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가기 시작한 눈덩이

함께 굴러 떨어지지 않기를

by 밤하

굴러가기 시작한 눈덩이는 쉽게 멈추지 않아.

나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손실을 경험하고 나서야 이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됐어.


나는 지금 대학교 안에서 속눈썹 시술 샵을 운영하고 있어. 손님들이 오시면 다들 대학교 안에 이런 샵이 있다는 거에 놀라워하시더라고. 어떻게 이곳에 샵을 차리게 되었는지 다들 물어보셔. 그럼 난 대부분 이렇게 말해.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흘러오게 됐네요^^”
오늘은 내가 대학교 안까지 흘러오게 된 경위를 이야기해 줄게. 부디 이 글을 읽는 너희는 나처럼 멈추지 못해 큰 손해를 입는 일은 피하게 되길 바라.

처음부터 이곳에서 시작했던 건 아니었는데, 처음엔 할머니 집 아래층에서 샵을 준비하고 있었어. 사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하다 보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문제가 닥치면 그때그때 해결해 나가면서 돈과 시간을 투자했어. 되도록이면 돈을 많이 남기고 싶었기 때문에 거의 셀프로 인테리어를 해나갔는데 그러다 보니 시간과 노력도 정말 많이 들어갔지. 인테리어와 동시에 사업자등록을 위한 준비가 들어갔고, 진행이 되어갈수록 가게 건물과 관련해서 문제가 점점 더 크게 드러나기 시작했어.

처음엔 내가 이곳저곳에 전화하고 찾아가면서 공무원들에게 사정을 하면 없던 해결책이 생기는 수준이었어. 그렇게 찾은 해결책이 완전한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바라면서 나는 계속 인테리어를 진행해 나갔어.

그 당시엔 인테리어로 한 200만 원 좀 넘게 썼을 때여서 투자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난 꼭 이 자리에 가게를 내고 말 거야’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렇게 애써 해결책을 찾아가면서 장애물을 넘기면, 나중엔 그 장애물이 더 커져서 돌아오더라고.

작은 돌멩이를 치우려고 했더니, 그 돌멩이를 뽑아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고, 뽑으려고 했더니 그 돌멩이가 깊숙이 박혀있는 커다란 암석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 같았어.

그럼에도 투자한 돈이 아깝고, 내가 쏟은 시간과 활력을 다시 쏟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끝까지 밀고 나가다 보니 인테리어가 마무리되는 날이 왔어. 자그마치 3개월 동안 이어지던 인테리어가 끝난 바로 그날 나는 이 가게를 떠나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어.

그날, 이 상황을 보던 어른들이 이건 안 될 문제라고 의견을 모았고 여기서 포기해야 한다고 설득 같은 강요를 했거든.


나는 여기에 내 모든 걸 쏟아부었는데,

거의 도움을 못 받은 채로 혼자 모든 걸 끝내느라 더 이상 다시 시작할 힘이 남아있지 않은데,

돈도 활력도 다 쓴 마당에 똑같은 일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게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어.
포기를 강요하는 어른들과 날 지켜주지 못하는 부모님, 이렇게 노력해도 돈이 없어서 포기해야만 하는 내 상황..

모든 게 다 미웠고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어. 그래서 그날 계단에 앉아서 꾹꾹 눌러 담아왔던 눈물을 펑펑 쏟아냈지.


결국 진짜로 다시 시작했어.

어쩌겠어,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가야 하니까. 아무리 망했어도 죽은 게 아니면 결국 또 움직여야 하니까.
한 걸음이라도 걸어가다 보면 어디든 가게 되겠지.

대학교의 지금 내 가게는 부모님의 두 번째 미용실이 있던 자리야. 원래도 운영이 어려워서 내가 들어오길 바라셨었는데, 내가 속눈썹 기술을 생업으로 삼기로 정하면서 엄마와 트러블이 생겼다 보니 그곳에 들어가면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고 판단해서 안 들어갔던 거였어. 그런데 문제가 이렇게 되었다 보니 부모님도 나에 대한 죄책감이 들고 내가 불쌍했나 봐. 이전처럼 강하게 나를 나무라지 않고 그냥 바로 가게를 내어주고 미용실 물건을 빼는 것까지 도와주셨어.

나는 기술을 배우고 인테리어를 두 번이나 하게 되면서 모아둔 돈을 다 쓰게 됐어. 몇 년간 모은 청약저축도 깨야했고, 가게가 정착하는 동안 생활비로 쓰려고 생각해 둔 돈도 가게를 옮기면서 다 쓰게 됐어. 그러다 보니 생활비를 벌고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나는 3개의 직업을 가져야만 했어.


그래도 생활이 빠듯해서 고장 난 냉장고를 고치지 못했고, 밥 사 먹을 돈도 없어서 굶고 다니고, 버스비를 낼 돈이 없어서 버스카드는 몇 개월치 연체되기도 했었지. 그런 상황에서 나가야 할 돈을 감당하기 위해, 형편이 안 되는 걸 알고 있음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고 할머니한테 빌리려다 거절당하고 엄마한테 빌리려다 거절당하고, 결국 동생한테 돈을 빌리게 되었을 때의 비참함은 내 마음에 각인 돼서 가난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닫게 했단다.

굴러가기 시작한 눈덩이는 쉽게 멈추지 않지.
투자한 돈과 시간이 클수록 나는 멈출 수 없었고, 그럴수록 더 큰돈과 더 많은 시간이 함께 굴러가게 되더라. 내가 쏟아부을 수 있는 모든 게 다 뭉쳐졌을 때, 더 이상 내놓을 게 없게 됐을 때, 그것들은 나를 끌고 절벽으로 함께 떨어졌단다.


만일 안 좋은 조짐이 보인다면,

돈을 얼마나 투자했든, 시간을 얼마나 투자했든,

그 자리에서 멈춘다는 옵션도 선택지에 넣어두길 바라. 어쩌면 그게 네가 가장 적게 손실을 보는 방법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걸 기억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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