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일지, +187일(2022.11.13)
빼빼로데이에 기다리던 응답은 오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니 육감만 발달했는지 며칠 전부터 묘한 촉이 오더니 역시나 예감을 비껴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의 신비에 가까운 직감을 감탄하기에는 뭔가 헛헛하다.
어떤 이유로 내게 응답이 오지 않았는지를 나는 알 수 없다. 오만가지 추측이 난무하지만 정답을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못 느낀다. 어쩌면 응답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는지도 모른다. 나는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고 일을 벌였으나 그 일이 덥석 물렸을 때를 걱정하고 있기도 했다.
이렇게 걱정이 앞서면 어떤 일이든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경험이 쌓여 나의 놀라운 촉을 빚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이번 결과는 생각보다 충격이 덜하다. 이틀을 자고 일어났는데 기분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
내 마음 한켠에는 도전에 대한 불안과 더불어 또 새롭게 뭔가에 적응해야 하는 것에 대한 귀찮음이 병존하고 있었다. 이런 정신상태에서 무슨 일이 되겠는가? 일체유심조라 했다. 마음먹기에 달린 것만은 아니지만 그조차 흔들릴 땐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우리가 운명이라고 믿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필연인 경우가 많다. 즉 내 의지와 관계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결과들이 사실은 내 안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말이다.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 중에 마흔의 불혹은 아무도 유혹하지 않아서 불혹이라 했다. 불혹을 지나고서야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알 것도 같았다. 역시나 지천명의 오십을 지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지천명은 하늘의 뜻을 깨우치는 깨달음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하늘이 내린 운명을 군소리 없이 따른다는 뜻이었다. 공자께서는 천명을 깨우치셨는지 모르겠지만 나와 같은 필부에게는 가당치 않다. 다만 내 운명의 그릇을 알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군말 없이 살아가는 것… 그게 지천명이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귀가 어두워져 남의 말이 곱게 들리는 이순이 될 것이고 욕망이 사라져 마음을 따라도 흉이 되지 않는 종심의 경지에 다다를 것이다. 그때까지 산다면 말이다. 그조차 장담할 수 없는 게 지천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