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물품세의 도입
세 질문 모두 1장에서 살펴본 세 부담의 공평이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리버스 씨가 오로지 토지만을 과세대상으로 삼아 부과하는 세금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는 개인이 보유한 토지면적과 담세력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토지면적에 따른 세 부담 ≠ 담세력
블루헤븐 초기에는 무조건 같은 세금을 내는 것이 공평한 방법이었지만, 이제는 소득에 따라 부담하는 세금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주민들이 생각하는 공평한 방법이다. 변화된 식으로 세금을 매길 때 일부 소득이 아닌 전체 소득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개인소득의 구체적인 내역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보았듯 사생활의 영역을 필연적으로 침범할 수밖에 없다. 설사 사생활을 속속 들여다볼 수 있다하더라도 가령 소득을 은닉할 길이 열려 있다면 여전히 공평과세는 먼 이야기가 된다. 블루헤븐이 어떤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가정하지 않았지만, 주민대표회의가 각 주민들이 벌어들이는 소득의 구체적인 내역을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의 블루헤븐에서 개인이 벌어들이는 소득에 빠짐없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렇긴 하나 공평한 세금부과라는 목적까지 포기할 것까지는 없다. 어차피 이상과 현실은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법. 최대한 소득을 파악하는 방법을 대안으로 삼으면 된다.
유력한 대안 중 하나로 위의 물품들, 즉 설탕‧커피‧비단‧소금‧종이를 과세대상으로 삼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현재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 방식이 썩 마음에 들긴 어렵겠지만, 블루헤븐의 시대에서는 나름 괜찮은 방식에 해당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주민들의 주 소득원은 블루헤븐 내 토지에서 생산되는 식량과 외부에서 조달하는 식량으로 대별된다. 토지를 은닉할 수는 없으므로 토지에 부과되는 세금 또한 회피할 수 없다. 토지와 달리 외부에서 획득하는 식량과 그 거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관련 소득을 간접적으로 추정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블루헤븐 밖에서 조달한 식량을 팔아 번 돈을 다음 두 가지 용도로 지출한다.
① 블루헤븐 내의 토지 매입
② 사치재의 구매
①의 용도로 돈이 지출된다면 뒤늦게라도 소득이 포착되어 세금이 부과된다. 이에 대한 추가적인 조치는 불필요하다. ②의 사치재 구매에 새로운 세금을 매긴다면, 외부식량으로부터 발생한 소득에 대해서도―완전하게는 아니더라도―과세가 이뤄진다. 주민대표들이 사치재 소비에 주목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물론 물품세 도입에 필요한 다른 제도정비가 여전히 남아 있기는 하나, 잠깐 뒤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간접세에 대해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다음 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