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인터넷, 드레스 리허설 사진, 시작, 시스템 종료. 작업표시줄에 펼쳐놓은 창을 오른쪽에서부터 하나씩 끄다 하마터면 컴퓨터까지 끌 뻔했다. 마우스를 다시 돌려 오른쪽 아래 구석에 연두색 아이콘을 클릭했다. S.B.J. 노래 열 여덟 곡이 재생되고 있는 키위 플레이어가 튀어나왔다. 책상 칸막이 너머로 다른 자리를 둘러봤다. 다들 어디 갔는지 음향감독만 고개를 빼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 자리에선가 전화가 울려 당겨 받았다.
「감사합니다. 사라씨어터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홍보 업무 지원한 사람인데요.」
전화한 사람은 다음 주 면접 볼 곳이 정확히 건물 2층 어디에 있는지 물어봤다. 사라씨어터는 공연을 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었다. 공연을 보려면 1층으로 들어와 그랜드피아노(공연과 아무 상관이 없다)와 재단 로고로 만든 조형물을 지나 올라와야 했다. 2층에 올라와야 비로소 매표소와 극장 입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무를 보거나 회의를 하는 공간은 공연에 필요한 공간을 짓고 남은 자리에 욱여넣었다. 사라씨어터에 공연을 보러 온 적이 있더라도 사무공간이 어디 있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주간 회의에서 면접 보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2층 회의실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판을 세워놓자고 했다. 2년 전에 면접을 보러 왔을 때 나도 회의실을 찾지 못해 지하까지 내려간 적이 있었다. 화려한 극장 입구를 제외하고는 사라씨어터 안에 문이 다 같아 보였다. 원래는 계약직 나가기 전에 다음 계약직을 뽑아서 인수인계를 시킨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내년 초에 시작하는 사업에 맞춰서 내가 나간 다음 뽑는다고 했다.
컴퓨터 오른쪽 아래에 해린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S.B.J. 스밍 잘 돌리고 있느냐. S.B.J.는 3년 전에 안 보는 사람이 없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습생을 모아 만든 그룹이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기간에는 팬들 사이에서 ‘살리고 보는 조합’이라고 불렸단다. 살려야 되는 연습생이 최종 데뷔하지 못하고 모두 떨어지자 팬들은 기획사에 요청하기 시작했다. 트위터에 실시간 트렌드 검색어를 띄우고 각 기획사에 팩스를 보내고 회사 앞에 '살리고 보는 조합' 결성을 원한다는 트럭 광고를 해댔다. 드디어 프로젝트 그룹이 만들어졌고 팬들이 부르던 이름에 앞글자만 따서 알파벳을 붙인 것이 그룹명이 됐다. 다 해린에게 들은 것이었다.
우리는 지난주에도 만났고 그때도 해린은 S.B.J. 이야기를 했다.
“우리 애들 이번 달이 활동 마지막이야."
"벌써?"
S.B.J.의 프로젝트 그룹 활동 기간은 3년이었다.
"활동 끝나기 전에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줘야 하는데.”
“걔들이 하고 싶은 게 뭔데?”
"연장.”
대출 연장할 때 회사로 전화가 갈 텐데 그때까지 합격하는 곳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해린이 술집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울기 시작할 때 나는 대출 연장을 생각하고 있었다. 소주잔과 숟가락 사이에 머리를 몇 번 박더니 S.B.J.의 마지막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며 징징댔다. 이번 생에 나한테 남는 건 우리 애들뿐이야. 술 취해서 어물어물 말하다가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나에게 S.B.J.의 노래를 스트리밍해달라고 했다.
“너도 노래 들을 때 키위 플레이어 쓰지? 재생 목록에다가 우리 애들 노래 넣어주기만 하면 돼.”
나를 이용하려고 술 취한 척 연기한 게 분명했다. 해린을 택시에 태우고 번호판을 찍어서 보내자 순식간에 ‘S.B.J. 음원 스트리밍 리스트’가 답장으로 왔다. 노래를 듣지 않을 때도 틀어놔 달라고 했다.
