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일지, +204일(2022.11.30)
온화한 겨울이 이어지더니 난데없는 한파경보에 지하철마저 멈췄다.(물론 완전히 멈춘 건 아니지만) 화물연대 집회 때문에 지난주에는 아침부터 마포대교가 멈췄다. 멈추고 다시 가는 일이야 일상다반사라, 매일매일 교통통제 정보를 살필 요량이 아니라면 그러려니 적당히 포기하고 살면 된다. 파업을 탓하는 정치적 발언으로 오해는 마시길…
크리스마스를 한 달 앞둔 지난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거실을 온통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몄다. 10년째 써오던 크리스마스트리가 많이 낡고 거추장스러워 한해 건너뛸까 했더니 교회도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난리가 났다. 어쩔 수 없이 시내에 나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조그만 트리와 크리스마스 오르골을 구매하고 집에 있던 트리 장식용 전등으로 거실 벽에 트리 하나를 더 만들었다.
가뜩이나 오래돼서 누르스름한 집에 누우런 전등이 반짝거리니 제법 어울리기도 했다. 아이들은 집이 따뜻해졌다고 좋아한다. 덕분에 올 겨울 전기요금은 꽤나 나올 것 같지만 아무렴 어떠랴? 연말이고 크리스마스 아닌가? 해마다 연말이면 근사한 공연을 보고 근사한 식사 한 끼를 해왔는데, 올해는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웬만한 예약은 다 차 버려 난감하다.
으레 이런 일은 아빠의 몫이라 초롱초롱 기대에 찬 눈들이 나를 지켜볼 생각을 하니 뭐라도 빨리 잡아야 하겠기에 마음이 급하다. 그나마 집이 서울 4대문 자락에 자리하고 있어 작년 연말을 뜨겁게 달군 신세계 본점의 미디어 파사드를 구경하기엔 그만이었다. 12월 31일 한밤 중에 기습적으로 명동으로 출동해서 근사한 구경을 했다. 이 복잡한 날의 주차 꿀팁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그날엔 길을 막고 차 안에서 구경하는 얌체족들이 제법 있었다.) 심지어 반려견(호두)까지 단잠을 깨워 끌고 나갔고, 우리는 기가 막힌 사진 몇 장을 건졌다.
안되면 이 코스라도 가야 할 것 같다. 올해엔 백화점 간에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고 하더니 얼마 전 우연히 명동 롯데 앞을 지나다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돈 들이지 않고 연말 기분을 내기엔 딱이다. 물론 아이들이 이 정도에 만족할 리 없지만 말이다. 작년에 실패했던 국립발레단 연말 공연은 올해도 이미 전석 매진이다. 궁여지책으로 유니버설발레단 공연을 봤는데 마지막 날 공연이어서인지 무용수들의 실수가 눈에 거슬릴 정도로 나왔던 기억이 있다.
무용을 전공하는 딸아이는 실망하는 눈치였지만, 아무렴 어떠랴? 연말에 세종문화회관에 출동한 것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행복했다. 올해 광화문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엄청난 인파로 붐비겠지만 그런 맛에 또 시내를 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작년 연말에 공연을 보기 전 들렀던 커피집은 온 나라에 가장 많다는 별다방이었건만 최악의 커피맛을 자랑했더랬다. 아무렴 어떠냐고 하기엔 너무나 형편없었다. 지금까지도 화가 날 정도니 말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우여곡절 끝에 최저 할인을 적용받아 뮤지컬 '캣츠' 공연을 예약했다. 연말 기분이 좀 덜한 설 연휴이긴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곧 크리스마스가 오고 또 한 해가 넘어가며 어김없이 새해가 밝을 테니...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그 기분이라도 내지 않으면 내 어깨를 짓누르는 우울감을 이겨낼 도리가 없다. 그래... 연말이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