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공개'의 법칙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여 좋은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집들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비슷한 단어로 '집알이'라는 말도 있다. ‘집알이’란 다른 사람의 집이 어떤 모습인지 알아본다는 뜻이다. 집의 주인이 '집들이'를 열어서 초대하면, 손님들은 '집알이'를 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집알이’라는 이 단어에는 집을 알아보는 것과 동시에 사람을 알아보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같은 공간 안에서 음식을 나눠먹고 대화를 나누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자리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알이’인 동시에 ‘사람알이’라고도 할 수도 있겠다.
나는 사람을 알아가는 이런 시간들이 꽤 의미가 있다고 여긴다.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는 집은 밝고 활기찬 분위기를 갖게 된다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집을 너무 폐쇄적으로 두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의 이런 생각 때문에 우리 집에는 실제로 많은 손님들이 다녀갔다. 가족뿐 아니라 나의 친구들과 동료들, 선배나 후배들, 너희가 새로 사귄 학교의 친구들, 오며 가며 만나는 동네 사람들까지도 우리의 반가운 손님이 되었다. 우리는 함께 우리는 케이크를 나눠먹거나, 다 같이 소파에 앉아 닌텐도 게임을 하기도 했다. 그들 중에는 나보다 나이가 15살이나 많은 사람도 있었다. 나는 늘 그들을 친구라고 불렀고, 너희도 그들을 이모나 삼촌이라고 불러주었다. 고맙게도 너희는 우리의 손님들을 진심으로 환영해 주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오래된 구축 아파트라서 깔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완벽한 집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작고 허름하더라도 같은 공간 안에서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나에겐 굉장히 뜻깊은 일이었다.
그런 나에게 어느 지인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너네 집은 오픈 하우스 같아. “
우리는 그 말에 함께 웃었다. 그리고 나는 그 단어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오픈 하우스'. 대화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집을 오픈하는 것은 의미 있고 신나는 일이다. 청소를 좀 못했다면 어떤가. 나는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닌, 진실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문을 여는 것이다. 집의 현관문을 열어서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마음의 문을 열어서 상대를 나의 바운더리 안에 들여보내는 것과 같다.
그런데 하나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우리 집에 누군가가 오고 나서는 (현재까지 나의 통계로 봤을 때) 반드시 상대방도 자신의 집에 우리를 초대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각자의 집에 오고 가는 일을 하고 나면 상대방과 나의 사이는 더욱 긴밀해진다. 이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각자의 바운더리를 넘어섰으니 이제는 지인을 넘어선 친구가 되는 것이다.
어느 날, 너희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10살이나 많은 사람이랑 친구가 될 수 있어요?"
그리고 나는 '당연히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너희들은 그동안 나의 여러 친구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렇다'는 나의 대답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내가 집에 여러 사람들을 초대했기 때문에 너희가 좀 더 유연한 생각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나는 혼자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 책에서 실제로 집에 다양한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 가족 구성원들의 '우리성'을 확대한다는 글을 발견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설득의 심리학> 책에서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례를 보면, 자기 집을 다양한 사람에게 공개하는 부모를 본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낯선 이들을 도와주려는 경향이 더 높았다. 그들에게 '우리성'이란 직계가족이나 친척을 넘어 인간 전체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 <설득의 심리학 2>, 로버트 치알디니
책에서는 수천 명의 유대인이 일본으로 탈출하도록 도움을 준 일본인 스기하라의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그의 자비로움이 집을 기반으로 하여 생겨났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여관을 열었고, 다양한 손님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음식과 세탁 등 생활에 필요한 여러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스기하라는 그러한 부모의 모습에서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사례처럼 자신의 집을 다양한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부모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된 후에 타인을 도와주려는 경향이 높았다. 즉, 어렸을 때의 오픈된 환경이 아이가 ‘우리'라는 테두리를 넓게 가질 수 있도록 영향을 주었고, 결과적으로는 넓은 자비로움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이 '우리성'을 확대한다니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사실 ‘우리’라고 묶이기 위해서는 나와 그들 간에 어떤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성격이나 외모, 가치관, 취향, 살아온 환경 등일 수도 있지만 더 큰 차원의 공통점일 수도 있다. 바로 우리는 모두 같은 시간 속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라는 공통점 말이다.