「야 근데 이거 한다고 뭐가 되긴 하는 거야? 차트 조작 많다며.」
일하는 마지막 날까지 스트리밍을 시키는 해린에게 한 마디 반항해봤지만 메시지창에 대답 대신 굽신거리는 토끼가 핑그르르 한 바퀴 돌고 있었다. 플레이어에서는 8번째 곡이 나오고 있었다. 컴퓨터 스피커는 꺼놓아서 당연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지만 해린의 말대로 플레이어 볼륨은 5 정도 켜놨다. 그렇게 해야 재생수가 순위에 반영된다고 했다. 플레이어의 재생바가 오른쪽으로 움직일 때마다 왼쪽 시간은 늘고 오른쪽 시간은 줄어들었다.
탕비실에 들어가서 정수기 물을 한 잔 따랐다. 이게 여기서 마시는 마지막 물인가. 컵을 씻었다. 마르면 잊지 말고 챙겨야지. 이건 내 거니까. 정수기 옆에 믹스커피가 두 개 남아있었다. 아침에는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탕비실에서 간식을 집어오거나 근무 시간에 보조배터리를 충전하고 모바일로 받던 카드 명세서까지 꼬박꼬박 회사 프린터로 뽑아가는 작은 횡령을 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난다는 내용의 기사를 본 적 있었다. 키위 플레이어를 돌려서 회사 컴퓨터 메모리를 차지하고 회사 전기를 잡아먹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횡령이었다.
노래 재생이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한 다음 모니터 전원만 껐다. 외출하려면 극장장에게 인사하고 가야 하는데 사무실에서 극장장실까지 몇 걸음이나 된다고 가기 싫었다. 극장장이 어떤 것부터 물어볼지 뻔해서 한숨이 나왔다. 문패 없는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자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극장장 책상 뒤 선반에 가로로 길쭉한 스피커가 첼로의 저음을 내고 있었다. 한번은 정 매니저와 함께 포스터 최종 시안을 보고하러 갔다가 보고한 시간보다 클래식 이야기를 세 배 정도 더 듣고 나온 적도 있었다. 이번 시안은 좀 늦었다는 꾸중에 ‘저희랑 계약하기 전에 러시아 공연 잡힌 배우가 있어서요, 스케줄 맞추다가 포스터에 쓸 사진 촬영이 늦었어요.’라고 대답한 게 화근이었다. 러시아? 내가 모스크바 마린스키 극장에서 공연 끝나고 식당 찾느라 헤맸잖아. 그러다 라흐마니노프 동상을 딱 만난 거야. 그날 나는 연습실에 갈 일이 있다고 먼저 나왔다. 지금 흘러나오는 곡도 아는 노래였지만 아는 척하지 않았다.
“극장장님. 다녀오겠습니다.”
“오늘 면접 보러 간다 그랬지? 합격하면 좋겠네.”
저 스피커는 전기세가 얼마나 나올까. 확실한 건 극장장에게 스피커를 틀어놓는 것쯤은 횡령이 아니란 사실이었다. 아마 스피커를 살 때도 사무기기 구매 정도로 처리했겠지. 연차가 얼마나 쌓이면 더는 횡령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이재단은 어떻게 됐어?”
“지난주에 발표 났는데 저는 떨어졌어요.”
면접까지 가지도 못해 목소리가 작아졌다. 지원하고 탈락하는 것은 회사를 옮길 때마다 있는 일이었다. 여기 오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극장장이 감히 사라씨어터에서 일했던 사람을 서류 전형에서 떨어트리냐고 호통을 쳐도 이상하지 않을 성격이라 쪼그라들었다. 극장장은 사라씨어터가 만들어지기 전 사라재단부터 시작해 사라그룹을 위해 30년을 일해왔다고 들었다. 마린스키 극장 앞에 라흐마니노프 동상이 있다면 사라씨어터 앞에 극장장 동상을 세워야 했다. 그런 사람이 잔소리 없이 외출하라고 하자 내가 사라씨어터에서 일하는 마지막 날이라는 것이 실감 났다.
자리로 돌아가다 어느새 돌아온 이 PD와 눈이 마주쳤다. 입 모양으로 파이팅이라고 하며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내가 면접 보러 간다는 걸 팀원들이 다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동안 연차를 쓸 때는 병원에 간다거나 집안 경조사같이 더 질문받지 않을 정도의 사유를 만들었다. 마지막 날까지 쓸 수 있는 연차가 없었다. 오후 세 시에 외출하기 위해서는 면접 보러 간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사무실에서 나오자 정 매니저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고 있었다.
“면접 가는 거야? PD들 다 아는데 나만 몰랐어. 섭섭해."
"말씀드린다는 걸 퇴사 준비하느라고 깜빡했어요."
