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해방일지, +229일(2022.12.25)

by 낙산우공

고독사가 늘고 있다는 기사가 종종 올라온다. 전통적인 대가족 체계가 붕괴되어 핵가족 중심으로 간다는 오래전 이야기를 넘어 이젠 1인 가구가 대세가 되었다. 독거노인의 수가 늘고 부모-자식 간의 부양의무도 모호해져 갈 뿐만 아니라 결혼을 거부하는 나홀로족이 가세하였으니 고독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갑작스럽게 고독사를 떠올린 것은 나의 건강이나 나이 때문이 아니다. 언젠가 맞이하게 될 죽음에 대해 나는 어떻게 그 순간을 채울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고독사란 단어에 이르게 된 것이다. 고독사의 사전적 의미는 홀로 사는 사람이 앓다가 가족이나 이웃 모르게 죽는 일을 말한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 남겨지지 않는다면 내가 고독사할 일은 없을 것이다. 혼자 있는 중에 갑작스러운 증세로 돌연사를 할 수는 있을지언정 죽음을 앞두고 아무도 찾지 않아 외롭게 눈을 감지는 않을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왜 나는 고독사를 떠올리게 된 걸까?


이유는 이랬다. 고독사의 사전적 정의에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숙명이다. 누구도 함께 죽어주진 않는다. 고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의 죽음을 지켜봐 주는 것과 구분하기 위해 고독사란 단어가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나의 죽음에 몇 명의 사람들이 등장할 것인가 궁금해졌다.


기껏해야 가족일 것이다. 아내와 내 두 아이, 그리고 그 아이들이 꾸린 가족 정도가 나의 임종을 지킬 것이다. 죽는 순간에 함께이진 않더라도 그것을 준비하는 시간을 채워 주겠지. 그 정도일 것이다. 그 외에 내 죽음을 보러 와 줄 이가 있을까? 아니 내가 죽기 전에 한 번은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굳이 떠올리자면 형제자매일 테지만 나는 3남 1녀의 막내다. 나보다 더 오래 살 형제가 있다 하더라도 살아서도 보지 않는 그들을 죽음에 앞서 꼭 보아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여기에 생각이 이르자 내 죽음도 고독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70 혹은 80을 채울지 또는 그보다 훨씬 일찍 생을 마감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짧지 않은 일생동안 무수히 많은 인연을 만들었겠으나 내가 죽음 전에 만나고 싶은 이는 별로 없다. 결국 나는 고독하게 살았던 것이다. 모든 인간이 홀로 태어나 홀로 죽겠으나 고독사에 생각이 머물자 그 무상함이 사무치게 피부에 와닿았다.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이라면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그랬다. 죽기 전에 꼭 보아야 할 사람이 없겠다고 생각하니 나의 한평생이 참으로 덧없구나 라는 결론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왜 이토록 삶에 구질구질한 지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왜 하루하루 징글징글하게 살아내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저 가족 때문이었다. 내가 수십억의 인류 중에 유일하게 그 관계에 집착하는 나의 가족 말이다. 그 끈끈하지만 덧없는 관계가 나의 삶을 온통 지배하고 있었다.


지난 두어 달 동안 우울증을 겪는 아들 덕에 나의 하루하루는 그 아이의 기색을 살피고 챙기고 대화하고 실랑이하고 타협하고 다독이는 일로 점철이 되어 있었다. 어제저녁 내내 아이에게 끌려 다니다가 지친 몸으로 심야영화를 보던 중에 느닷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린 아이를 보며 잠시 허탈함을 느꼈다. 내가 요즘 무얼 하고 있는지 순간 화가 났지만 이내 나는 그 모든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나는 아빠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서 모든 걸 관여하면서 그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아내가 그 짐의 일부를 덜어주길 바랐으나 부질없었다. 그 모든 짐은 나의 것이었고 죽음의 순간까지 결코 가벼워지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안다. 그리하여 나의 죽음은 고독하겠으나 또 한편으로 다시 눈을 뜨고 싶지 않을 만큼 곤한 잠이 되리라 위안을 삼아 본다.


그 두어 달의 몸부림으로 나의 아이는 꽤 나아졌다. 내 몫을 거부하지 않았던 내 수고의 덕분인 것으로 믿고 싶어 진다. 아직 갈 길이 먼데도 말이다. 그것만이 내 지친 영혼을 달랠 수 있을 것만 같은 밤이다. 크리스마스니까…


내 삶을 해방한다고 선언한 지 229일째, 오십하나에 복직한 지 299일째… 나는 이렇게 마지막 삼재의 첫해를 겨우겨우 넘기고 있다.


* Image from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그래서, 연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