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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Oct 07. 2023

강남에서 살아남을 수 있냐고요?

이제 햇수로 강남, 그것도 반포라는 지역에 발을 붙인 지 6년 차다. 차마 반포에 정착했다는 표현은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이 태어난 후,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지역이 반포지만 반포가 우리 동네라고 나는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만큼 여기는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부터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어쩌다 만나게 된 학교 엄마들하고 얘기를 나눠보면, 친정이 이 아파트 여서 결혼 때부터 여기서 살게 되었다는 애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사실, 아이들 나이가 비슷하니 결혼한 시기가 비슷하다고 가정했을 때 그 시기 즈음엔 과장 조금 보태, 우리도 여기에 집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집값이 훈훈했다. 지금은 망원경으로 보일 듯 말듯한 별처럼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팩트는 나도 그 당시 우리 친정이 있던 서울 서쪽에 자리를 잡았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부는 유, 무형의 형태로 전승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살 돈이 보태졌을 수도 있고 혹은 이 지역에 정착하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돈 버는 선택을 하게 했을 수 있으니 말이다.


어떤 인터뷰에서 부자들을 인터뷰해보니,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게 부모님이 다 부자라고 농담반 진담반 애기가 나온 것처럼. 실로 그러하다. 나는 그런 버프를 받지 못한 사람으로서, 내 주소지가 반포인 것, 그뿐인데, 얼마 전 친척들 모임에서 다들 신기하다며 물어보더라.

"너 거기서 어떻게 버티고 있어? 엄마들 기가 세지 않아? 이상한 사람 많지 않아?"


친척 언니들의 걱정은 내가 반포에 들어와 보기 전에 했던 생각과 일치했다.

"음, 글쎄......"

내가 경험한 바로는 또라이 보존 법칙이라고 어딜 가나 일정 퍼센트지에 또라이가 있다는 가설에 신빙성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어디나 사람 사는 거 똑같아라고 말하기엔 언니들이 믿어줄지 의문이었다.

나는 강남에서 버티고 있다. 그 표현 자체는 맞다.


어쩌면 언니들의 질문은 네가 강남에 전, 월세 살 돈이 있는 거니라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는 확실히 편견을 깰 필요가 있다. 강남에 다 10억짜리 전세만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만기 때마다 이사 가려고 친정 근처, 시댁 근처 다른 서울을 알아보면 오히려 전, 월세는 큰 차이가 없어 결국 다시 한번 이 지역에 스테이를 결정하기도 했다. 물론 같은 금액으로 여기서 오래된 아파트에 산다면, 다른 지역으로 가면 신축에 사는 정도의 차이겠다. 나는 결혼 후 입주하는 새 아파트에 2번 살아보고, 재건축 이주 대상 아파트에도 살아본 경험으로 말하건대,  재건축 이주 대상 아파트여서 물이 졸졸졸 나올 때 빼고는 삶의 만족도에 큰 차이가 없었다. 결국 가치 판단인데, 내부적 프라인가, 외부적 인프라 인가에 대한 결정이 아닐까?


나는 강남에서 버티기 위해, 내 수준에 맞는 집을 찾고 자녀들을 포함해서 만족하고 있다. 결국 버티기는 나의 한계나 편견을 극복하냐에 대한 것이지, 타인의 시선이나 암묵적 혹은 대놓고 존재하는 힘겨루기에 참여해서 그 레이스에서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신경 쓰기엔 회사에, 자녀양육에 너무 바쁘다. 그리고 학군지의 암묵적인 질서가 있지 않는가? 자녀가 바르게 커가는데 내가 거울이 돼 가고 있다면 그걸로 내 증명 완료이다. 물론 공부까지 눈이 부시게 잘한다면 어깨 뽕이 찰지 모르겠으나 아직 자녀가 초등학생인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이 많지만 아이들은 사실 그렇지 않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우리 집이고, 우리 동네다. 빌린 집이라고 얘기해줬고 2년마다 다시 약속을 해야 되는 거라고 얘기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녀석들은 회장선거가 시작되는 학년부터 꾸준히 무언가에 당선되어 임명장을 들고 온다. 처음에는


"어머, 그거 완전 부잣집 친구들이 하는 거 아냐? 엄마, 아빠가 영향력 있는 직업이어서 학교에 자랑스럽게 오고 갈 수 있는 애들이 해야 되는 거 아냐?"


라고 생각했다. 나였다면 대단한 백그라운드가 없으니 스스로에게 나대지 말자라고 세뇌했을 것 같은데, 아이들이 좋은 결과를 얻어오는 거 보면 어른처럼 꾸깃한 마음 없이 잘 자랐나 보다 싶다. 그래서 내가 강남에서 도망갈 정도로 못 버티지는 않고 있구나 생각을 했을 따름이다.


나는 주도적으로 이곳은 경험하고자 이곳에 왔고, 만약 나간다는 결정을 한다 해도 다른 사람들의 존재로 인해서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놈의 노력병에 대한 후유증으로 하루를 버티는데 몇 종류의 약의 도움이 필요하긴 하지만,  나는 아직 다음 이사를 가고 싶은 곳을 찾지 못한 것뿐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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