"홍보 쪽은 아니지만 더한아트센터에서 일하는 지인 있거든. 물어봤는데 거기 이사장이 자기소개한 다음에 꼭 유도 질문을 한다네. 무섭게 쏘아붙이는데 그냥 자기 생각 말하면 된대. 어차피 답변보다 태도를 보는 거라고.”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오늘 면접에 이사장까지 나올지 모르겠어요.”
“거기 웃기더라. 경력직 구하면서 내년 일 년짜리가 말이 돼? 전환 안 된대?”
그러는 여기는 2년짜리잖아요. 정 매니저에게 말을 해서 뭐하나. 입을 다물고 인사나 한 번 더 하고 비상구로 들어갔다. 정 매니저는 사라씨어터에서 제작하는 뮤지컬의 홍보를 담당하는 정규직 직원이었다. 정 매니저가 아니었으면 나는 여기서 업무 보조나 했을지 몰랐다. 내 경력을 보더니 충분히 뮤지컬 하나는 맡아서 할 수 있겠다고 극장장을 설득해줘서 경력기술서 맨 위에다 자랑스럽게 올릴 수 있는 업무를 담당할 수 있었다. 극장장에게 외출 허락을 받고 나서도 팀원들에게 면접 보러 간다고 말하지 않은 이유는 퇴사하는 날까지 아무 데도 합격하지 못한 것을 내 입으로 알리기가 싫어서였다.
극장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객석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매표소가 기역자로 맞대고 있었다. 몇 년 전 공연을 보러 왔을 때는 긴 테이블에 티켓 받는 곳이 세 군데로 나누어진 개방형 매표소였지만 관객이 티켓 매니저를 폭행한 사건 이후로 벽을 세우고 작은 창으로 티켓을 건네받는 창구 형태로 바뀌었다. 객석 입구가 있는 쪽을 제외하고 2층 나머지 면은 통유리로 둘러져 있었다. 덕분에 건물 밖에서 올려다보면 2층 로비 안이 보였다.
“찾았다.”
역시 만년필은 매표소 책상 위에 있었다. 첫 직장이었던 문화재단의 팀장이 선물로 준 것이었다. 검정 몸통에 금박으로 늘꿈문화재단의 로고가 그려져 있었지만, 이제는 닳아서 뭐가 쓰여 있었는지 알아볼 수 없었다. 우리 재단에서도 자체 제작 상품을 파나요? 옆자리 직원 책상에 이 펜이 놓여 있었다. 직원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걸 본 팀장이 자기 것을 내어 주었다. 재단 기념품으로 맞춘 만년필이 단가가 꽤 나가서 정규직 직원 수에 맞춰 주문했다고 했다. 팀장이 펜을 주면서 말했다. 다음엔 더 좋은 데 가.
그때 누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펜을 들고 서 있던 참이라 창구를 통해 검은 치마에 검은 구두를 신고 뛰어가는 다리만 보였다. 공연도 없는 날 누구지. 오늘 저렇게 단정하게 입은 사람이 있었나. 매표소에서 기척이 나자 여자는 다시 돌아와 창구에 대고 말했다.
“죄송한데 면접 보러 온 사람인데요. 어디에서 면접 보는지 아시나요?”
“면접이요?”
“여기 직원이 아니신가 보네. 실례했습니다.”
그 여자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다른 쪽으로 뛰어갔다. 면접은 다음 주일 텐데. 건물을 잘못 찾았나. 서둘러 매표소를 나와 한 바퀴 둘러보았다.
“여기서 뭐하고 있어?”
매표소 뒤에 분장실과 이어진 쪽문으로 무대감독이 수그린 채 걸어 나왔다. 여자가 뛰어간 쪽에선 아무 기척도 없었다. 나는 감독에게 누가 뛰어가는 소리를 듣지 못 했냐고 물어보려다 말았다.
“어디 좋은 데 가나 봐? 아니다. 마지막 날이라고 차려입은 거구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일 층으로 내려가면서 감독이 농담하듯 물었다. 감독을 보자 처음으로 출근한 날이 떠올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출근하자마자 무대감독이 극장 구석구석 투어를 시켜줬었다. 극장 설계부터 참여해 10년 전 개관할 때부터 이곳 무대감독으로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당시에 나는 이제 직원이 아니면 가볼 수 없는 곳을 카드키 하나로 갈 수 있다는 설렘에 고무되어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부서는 달라도 높은 사람이니까 감독에게 잘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 1, 2층 객석 수부터 시작해서 무대 배턴에 조명을 몇 채널이나 연결할 수 있는지 같은 자세한 내용까지 사라씨어터를 막힘없이 소개하는 감독을 보면서 나는 얼마나 일하면 저걸 다 외울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제작 뮤지컬 두 편 하니까 한 해가 간다.”
