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해방 230일, 복직 301일(2022.12.26)

by 낙산우공

마흔을 앞두고 크게 사고(?)를 쳤던 나는 다시 쉰을 넘어 10개월의 휴직을 감행했다. 그렇게 열 달을 쉬고는 별수 없이 복직을 했고 다시 열 달을 채웠다. 십진수의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10개월이라는 시간은 1년에 버금가는 무게감이 있다. 그렇게 나는 묵직한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이제 2023년 새해를 앞두고 뭔가 거창하진 않아도 묵직했던 시간만큼의 화두를 던져야 할 것 같은데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다. 그럴듯한 포장이 없다. 나의 지난 10개월이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쉽게 값싼 미사여구를 인용할 수 없다. 그래서 더 할 말이 없다.


10개월 무급휴직이라는 강수를 두었던 건 두려움 때문이었다. 삼재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내가 유독 삼재를 진하게 앓는다는 것도 그동안의 경험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시시각각 조여 오는 위기의 신호를 감지하고도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 그래서 삼재구나라는 말 밖에는...


그래서 모든 걸 멈추어 버렸다. 두 아이의 입시를 치르며 아내의 수입에만 의존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내 사회적 삶을 멈추는 것만이 대책 없이 휘몰아칠 재앙을 조금이라도 피해 가는 길이라 믿었다. 그런데 내가 틀려도 한참을 틀렸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하늘이 내린 운명의 힘을 하찮은 인간이 어찌 맞설 수 있겠는가? 나의 어리석음이 가장 우려했던 50대의 삼재를 더 증폭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근심을 안고 삼재해의 첫해를 겨우겨우 넘기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끔찍한 삼재는 두 번에 걸쳐 나를 찾아왔다. IMF 구제금융 사태가 온 나라를 집어삼킬 것 같았던 1998년과 불혹의 나이를 맞았던 2010년 나를 덮친 삼재는 혹독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그 가혹했던 3년을 죽기 살기로 버틴 끝에 내 삶이 조금의 안정을 찾았다는 것뿐이다. 이것은 결과론이다. 나는 그 어떤 부귀영화를 준다 해도 이 시기를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2022년에 닥칠 삼재는 내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기에 충분했다. 오죽했으면 한 해 전에 휴직을 하였겠는가? 처가에서는 아직도 내가 휴직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나이 오십에 휴직을 했다는 건 대부분 실직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지난 두 번의 삼재에서 모두 신분의 변화를 겪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나의 사회적 지위에 위기가 올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해버렸다. 이것이 나의 크나큰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겪은 삼재는 언제나 한두해 전부터 전조가 있었다. 사람의 일이라는 게 그렇게 한순간에 종이장 뒤집듯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 원인을 제공할 사건들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일어난다. 그런데 난 모든 관심을 나의 직장과 그 주변의 변화에 집중했다. 참으로 어리석었다. 그런 생각에 몰두했던 이유는 내 안에 있었다. 나는 현재의 직장에 싫증이 나 있었다. 3년 주기로 다섯 번이나 직장을 옮기던 내가 지금의 직장에서는 무려 9년을 넘겼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떤 핑계라도 만들고 싶었던 그때에 삼재가 들었다.


그것이 나의 돌이킬 수 없는 패착이었다. 작년 휴직기간에 큰애와 둘째의 동반 입시를 나름 성공적으로 치렀다고 자평하며 집안 문제라면 대체로 해결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제 내 운신의 폭을 넓힐 궁리에만 몰두했던 것이다.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옛말이 딱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진로선택과 입시 정도가 부모의 몫이라는 터무니없는 착각에 빠져 살았다. 그리고는 그 과실을 아이가 아닌 내가 받아먹고 있었다.


나는 부모로서 낙제였다. 아무리 부정하더라도 나는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오직 가정만을 바라보며 살았다는 최면에 빠져 내 아이가 힘겹게 견뎌내는 하루하루를 외면했다. 이제 나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내 삶을 지탱하는 거의 유일한 대상이었던 내 가정이 오랫동안 서서히 썩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나는 3백 일이 넘는 시간 동안 휴직을 하였고 다시 업무에 복귀하여 3백 일을 지냈다. 답답하고 숨 막히는 직장을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던 차에 진짜 삼재를 만났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이렇게 끝이 없다. 이제 나는 입이 있으되 할 말이 없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무려 10년 전에 다짐했던 삶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불혹을 넘기며 결심했던 생활인의 삶으로, 인고의 삶으로, 욕망이 거세된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 나에겐 선택지란 없다. 나는 뒤틀린 가정을 바로 세우는 것 외에는 존재의미가 없다. 나의 삶은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신중해지고, 부지런해지고, 그리고 너그러워져야 한다.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나에게는 일체의 푸념과 하소연이 금지되었다. 그렇게 2023년을 맞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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