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2013.04.26)
팔삭둥이로 태어나 어리석고 모자란 이를 '팔불출'이라 한다는데, 보통은 못나게 아내자랑이나 자식자랑을 늘어놓는 이들을 비아냥거릴 때 쓰곤 한다. 잘난 것 없는 이가 아내나 자식자랑을 한다고 하여 흉이 될 것은 없다. 다만, 눈치 없이 분위기에 맞지 않게 구구절절 꾀고 있으니 듣는 이들이 불편해하는 것이리라. 나는 나름 눈치가 빨라 썰렁하고 노골적인 자랑을 늘어놓지는 않는 편이지만 은근히 에둘러 자랑 아닌 자랑을 할 때가 있다. 적당히 화제에 묻어서 이야기를 꺼내놓고 결국엔 신나게 내 주변 자랑만 한 꼴이 되어 뒷맛이 개운하지 않을 때가 있지만, 대부분 나의 자랑은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정서에 영합하지 않기에 듣는 이들은 자랑이 아닌 흉을 본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렇게 흉인지 자랑인지 모를 이야기 하나를 하려고 한다. 우리 둘째는 출산예정일을 꽉꽉 채우고도 기별이 없어 찾아간 병원에서 촉진제를 맞고 태어났다. 통상 첫째는 예정일보다 늦게, 둘째는 예정일보다 이르게 나온다는 게 정설인데 특이하게 우리 첫째는 예정보다 사흘 빨리 나왔고 둘째는 함흥차사였다. 태어날 때부터 '만만디'였던 탓인지 이 녀석은 도통 무엇을 배우고 익히는 데 있어서 늘 남들보다 몇 걸음 늦었지만 도대체 조급해하질 않았다. 뒤집고, 일어서고, 걷고, 말하고, 뛰고 하는 1차적인 성장에서부터 읽고, 쓰고, 익히고, 배우는 2차적인 학습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제 엄마의 애간장을 태우는 모습에 나는 그저 웃음만 나왔다.
인생 2막이니 백세시대니 떠드는 세상에서 무엇이 그리 급해 빠른 성장에 목숨을 거는지 모르겠다. 누누이 반복하지만 당신의 놀라운 속도와 성공은 길고 긴 동면의 노후를 앞당기는 촉진제일 뿐이다. 하루살이는 아침나절에라도 어떻게든 성숙해져야 하겠으나, 인간에게 속도는 그저 조급증의 폐해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습득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완벽하게 소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기본기가 없는 프로야구 선수는 살아남지 못한다. 재능은 찰나의 순간에 놀라운 순발력으로 게임을 뒤집을 수 있지만, 팀당 133경기를 소화해야 하는 패넌트레이스에서는 기본기와 체력이 수반되지 않는 재능에 주목하는 감독은 없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가 걷지 못하는가? 말하지 못하는가? 뛰지 못하는가? 읽지 못하는가? 쓰지 못하는가? 에 관심을 가질 뿐 그것을 언제 성취했는지는 개의치 않았다. 미완의 대기는 아직 완성된 모습이 그려지지 않기에 늘 기대와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다. 끝끝내 미완인 채로 끝나더라도 꿈을 품고 살았기에 행복하지 않았는가? IT강국 코리아는 속도의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했다. 이제 인간이 빨라져야 할 이유는 100m 육상계에만 존재한다.
각설하고, 우리 둘째는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아이다. 꼼꼼히 챙겨주지 않으면 뭐든 빠뜨리기 일쑤고, 기껏 챙겨줘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손가락 근육발달이 늦었는지 미세한 작업에는 여전히 서툴고 사고 치기를 밥 먹듯 한다. 그런 아이에게 못내 마음이 놓이지 않던 집사람은 육아휴직을 감행했고, 덕분에 이 녀석은 초등학교 1학년에 전담수행 비서관을 두는 호강에 빠져 산다. 유치원 시절부터 선생님의 지시에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녀석은 지긋한 연륜의 담임선생님께도 대책 없는 아이로 낙인찍히기에 이르렀다. 고작 두 달 만에.