감독은 1층 정문 오른쪽 벽에 크게 붙은 포스터를 보며 말했다. 포스터 시안 뽑는 것까지 함께했는데도 다음 달에 뮤지컬이 시작하면 관객으로밖에 볼 수가 없었다.
“개관할 때 뮤지컬 자체 제작한다고 해서 주위에서 참 말이 많았어. 우리 극장이 김종욱찾기 하는 작은 극장도 아니고 세종문화회관처럼 삼천 석 대극장도 아니고. 달랑 오백 석짜리 중극장은 뭘 하기 애매하다는 거였지.”
극장 투어를 하면서 들었던 말이기도 했다. 그때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듣기만 했는데 이제는 맞장구를 칠 수 있었다.
“내년 여름에 대관 들어오는 뮤지컬은 초연에다 창작인데도 우리 극장 사이즈만 생각하고 무대를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재연까지 여기에서만 공연하고 싶다는 건데, 이제 사라씨어터가 뮤지컬 하는 극장 소리 좀 듣는다는 거죠.”
‘우리’라고 말할 때 목소리가 떨린 게 티가 났을까. 오늘까지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너 많이 컸다. 그래, 뭐든 오래 하니까 인정받는 날이 온다.”
감독님 ‘한곳에서’가 빠졌어요. 뭐든 한곳에서 오래 하면 인정받는다. 이게 맞는 말 아닌가요. 벌써 3시 20분이 넘어 서둘러 극장을 빠져나왔다.
*
면접 보는 곳은 지하철로 다섯 정거장 떨어진 더한아트센터였다. 사라씨어터처럼 극장으로 쓰기 위해 지은 독채 건물이긴 하지만, 안에 소극장 두 곳, 대극장 한 곳이 있어 아트센터라는 이름이 걸맞은 규모였다. 정문에서부터 엘리베이터까지 안내표시가 촘촘히 붙어있어 도착하자마자 5층 면접장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서류 합격자는 총 열 명. 팔꿈치가 반질반질한 재킷을 입은 남자가 복도 의자에 앉아있으라고 했다. 여기는 인사팀이 따로 있던데, 저 남자는 정규직이겠지.
"호명하면 두 분씩 같이 들어가실게요."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온 옆 사람과 서로 쳐다봤다. 지난달부터 면접을 보았던 곳들은 대부분 면접관 하나에 면접자도 나뿐이었는데. 같이 면접을 보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이사장이 면접관으로 들어오는지 이사장실에서 면접을 본다고 했다.
“저희가 제일 마지막인가 봐요.”
옆 사람이 말을 걸었다. 경력직 면접이니까 너무 갖추어 입지 않아도 되겠지 하고 나는 하늘색 블라우스에 검정 슬랙스를 입었다. 옆 사람은 검정 재킷에 검정 치마, 검정 구두까지 면접의 정석대로 입고 있었다. 네 하고 답하자 본격적으로 말을 붙였다.
“서류만 이백 명 넘게 지원했대요. 여기도 전환 어려울 것 같은데…… 요즘 지원할 데가 너무 없어요.”
“홍보 쪽으로는 오랜만에 나온 공고라 더 몰린 것 같아요.”
“어디서 일하셨어요?”
“사라씨어터요.”
“아! 거기 한번 가봤어요. 뮤지컬 하는 극장 맞죠? 창문 통유리로 되어있는 데죠? 전 발레단에서만 일했는데 뮤지컬 일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더한아트센터는 세 개의 극장을 가진 만큼 연극, 뮤지컬, 무용 등 다양한 종류의 공연을 올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하는 공연은 뮤지컬이었다. 같이 면접 볼 사람이 뮤지컬에 관련된 경력이 없어도 서류에 합격했다는 건 발레단 경력이 꽤 된다는 말이었다. 대진운이 썩 좋지 않군. 내 이름을 불렀다. 이사장 양옆에 한 사람씩, 세 명의 면접관 앞에 앉자마자 자기소개를 시켰다. 옆 사람까지 자기소개가 끝나자 가운데 앉아 있던 이사장이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홍보 일은 계속했는데 회사가 세 번이나 바뀌었네요.”