이 세상에는, 아니 고작 우리가 사는 곳에서 전방 500m 이내만 해도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각자 다른 모습으로, 서로 다른 가치관을 두고, 다른 표정을 지은 채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와 많이 달라 보이는 그들과 함께 여러 주제의 대화를 나누고, 같이 웃거나, 때로는 함께 고민하다 보면 '이들 또한 나와 같은 사람이다'라는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멀리서 봤을 때는 모두가 철저히 개인적으로 보이지만, 경계선을 넘어서 다가가 보면 어떤 보편적인 모습을 찾아내게 된다. 이렇게 나와 너를 잇는 보편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마침내 우리는 서로에게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칼 로저스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당신이 진실할수록, 특히 개인적 경험과 심지어 자신에 대한 회의까지도 포함하여 솔직할수록 다른 사람도 당신의 말에 더욱 동조할 수 있게 되고 안심하고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법칙>, 스티븐 코비
그러므로 나는 너희들이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진실하게 그들을 대했으면 한다. 너희의 좋은 점만 드러내기보다는 고민거리나 상처, 좌절이나 실패 경험 등도 잘 풀어내보아라. 사람들과 수많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시야를 넓히면, 너희들이 생각하는 '우리'라는 테두리는 자연스럽게 넓어질 것이다. 이를 통해 너희 스스로는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고,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살 수 있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집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은 너희의 '우리성'을 확대시킬 수 있으므로 좋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좋은 점도 있다. 바로 집에 누군가를 초대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자기 공개’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기 공개'란 나 자신에 대한 개인적 환경, 정보, 생각들을 타인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대화를 나누던 도중 누군가 먼저 자기 공개를 하면, 상대방도 자신의 정보를 조금씩 공개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쌓이면 상호 간에는 신뢰가 생기고, 정서적 친밀감이 형성된다. 나의 모습을 솔직하게, 또 적당한 템포로 드러내는 일은 타인이 가진 마음의 벽을 허무는 데 굉장히 좋은 역할을 한다.
관련된 실험을 하나 소개하겠다. 아서 애론과 엘레인 애론이라는 부부 심리학자의 연구 프로그램 내용으로, <설득의 심리학 1>의 '연대감 원칙' 파트에서 소개되고 있는 실험이다. 요약하자면, 실험 참가자 2명이 짝을 지어 자기 자신에 대해 털어놓는 일을 주고 받았더니, 상호 간에 높은 친밀함과 연대감이 조성되었다는 내용이다. 심지어 참가자들 중에서는 마음이 맞아 결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해 서로에게 털어놓는 자기 공개였다. (..) 참가자들의 관계는 모든 예상을 훌쩍 뛰어넘으며 깊어졌다. 45분이라는 시간, 특히 감정적으로 메마른 실험실이라는 환경에서조차 완벽한 타인들 사이에서 기대할 수 없었던 친밀함과 연대감이 조성되었다.
- <설득의 심리학 1>, 로버트 치알디니
즉, 자기를 공개하는 일은 깊은 친밀감을 생성하기 위한 첫 단계가 되는 것이다. 이 첫 단계가 없으면 관계는 깊어지기 어렵다. 생각해 보자. 상대방과 나 둘 다 어떠한 정보도 공개하지 않은 채 그저 겉도는 대화만 한다면 친밀감은 생성되기 어렵다. 만날 때마다 연예인 이야기나 제삼자의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과는 깊이 있는 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자기 공개의 과정이 늘 좋은 관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와 상대방은 분명 각자의 자기 공개를 통해서 친해진 것 같았는데, 이후의 만남이 성사되지 않거나 오히려 더 어색해질 때도 있다. 이럴 때는 ‘아, 나와 그다지 맞지 않은 사람인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된다.
관계라는 것에도 실수와 실패가 있다. 나는 저 사람과 친해지고 싶었는데 그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다. 나와 상대방이 꽤 잘 맞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너무 다르고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실수나 실패를 많이 겪어봐야 너희에게 더 잘 맞는 진정한 친구를 결국 찾아낼 수 있다. 여기서의 진정한 친구란 너희가 불행해졌을 때 진실되게 함께 슬퍼하는 사람이다.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싶다면 가장 좋은 기회는 진지한 도움과 상당한 희생이 필요한 지금 막 닥친 불행에 관해 이야기할 때다.
-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그러니 이 같은 진정한 친구를 찾을 때까지는 여러 방면으로 '자기 공개'를 많이 해보길 바란다. 집의 문을 굳게 닫아두지 말고 자주 열어서 친구를 초대할 것.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하지 말고 너희 자신에 대한 얘기를 적당하게 꺼내볼 것. 이런 시간들이 쌓이면 너희의 곁에는 단 한 사람일 뿐이더라도 인생에 큰 도움이 되는 아주 소중한 관계가 남아있게 될 것이다.
적당한 자기 공개를 통해 깊은 관계를 시작해보는 일. 이것이 오늘 엄마가 말하고자 하는 세 번째 법칙 ‘자기 공개’에 대한 이야기다.
(사진 출처 : Nathan Anders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