수업이 끝나고 적어가야 하는 알림장을 받아쓰지 못해 나머지 공부를 하는 아이처럼 하교시간은 늘 꼴찌고, 수업중간에도 딴짓을 하거나 선생님의 지도에 쉽게 따라가지 않는다. 배가 아프다고 하면 보건실에 보내주는 것을 알고는 하루에 두 번씩 보건실을 다녔다는 이야기를 듣고 살짝 두통이 오긴 했다. 입학 후 처음 치른 시험에서는 14번 문제를 풀다가 배가 아파 보건실에 갔단다. 돌아와서 풀지 않은 6개의 문제가 모두 오답처리된 것을 알고 녀석은 분개했단다. 선생님이 가도 된다고 하고서는 그렇게 채점했다면서 말이다. 도무지 제도권의 규칙을 지켜야 할 이유를 모른다. 이 녀석은.
물론 겁이 많아 윽박지르거나 호통을 치면 조금 반응을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생각해 낸 꼼수는 약간의 신체적 접촉을 수반했던 것 같다. 딱밤을 주거나, 머리 양쪽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잡아당기거나, 손바닥으로 살짝 뒤통수를 가격(?)하는, 본인은 애교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폭력이고 분명한 인권침해라고 보이는 행동을 꽤 자주 취했던 듯하다. 회초리를 들거나 규칙을 정해 벌을 주는 것은 선생님의 교육방침이기에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지만,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가벼운 신체접촉에 있어선 나는 관대할 수 없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도 불쾌함을 안다.
집사람은 아이의 행동을 먼저 따지고 들었지만, 그것은 원인제공의 책임여부와 무관하게 그저 폭력일 뿐이다. 가벼운 폭력은 무거운 폭력을 낳는다. 우리는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폭력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무심하다. 그 행위는 단순히 선생님의 문제를 넘어 그 행위를 지켜보는 모든 아이들, 그 이야기를 듣고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극성(아니 극렬에 가까운) 학부모들 모두의 문제가 된다. 회초리는 채벌이지만 뒤통수를 살짝 건드리는 것은 폭력이다. 인권침탈이다. 명백한.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난 살짝 이성을 잃었고, 아이 앞에서 해선 안 되는 말을 쏟아내고 말았다. 문제는 다음날 벌어졌다. 그날도 말을 들어먹지 않는 우리 아이에게 선생님은 평소와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던 것 같은데 나의 둘째는 정확히 만 6년 하고 9개월에서 4일 모자란 날에 처음으로 기득권에 대한 저항을 했던 것이다.
'선생님, 우리 아빠가 그러셨는데 선생님은 폭력자(?)래요...'
당황한 선생님은 겨우 상황을 수습해서 아이와 화해를 했고, 방과 후 찾아온 학부모들에게 본인의 평소 행동에 대해 아이들이 집에 와서 말을 옮기는가를 확인했던 것 같다. 모두들 맘에 걸리면서 눈치가 보여 선생님께 얘기하지 못하던 차인지라 조심스럽게 들었다고 대답을 했고, 역시나 당황한 선생님은 그건 그냥 '장난(?)'이라고 해명하기에 이르렀다. 벙어리 냉가슴 앓던 학부형들 사이에서 우리 애는 '영웅'이 되었다. 엄마들이 너도나도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묻고 있단다.
내 이야기가 자랑은 아니다. 우리 둘째의 앞날이 더 걱정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아빠를 닮지 않아 용감했던 아이가 자랑스럽다. 집사람은 아직 어리고 눈치가 없어서 그랬다고 하지만, 난 감정에 충실하고 욕망에 충실한 내 아이가 부럽다. 그리고 충실하게 키워내주고 싶다. 우리 첫째는 너무나 완벽한 모범어린이이기에 별다르게 언급할 말이 없다. 게다가 극강의 미모를 갖추고 있다. 더 이야기하면 분명 팔불출의 자랑질(?)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것으로 서운함을 달래주기를, 언제가 이 글을 읽게 될지 모를 첫째에게 바랄 뿐이다.
참고로 첫애는 딸이고 둘째는 아들이다. 이 조합도 나는 만족스럽다. 여기까지. -.-;;;
정확하게 11년 전의 이 글을 읽고서야 아이의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이 떠올랐다. 이 아이는 평범하지 않았고 나는 그것을 익히 알고 있었는데 결국 우울증에 시달리는 아이로 만들어버렸다. 아이 자랑이나 늘어놓다가 말이다. 정말 나는 팔불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