해주었다.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 들어갈 때, 우리는 누구나 긴장하고 불편해한다. 나는 회사를 여러 번 옮기면서 이런 '낯선 사람들의 바다' 같은 낯설고 불편한 환경을 자주 만났다. 모두가 처음 보는 낯선 얼굴에, 낯선 책상과 회의실, 낯선 분위기와 업무 방식. 이런 낯선 것들에 나를 적응시키려면 적어도 한 달은 필요하다. 그럼에도 사실 나는 낯선 곳들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이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어떤 갈등을 겪고 있고, 어떤 상처를 받고 있을까?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하는 생각들을 떠올렸다. 물론,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곳도 있었다. 그런 곳에서는 아무리 해도 나의 본 모습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그럴 때의 나는 어느 정도의 가면을 쓴 채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이번 글에서는 '낯선 사람들의 바다'에서 너희가 어떻게 하면 잘 적응할 수 있는지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여기서 '낯선 사람들의 바다'라는 표현은 예일대학교 조직행동학 교수이자 사회학자인 마리사 킹이 인터뷰에서 표현한 것이다. 낯선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는 공간을 '바다'로 표현한 것이 나는 마음에 든다. 너무나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되면, 내가 잘 모르는 낯선 곳의 넓은 바다를 만난 것처럼 위압감과 압도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낯선 사람들의 바다에서 어떻게 하면 관계를 잘 쌓을 수 있을지에 대해 연구했다. 실제 그녀는 네트워킹을 썩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그녀가 네트워킹에 대해 연구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점이다. 자신의 부족한 점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고, 공부해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지 추측해본다.


'낯선 사람들의 바다'를 만났을 때에는 누구나 불안감을 느낀다. 아무리 인기가 많은 사람이라도 그렇다. 기존 집단의 사람들은 새로운 멤버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인기 많은 아이들을 포함한 26%의 아이들은 이미 놀고 있는 집단에 섞이지 못 한다.(출처 : <1% 똑똑한 아이로 키우는 좋은 엄마>)


그런데 마리사 킹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느끼는 낯선 사람들의 바다는 사실은 바다가 아니라, 작은 섬들이 모여있는 상태일 뿐이다. 생각해보자. 교실이든 회사든 어느 곳에서든 사람들은 단 하나의 집단으로 뭉쳐있지 않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적게는 두세명이서, 많게는 다서여섯명까지도 각각의 집단을 이루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즉, 그들은 우리를 덮치는 바다가 아니라 모두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마리사 킹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이 바다가 아니라 섬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상황은 좀 더 나아진 것이다.'


그럼 이제 그들이 섬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너희는 어떻게 그들과 교류해야 할까?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다이애드로 상호교류를 갖는다. 다시 말해, 기본적 관계인 두 사람끼리의 교류를 나눈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그렇게 행동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 벽을 이루듯 빽빽이 모인 사람들을 보지 말고 작은 무리의 사람들, 그러니까 섬처럼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자. (..) 이제부터는 한 명, 세 명, 다섯 명의 홀수 인원을 이루어 떨어져 있는 무리가 없나 둘러보자. 바로 그 사람들이 당신에게 딱 맞는 대화 상대다. 당신이 끼어들면 수적으로 균형을 이루게 된다.

- <인생을 바꾸는 관계의 힘>, 마리사 킹


첫 번째 방법은 홀수인 집단을 찾아서 다가가라는 것이다. 그녀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상호 작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다이에드 즉, 한 쌍이다. 따라서 홀수를 이루는 집단에 우리가 다가가게 되면, 우리로 인해 집단이 균형 있게 된다. 홀수 집단 안에서 해당 집단 안에 모든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와서 말 걸어주기를 기다릴 수도 있다. 홀수 집단을 찾아서 말을 걸어보는 이 방법을 따르면, 집단 안에 섞일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지며, 너희의 불안감을 더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너희와 맞는 단 한 명의 사람을 우선 찾는 것이다. 집단에 들어가지 못한 너희에게 당장 필요한 인원은 사실 단 한 명이다. 낯선 환경 안의 사람들 중에 혼자 남아있는 사람을 찾아보아라. 또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혼자가 될 때를 기다리는 것도 좋다. 타이밍을 기다려서 단 한 명에게만 다가가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전 글에서 말했던 적당한 자기 공개를 통해서 너희와 상대방 사이의 접점을 찾아보아라. 잠시만 대화를 해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혼자 남았던 그 친구가 너희와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것은 정말 운이 좋은 일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후에 몇 번의 시도를 더 하다보면 너희는 작은 섬 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렇게 너희의 섬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마인드가 하나 있다. ‘누군가 너희에게 관심을 두기를 바라기보다는 너희가 진심으로 타인에게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와 섬을 만들고 싶어하는 누군가를 기다리지 말고, 너희 스스로 섬을 만들거나 섬에 다가가보아라.


