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the Heroes

해방일지, +183일(2022.11.09)

by 낙산우공

KBO 프로야구의 2022년 일정이 모두 끝났다. 1982년 출범 이후 40년간 애정을 잃지 않아 온 야구 애호가라는 이유로 올해의 관전평(?)을 시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누군가의 취향을 과도하게 떠들어 대며 이게 과시인지 강요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불편한 상황을 만들어 내는 이들을 혐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 한국시리즈 6차전이 끝나고 나니 아주 오랜만에 야구 얘기를 하고 싶은 욕망이 솟구쳐 올랐다.


나는 40년 넘게 MBC 청룡-LG 트윈스를 응원해 오고 있는 원클럽맨이다. 1982년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를 졸라 MBC 청룡 어린이 회원이 되었고, 1990년 대입학력고사를 코앞에 둔 고3 수험생 신분으로 LG 트윈스의 창단 첫해 우승을 직관했으며, 2000년 사회인이 되자마자 LG 트윈스 성인회원에 가입하였다. 내 차 뒷유리에는 'GO TWINS!'라는 점잖은(?) 스티커가 붙어 있고 운전석 앞에는 트윈스의 영구결번 레전드 '이병규(9번)' 선수의 피규어가 놓여있다.


굳이 나의 응원팀에 대한 나의 과도한 짝사랑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가 이번 한국시리즈의 진정한 제3자(?)라는 사실을 미리 밝혀 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키움 히어로즈와 SSG 랜더스의 팬이 아니다. 특히 수도권 라이벌인 이 두 팀을 오래전부터 좋아하지 않았다.(물론 두산 베어스 정도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한국시리즈는 명승부였다. 그중에서도 언더독 키움 히어로즈는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이제부터 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올해 정규리그 내내 첫 경기부터 마지막까지 소위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라는 초유의 성적을 낸 건 SSG 랜더스다. 그런데 투수-수비-타격 면에서 가장 안정적인 전력을 보유했던 팀은 LG 트윈스가 분명했다. 시즌 마지막까지 랜더스와 선두 경쟁을 벌였고 특히 투수력 면에서는 다승왕-홀드왕-세이브왕을 모두 배출하였다. 그런데 안정적인 전력이 단기전인 포스트시즌에서 크게 힘을 쓰지 못한다는 걸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한번 증명했다.


올해의 포스트시즌인 준플레이오프(KT vs 키움), 플레이오프(LG vs 키움), 한국시리즈(SSG vs 키움) 중에서 가장 맥없이 끝난 시리즈는 단언컨대 플레이오프였고 그 주범은 LG 트윈스다. 나머지 KT, 키움, SSG는 정말로 상위권 팀다운 경기력과 폭발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한국시리즈 1, 4, 5, 6차전은 역대급이었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거나 이번 시리즈를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것은 생략하겠다. 어차피 들어도 재미없어하실 이야기일 것이다.


아무튼 나는 그동안 LG 트윈스가 탈락한 포스트시즌을 즐겨 보지 않았지만 올해만큼은 단 한경기도 놓칠 수 없을 만큼 훌륭했다. 나에게 LG 없는 포스트시즌도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KT, 키움, SSG 세 팀에 박수를 보낸다. 특히 언더독의 유쾌한 반란을 가히 환상적으로 보여준 키움 히어로즈에는 경의를 표한다.


키움 히어로즈는 포스트시즌 내내 주전 선발 3~4명 외에 눈에 띄는 정규리그 성적을 보유한 선수가 없었다. 특히 규정타석이나 규정이닝을 채운 선수가 별로 없을 만큼 선발 주전이 수시로 바뀌는 팀이었다. 붙박이 주전 중심으로 정규리그 144경기를 치르는 LG 트윈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이 방식이 얼마나 고루한 방식인지는 이제 증명되었다. ㅠ.ㅠ) 그런데 키움은 그 구성으로 정규리그 80승을 했다. 그리고 그 구성으로 준플레이오프(3승 2패), 플레이오프(3승 1패), 한국시리즈(2승 4패)를 치렀다.


그중에서도 준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는 정말 명승부였다. 특히 한국시리즈에 올라오기 전까지 그렇게 얕은 선수층으로 무려 9경기나 먼저 소화했음에도 불구하고 키움은 끝까지 예측할 수 없는 경기력을 선보였다. 나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붙박이 주전이 없는 팀의 최대 약점은 수비력이다. 그게 승패를 갈랐을 뿐 키움 히어로즈는 우승을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전력을 보여주었다.


단순히 이정후, 안우진, 푸이그 선수 때문만은 아니다. 무명의 김준완, 김태진, 전병우, 임시열... 그리고 노장 이용규까지 이들을 보면 무슨 외인부대를 보는 것 같았다. 5차전 9회 말 대타 김강민에게 끝내기 역전 홈런을 허용한 최원태 선수도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그는 포스트시즌 내내 간절한 눈빛으로 공을 던졌고 정규리그때 보여준 구위 이상의 투구를 했다. 나는 그가 끝내기 홈런을 맞는 장면을 보며 눈물이 날만큼 울컥했다. 해설자는 그 공이 실투였다고 했지만 그는 최선을 다했다. 그런 그에게 너무 가혹한 홈런이었다.


내가 히어로즈에 대하여 이렇게 극찬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들은 오로지 경기를 통해 프로야구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증명했기 때문이다. 2008년 국내 유일의 모기업 없는 프로야구단으로 출범하면서부터 온갖 안 좋은 사건사고를 독점하다시피 했던 구단이었고, 특히 팀의 국보급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박병호와 재계약하지 않으면서 더 이미지가 악화되었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키움 다음으로 칭찬을 받아야 할 팀은 SSG 랜더스다. 그들은 왜 그들이 우승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증명했다. 시리즈 MVP를 수상한 인상파(?) 김강민에서부터 추신수, 최정, 김성현, 김광현... 거기에 먹튀 논란의 최주환 선수까지 그들은 정규리그-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의 주역이 될 자격이 충분했다. 구단주의 전폭적인 후원 같은 경기 외적인 요소를 모두 배제하고 보더라도 랜더스는 신생구단(?)으로 화려하게 랜딩 했다.


결국 나도 흔하디 흔한 야구 덕질(?)에 가세한 것 같아 민망한 마음이 앞선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번 한국시리즈가 아주 진부한 표현이지만 '각본 없는 드라마'를 제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각본이 없을 리 없다. 그런데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상황이 연출되니 우리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이다. 거기엔 의도된 연출이 없다. 그런데 의도하지 않게 기가 막힌 상황이 연출된다.


회사에 다니면서 TV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회사에서 매일매일 펼쳐지는 사건들이 여느 아침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막장'이기 때문에 드라마를 끊었다고 했다. 막장인데 의도된 연출이 없으니 우리가 싸움구경과 불구경을 좋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이제 아침드라마도 제작을 접는 추세라는데 막장은 회사에만 남는 것인지...


각본 없는 드라마는 스포츠만으로 충분하다.


* 글을 끝마치려고 하는데 뭔가 허전해 생각해 보니 히어로즈의 포수 이지영 선수 이야기를 빼먹었다. 내가 히어로즈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이번 시리즈 내내 전경기 출장한 이지영이다. 그는 무겁지 않은데 포수의 무게감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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