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통하는 주치의를 만난다는 것.
예쁜 4기라는 진단을 받기 전, 3기를 예측하고 외과의를 만났다. 수술 전에 선행 항암을 할 예정이니 케모포트를 달게 될 거라고. 그래, 엄마도 했고, 이모도 했고, 어머님도 하셨어. 나는 더 젊은 데 못 견딜 게 뭐야 다들 잘 견뎠잖아! 게다가 여긴 미국이야. 암이라고 모두 불쌍하게 바라보지 않아. 사회생활도 할 수 있고!라는 마음을 가지고 용감하게 싸워보기로 했었다. 물론 이 마음을 먹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 해결이 우선이었다.
진단을 받고 가장 어려웠던 일은,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이 어이없는 일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아 이말 저말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가 얼마 전 검사를 받았는 데 이렇게 됐다고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얼마 전 딸을 만나러 왔던 엄마는 너무 놀라 울기 시작했다. 울음이 터진 엄마 옆에 있던 아빠는 갑자기 우는 엄마를 보고 왜 그러냐고 물어왔고 엄마는 내가 암이라는 사실을 울며 아빠에게 전달했다.
부모님에게 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리는 일은 참 못할 짓이다. 엄마는 당장 비행기를 타고 오겠다고 했고, 나는 괜찮다고 엄마를 말렸다. 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자 노력했지만, 아프다는 사실을 알리고 난 다음, 그 어떤 때보다 죄스러웠다. 원하는 대학을 떨어져 차선이었던 학교에 갔을 때 보다, 목표하던 직장에 가지 못해서 좌절했을 때 보다, 부모님 곁을 떠나 결혼해 외국에서 살겠다고 말했을 때 보다,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나는 그렇게 본격적으로 암을 마주했다.
주치의는 시어머니의 주치의였다. 조직검사지에 암이라는 얘기가 나왔을 때 어안이 벙벙했지만, 당장 나를 관리해 줄 의사를 찾아야 했다. 수술 간호사이신 시이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의사를 찾아야 하는데, 추천해 주실 수 있냐고. 어머님의 주치의였던 종양내과의와 수술을 담당해 줄 외과의를 소개해 주셨다.
처음 만난 나의 종양내과 주치의는 차분하게 내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지금 사이즈와 조직검사 결과로 보아서는 2-3기로 예상이 됩니다. 지금 기수의 경우, 선 항암을 한 후 수술을 진행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가 더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서는 자세한 검사를 해야 합니다. 초음파와 엑스레이 촬영을 끝냈으니 나머지 스캔도 진행합시다. 뇌 MRI, 전신 CT, 그리고 본 스캔을 처방할게요. 그리고 외과의와 만나서 키모포트에 대해 설명을 듣도록 하세요."
차분히 설명해 주는 주치의를 보면서, 내 암은 초기 단계를 이미 훌쩍 지났다는 말에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정신을 붙들고 '치료하면 돼. 괜찮아. 암에 걸린 사람들 다들 그렇게 이겨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의사가 처방한 모든 검사를 진행하고 나서, 더 큰 절망이 찾아왔다.
내 암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나온 것이었다.
내가 놀라지 않게 주치의는 좋은 결과부터 설명해 주었다.
"뇌 검사 결과는 깨끗하네요. 그런데, CT 스캔과 본 스캔을 보니 흉골에 뭐가 있는 거 같아요. 우리 뼈조직 검사를 해봐야 합니다."
뼈조직 검사를 어떻게 하지?
상상도 가지 않는 일이었다.
"아직 조직 검사를 하지 않았지만, 만약 뼈에 있는 게 전이된 암세포라면, 예상한 것보다 기수가 높아요. 치료 방법이 바뀔 거예요."
예상했던 기수가 2-3기였는데, 그럼 4기란 말인가.
상상했던 것들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가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건가 싶었다.
3기면 이렇게, 4기면 이렇게라고 치료 과정을 종이에 써 내려가며 친절하게 알려주는 주치의의 손을 보면서 내 얼굴은 굳어갔다. 굳어간 내 얼굴을 눈치챘는지 선생님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내 환자 중에는 당신과 같은 상황에 있지만 7-8년째 잘 관리하고 살아가는 환자들도 있어요. 당신도 그럴 수 있어요. 그리고 나는 기도의 힘을 믿는 사람이에요."
주치의가 기도의 힘을 믿는 사람이란 말에 나는 왠지 차분해졌다. 그리고 이 의사를 믿고 치료 받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