2년 동안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관심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보다 2달 동안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 더 많은 친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

-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누군가 먼저 너희에게 관심을 두기를 바라는 마음은 내려놓기를 바란다. 너희가 맺는 관계들은 너희 스스로가 주도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어린 시절에 내가 먼저 다가가기보다는 누군가 먼저 나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편이었다. 이러한 방법의 가장 큰 장점은 나의 수고스러움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이미 나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므로, 거절 당할 우려 없이 안정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관계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넘겨주게 되면, 타인이 나에게 기대하는 가치에 따라 나를 맞추려고 한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누군가 나에게 다가오도록 해야하므로, 타인이 나에게 어떤 모습을 기대하는지 신경을 쓰게 되고, 나의 본모습이 아닌 타인이 좋아할 만한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하려고 하는 것이다.


너희에게 꼭 말하고 싶은 것은 타인에게 맞출 필요도 없고, 잘 보일 필요도 없다는 사실이다. 너희는 이미 너희의 지금 모습 그대로 완벽하다. 너희의 모양이 세모인데 네모나 동그라미가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세모가 세모 아닌 척을 하려다보면 결국 너희 스스로도 자신의 모양이 어떤 것이었는지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기대에 신경쓰기 보다는 너희 자신의 모양이 어떤 모습인지 바라보고, 너희 내면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맞추어야 하는 모든 기준들을 내려놓아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 기대하는 것들을 전부 내려놓아라. 당신은 이미 완벽하고 더 이상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

-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


위 책에 따르면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의 '기대'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하려고 애를 쓴다. 관계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다가오기를 바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를 포장한다. 진짜 나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남들이 보기에 괜찮아보이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나 꽤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 나한테 와서 말 좀 걸어줘. 나랑 같이 섬을 만들어줘.'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너희의 관계를 다른 사람에게 일임하지 않았으면 한다. 처음엔 어렵더라도 먼저 다가가 보아라. 그리고 너희의 진짜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씩 오픈해보기를 바란다. 좋은 사람을 한 두명 만나다보면 너희의 작고 견고한 섬 하나를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낯선 사람들의 바다는 사실 너희를 덮치는 거대한 파도가 아니다. 그곳은 작은 섬들이 수십 개 모여있는 곳이다. 너희는 그곳에서 너희만의 섬을 만들어서 지켜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너희에게 관심 갖기를 바라기보다는, 너희가 먼저 그들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심을 가지되, 그들의 기대에 너희를 완벽하게 충족시킬 생각은 하지 말아라. 너희는 타인의 기대를 맞추고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려고 너희의 삶을 사는 것이 결코 아니다. 너희 스스로 먼저 행복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너희의 섬이 단 하나 뿐이라도, 또한 너희의 섬에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뿐이라도 괜찮다. 평균적인 미국인은 절친이 두 명 있다는 통계가 있다. 인생에 소중한 친구가 두 명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너희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나의 경우 가장 친한 절친은 너희의 아빠이자 나의 배우자이다. 그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세상이 다 내 편처럼 느껴질 정도로 든든하다. 결국 나의 작지만 가장 소중한 섬은 우리 가족인 것이다.


인간관계의 네 번째 법칙은 바로 이같은 '섬 만들기'이다. 낯선 곳에 가서도 스스로에게 당당하기를, 그리고 너희의 단단한 섬을 만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출처 : Ahmed Yaaniu, Unsplash)

이전 04화 04. 집에 사람들을 초대하면 좋은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