회사 자주 옮긴 게 마음에 안 든다는 걸까, 그사이에 생긴 공백기가 거슬린다는 걸까. 문화재단은 인턴이었고, 정규직으로 들어간 회사는 망했다고 말을 해야 돼 말아야 돼. 망한 게 내 탓은 아니잖아. 아닌가. 그런 회사를 고른 건 나니까 나보고 보는 눈이 없다고 하려나. 뭐라도 말을 하려고 입을 떼는 순간 이사장이 말을 이었다.
“공연 일은 왜 계속하려고 해요?”
날카로운 말투로 미루어 보아 정 매니저가 말한 유도 질문인 것 같았다.
“저는 저로 인해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보고 힘이 납니다. 그래서인지 인생에서 제가 했던 선택은 모두 대중의 즐거움을 만드는 것과 연결되었습니다. 미디어콘텐츠도 즐거움을 만드는 방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전공했습니다. 졸업할 즈음 좋은 기회로 늘꿈문화재단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대답을 하는 동안 이사장은 내 자기소개서로 보이는 서류를 읽고 있었다. 방금 말한 내용이 지원동기에도 있다는 걸 안다면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을까.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없는데 저는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사장은 내 서류에 뭐라고 쓰면서 또 물었다.
“여기도 일 년 계약인데 괜찮겠어요?”
이게 진짜 질문이었다. 붙여만 주시면 더한아트센터에 충성하는 개가 되겠습니다. 저는 더 이상 사라씨어터의 개가 아닙니다. 월월. 이런 말은 전에 봤던 면접에서 벌써 써먹었다. 참신한 대답을 하고 싶었다.
“마지막을 알고 일하니 더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만들어낸 말이라 말 끝에 웃음이 났다.
*
같이 면접 봤던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면접이 끝나고 아까 안내해주던 남자 직원이 그 사람을 불렀다. 나는 대충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러 갔지만 기다려도 1층에서 올라오지 않았다. 옆에 비상구로 내려갔다. 면접 끝에 내년부터 가을마다 발레공연을 올린다고 했다. 저 사람만 불러서 담소를 나누시던가 나는 왜 부른 거래. 일등을 위한 들러리가 아홉 명 필요했는지도 몰랐다. 패딩 입을 걸, 차려입는다고 괜히 코트를 입어서 찬바람이 블라우스 사이로 들어왔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정문을 나와 코트를 여미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지난봄에 사라씨어터에서 제작한 뮤지컬에서 같이 일했던 조명 오퍼레이터였다. 만날 때마다 나를 꼬박꼬박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연출이면 연출, PD면 PD. 같은 직업군이더라도 동문이 아닌 이상 선배라고 부르지 않았다. 직업에다가 ‘님’자를 붙여서 부르는 것이 업계의 예의였다.
“공연 보러 오셨어요? 저 지금 대극장에서 하는 뮤지컬 조명 오퍼해요.”
작년 여름에 했던 뮤지컬 시파티에서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같이 일할 사람들끼리 좀 더 친해지려고 전공을 물어보는 건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미디어콘텐츠를 전공했다고 하자 자신은 콘텐츠미디어 학과를 나왔다고 나를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크루에 들어간 지는 삼 개월 됐어요.”
그가 편의점 봉투에서 꺼낸 따듯한 캔커피를 건넸다. 퇴근 시간까지 돌아가면 되겠지 하고 함께 건물 앞 벤치에 앉았다.
“선배님도 인턴 하신 적 있어요?”
“저는 마지막 학기 중에 인턴이 돼서 그 뒤로 죽 일했어요.”
“우와! 경력이 상당하시네요. 사라씨어터에서 인턴 하신 거예요?”
“아니요. 처음에 일했던 곳은 학교랑 연계한 문화재단이었고 그다음엔 대학로였어요.”
대학로 기획사가 망해서 문을 닫는 바람에 사라씨어터에 왔지만. 그렇게 옮긴 곳도 오늘로 끝이니 그가 말한 상당한 경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저도 선배님처럼 계속 일하고 싶어요. 졸업하고 이 년 넘어가니까 전공 살려서 일하는 동기도 몇 명 남지 않더라고요.”
