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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Aug 20. 2024

주행강박

꽁무니를 보고 마음이 조급해질 이유는 없었다.

출퇴근 시간의 서울시내 도로는 겪어보지 않아도 상상이 갈 것이다. 그런 길을 오래 다녀본 결과, 생각보다 차가 몰릴 것 같은 시간에 붐비지 않는 길들이 보였다. 대부분 외곽도로나 올림픽대로, 강변북로와 같은 전용차선을 선호하기 때문에 의외로 시내의 도로가 혜택을 보기도 한다. 그 복잡한 시간대에 수년 동안 아이들을 태우고 다닌 보람(?)이라 말할 순 없지만 나는 그런 길에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언제나 시간에 쫓기며 다닌 탓에 체득한 노하우였고 그 비법을 나름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는데, 오늘 아침 아들의 등굣길을 함께 하면서 문득 조금은 다른 생각에 빠지고 말았다. 쫓기듯 사는 삶을 태생적으로 싫어하는데 언제부턴가 내가 시간을 분단위로 쪼개서 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특히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때에 심했다. 쉴 틈이 없는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길에서의 시간을 최대한 줄여주는 것뿐이었다.


아내라면 30분 이상은 족히 더 걸릴 거리를 효율적으로 단축함으로써 아이들에게 그만큼의 시간을 남겨주는 것, 그것에 과하게 몰입했던 나는 머릿속에 온갖 시뮬레이션을 돌려가며 최단거리, 최소시간을 찾아냈고 그것을 실현해 보였을 때 굉장한 만족감을 느꼈다. 이 것이 중독에 해당하는 일인 걸 오늘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조급증에 걸린 사람처럼 차선을 넘어 다녔고 앞차와의 간격이 조금만 벌어져도 따라잡기 위해 액셀을 밟아댔다.


눈치 없이 끼어드는 차에는 여지없이 경적을 울려 경고를 날렸고 운전매너가 형편없는 차를 만나면 접촉사고를 불사할 각오로 위협적으로 운전했다. 무광차량인 내 차가 소위 양카(?)처럼 보이는 시각효과를 극대화하면서 운전을 했고, 그 습관은 아이들이 타고 있지 않은 때에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오늘도 50분은 넘게 걸릴 등굣길을 38분 만에 주파했고 아이는 차 안에서 10분을 더 자고 내렸다. 아이를 내려주고 넉넉하게 출근할 수 있던 길에서도 나는 여전히 급하게 서두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왜 이렇게 조급하고 숨 가쁘게 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앞차의 꽁무니와 조금이라도 간격이 벌어지면 내가 뒤쳐지고 있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꽁무니를 따라가고 있을 때 느껴지는 무력감을 극복하려는 듯 길거리에서 종횡무진 열을 내고 있는 내 모습이 흉측해 보였다. 나는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 앞만 보고 달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1분 1초를 앞당기려는 나의 행동은 기록경기에 임하는 운동선수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기록경기에 출전한 선수가 아니었다.


차선이 줄어 병목이 발생하는 길에서는 한 대씩 교대로 진입해야 하는데 앞차의 꽁무니에 바짝 붙어서 새치기를 하거나 회전교차로에서 회전차량을 무시한 채 무서운 속도로 진입하는 얌체족을 만날 때 나는 가급적 접촉사고를 감수하더라도 양보하지 않으려 했다. 그걸 양보하는 순간 내가 바보취급을 받는 것 같은 모욕감을 느꼈다. 심지어 대부분의 차들은 양보해 준 내게 비상등(?)은커녕 깜빡이조차 생략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나는 그들에 대한 분노를 과격한 운전에 투영했다. 평소 과속을 하지 않고 최대한 동승자의 승차감을 배려하던 나의 운전습관은 최근 들어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운전하는 내내 개념 없는 운전자들에 대한 불만과 욕설을 입에 달고 있었다. 언제나 보조석에 동승했던 아들은 나의 그런 습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곧 면허를 취득할 내 아이가 나의 몹쓸 운전매너를 흉내 낼 생각을 하니 겁이 덜컥 났다.


그리고 숨이 턱에 닿도록 허덕대며 살고 있는 내 모습이 비로소 보였다.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던 오늘 아침, 나는 아주 오랜만에 여유 있게 운전을 했다. 앞차의 꽁무니에 집착하지 않았고 무시로 끼어드는 차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출근시간은 크게 다르지 않았고 끼어드는 차에 불쾌하지도 않았다. 너희는 너희의 페이스대로 가거라. 나는 나의 페이스를 지키겠다. 이렇게 마음먹으니 모든 게 너그러워졌다.


회사 동료 중에 언제나 느긋하게 운전하는 여자분이 있었다. 그의 남편은 잘 나가는 피부과 의사였고 본인도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보유한 능력자였다. 그녀는 길이 막히기로 유명한 반포의 대단지 아파트에 살았음에도 출퇴근 길에서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심지어 잦은 지각에도 불구하고(지각에 대해 무디긴 했다) 그녀는 조급한 적이 없었다. 타고난 성격 탓이기도 했지만 나는 그녀의 여유로운 삶의 배경에 이유가 있다고 믿었다.


한 번은 그녀의 차에 동승했던 성격 급한 직원이 병목차로에서 연신 옆차선의 차에게 양보해 주는 그녀에게 한마디를 날렸다. 뭐 하는 짓이냐고... 네가 이렇게 호구짓을 하니까 저들이 계속 너를 무시하고 들어오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때 그녀가 했던 대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왜 내가 양보하면 안 되는데??? 나는 양보해 주고 싶어... 나는 화가 나지 않아... 내가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이렇게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바로 그녀에게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그러면 안 되지요... 그러면 당신 차 뒤에 있는 사람들은 뭐가 되냐고요... 당신은 당신 뒤차의 권리도 생각해야 하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자신은 그렇게 운전하는 게 편하다고.... 그 이야기를 나눴을 때 나는 그녀를 비난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녀가 부럽다. 그런 마음가짐이... 그런 태도가... 그런 여유가... 그녀가 가진 물질적인 배경을 떠나 나는 그녀의 그런 느긋함과 너그러움이 부럽다. 나는 그녀에게 진 것 같다. 여러모로... 심지어 그녀에게 졌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 져도 되는 거야... 지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바보처럼 사는 게 부끄러운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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