그는 분명 나를 정규직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캔커피가 다 식지 않았지만, 손이 차가웠다. 나는 정규직이 아니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같은 전공이라서 그런지 선배님 뵐 때마다 반갑고 힘이 나요. 공연 일은 사람도 너무 자주 바뀌고 솔직히 힘들잖아요.”
“저기……. 아니다, 우리는 좋아하는 일 하잖아요. 힘냅시다.”
나는 선배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하는 대신 일 하면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을 하고 말았다. 내가 이제 막 이 업계에서 일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라고 충고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다. 자기소개서 좀 그만 쓰고 싶다고 할 때마다 해린은 그래도 너는 좋아하는 일 한다고 했다. 그러는 너는 네가 사랑하는 S.B.J. 앨범 사려고 돈 벌어야 하잖아. 돈 벌려면 일해야 되고 그럼 너도 지금 하고 싶은 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따지면 모두가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는 건데 왜 나만 또다시 시작해야 해. 답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시작하고 끝낼 권한이 없는 사람은 마냥 버텨야 한단다.
*
지하철에서 내려 개찰구로 올라갔다. 개찰구를 찍고 나가자마자 보이는 쪽에 S.B.J. 3주년 광고판이 있었다. 걸린 지는 두 달 정도 됐는데 삼 주 전에 S.B.J. 멤버 몇 명이 와서 인증 사진을 찍고 간 다음부터 팬들이 많이 오기 시작했다. S.B.J.가 온 날은 해린이 사라씨어터에 뮤지컬을 보러 오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해린은 야근이 끝나지 않아 오지 못했고, 새벽 내내 전화통을 붙잡고 울었다.
나는 광고판에 팬들이 붙여놓은 포스트잇을 보고 있었다.
“더 붙이지 마세요. 광고 오늘 끝나요.”
역사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포스트잇을 뗐다. 나는 광고판이 잘 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광고판 근처에 캐리어를 끌고 온 사람 두 명과 교복 입은 학생,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이 포스트잇 떼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고 있었다. 그때 해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광고에 포스트잇 떼고 있대. 이제 철거하나봐. ㅠㅠㅠㅠㅠㅠ」
「소오름. 씨씨티비로 보고 있냐?」
「트위터에 다 떴어. 망할. 보러 가지도 못했는데 벌써 끝나.」
「남 응원하는 것까지 굳이 봐서 뭐 해. 진짜 삼 주년인 날에는 얘네 해체하고 없잖아.」
「해체라고 하지 마라.」
해린과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고개를 들었다. 인부 두 명이 광고판 양옆에 서서 광고 필름을 떼고 있었다. 막상 철거하는 모습을 보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곁으로 갔다.
"이거 가지러 오신 분이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인부는 나를 누군가와 오해했는지 떼어낸 광고 필름을 말아 내게 건넸다. 나는 얼떨결에 받아들고 아무것도 없는 흰 광고판 앞에 섰다. 어느새 동영상을 찍던 사람들도 가버리고 행인도 드문드문했다. 이대로 비어져도 괜찮은 걸까. 가방에서 네임펜을 꺼냈다. S.B.J. 멤버가 지하철역에 또 올지 모른다며 해린이 사인받아 놓으라고 내 가방에 넣어놓은 것이었다. 비어져서 흰색 배경만 남은 광고판이 포스트잇 같아 보였다. 뭐라도 쓰고 싶었다. 광고판에 펜을 대려다 손가락에 힘이 빠졌다. 저기요, 낙서하시면 안 돼요! 역사 직원이 다가왔지만 나를 제지할 순 없었다. 펜 뚜껑도 열지 않은 상태였다.
*
지하철역을 나와 퇴근하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출근하는 사람처럼 극장으로 돌아갔다. 공연이 없는 사라씨어터 2층에는 당연히 불이 꺼져있었지만 지는 해가 통유리창을 통과해 어스름하게 주황 불을 켠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해가 늦게 지는 여름에는 밝은 로비에 있다가 어두운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공연 볼 맛이 나지 않는다고 통유리창이 싫다는 관객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투명하게 안이 보여서 좋았다. 나중에 저 멀리서 봐도 어떤 공연을 하는지, 누가 일하고 있는지 다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신발 바닥이 버스럭거렸다.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광고 철거하면서 떨어졌나.
너희의 내일을 응원해.
내 일도 없는데 내일이 있으려고. 구겨진 포스트잇을 펴서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
카드키를 찍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 안에 불이 전부 꺼져있고 아무도 없었다. 내 자리만 불을 켰다. 광고 필름을 책상 옆에 세워놓았지만 자꾸 쓰러졌다. 쓰러진 채로 바닥에 두었다. 목걸이 끈으로 카드키를 돌돌 말아 경영지원팀 책상에 놓아두었다. 내 책상으로 가서 모니터 전원을 켜자 컴퓨터에서는 여전히 S.B.J.의 노래가 재생되고 있었다. 플레이어의 정지 버튼을 눌렀다. 습관적으로 켠 인터넷 창에 아까 보던 채용 공고가 떴다. 그때 해린에게 전화가 왔다.
「퇴근했어?」
「퇴사한다.」
「수요일인데 무슨 퇴사를 해.」
「내 앞에 사람이 2년 전 화요일에 퇴사했으니까 이번에 나는 수요일에 퇴사할 차례지.」
「뭔 말이야.」
「친구 퇴사하는 날도 기억 못 하면서 왜 전화했어?」
「우리 애들 광고 마지막 모습이나 찍어서 보내라니까 애는 뭐야?」
「왼쪽에 있던 애.」
「시즌 세븐에 나오는 연습생 아니야? 너 아직도 우리 애들 얼굴 몰라?」
「너희 애들은 오른쪽에 있다가 끝났어.」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리패키지 앨범 스밍 리스트에 넣어줘. 아니다, 일단 퇴사해 봐. 내가 다시 전화할게.」
자꾸 하니까 내 퇴사는 아주 흔한 줄 아네. 전화를 끊고 다시 플레이어에 재생 버튼을 눌렀다. 재생바가 움직일 때마다 왼쪽 시간은 늘고 오른쪽 시간은 줄어들었다.
핸드폰에 메시지가 떴다. 공연 없으니 송별회 일찍 시작하자고 하셔서 다 같이 퇴근했어요. 호프집 어디인지 알죠? 오늘 밤 주인공 얼른 와요. 답장을 썼다. 매니저님, 이제 퇴사하니까 선배라고 불러도 되나요? 정미소 선배님. 다 지우고 메시지를 다시 썼다. 노래 하나만 듣고 갈게요.
극장장실 문을 열었다. 내 목적은 스피커였다. 보기보다 무거워서 결국 한쪽을 바닥에 질질 끌다시피 해서 내 자리로 가져왔다. 플레이어에 노래가 끝나가고 있었다. 재생바를 왼쪽으로 옮기고 볼륨을 최대치로 높였다. 스피커를 연결하자마자 찢어지는 소리가 날 줄 알았는데 듣기 편한 고음이 났다. 소리가 흘러넘쳐 극장 밖으로 나갈 것만 같았다.
그때 사무실 문밖에서 누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 발소리가 들렸다. 퍼뜩 낮에 보았던 그 여자가 생각났다.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비상구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비상구로 뛰어 들어가자 계단 위쪽에서 소리가 났고 계속 소리를 따라갔다. 나는 극장이 있는 2층으로 나갔다. 해가 완전히 져서 비상구 표시등과 밖에서 들어오는 간판 불에 의지해서는 로비에 누가 있는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숨을 돌리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여자의 실루엣이 걸어 나왔다.
“여기 직원이신가요?”
“네.”
이번에는 대답했다.
“와! 멋지다. 전 방금 홍보 매니저 면접 봤어요. 꼭 붙고 싶어요.”
“면접 오늘 아닌데요?”
여자는 내 말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여기서 진짜 일해보고 싶어요.”
여자는 비상구로 나가려고 했다. 어떻게 오늘 면접 본 사람이 헤매지도 않고 비상구를 찾았지. 문은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데.
"거기 말고 엘리베이터로 내려가세요."
나는 여자를 불러 세웠다. 고작 한 층 내려가는 거지만 엘리베이터를 태워주고 싶어서 버튼을 계속 눌렀다. 여자는 내 옆으로 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불빛으로 여자 얼굴이 보였다.
“꼭 다시 봬요.”
내 말에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문이 닫혔지만 엘리베이터는 위로도 아래로도 움직이지 않고 계속 멈춰 있었다. 버튼을 눌러 문을 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자는 분명 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생각할 새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고 해서 서둘러 올라탔다. 타긴 탔는데 위든 아래든 어느 쪽으로도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스트리밍 돌리던 노래가 끝났겠지만 다시 시작하러 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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