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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예리 Jan 11. 2024

마음에 하늘나라가

8. 사망과 출생


1971년 7월 11일 일요일

'뎅~ 뎅~뎅~ 뎅~뎅~'

새벽 다섯 시를 알리는 안방의 검은 자명종 벽시계 종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 침묵이 흐르는 순간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룡이 아버지! 성룡이 아버지!'

소스라치게 울부짖는 어머니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

'성룡이 아버지, 성룡이 아버지 성룡이 아버지-이!'

안방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어머니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연실 들려왔다. 나는 꿈을 꾼 게 아닌 걸 알았다. 이때 별채에서 돌아온 할머니는 비수 같은 어머니의 울부짖음에 기겁을 하고 안방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세차게 쪽문을 열어젖힌다.

'왜 이러는규? 성룡이 아버지. 정신 좀 차려봐유. 성룡이 아버지.'

'여-여보게, 정신차리게.'

나는 비몽사몽 한 채 눈을 비비며 건넌방 문을 열고 나와 활짝 열린 안방 쪽문 앞에 와 섰다. 나는 봤다. 이불 위에 꼼짝 않고 누워 있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흔들며 울부짖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광경을. 잠이 확 달아나 버리자 심장에서 북 치는 소리가 주체할 수 없이 뛰어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사랑방에서 나왔다. 겁을 잔뜩 먹은 표정으로 내 옆에 서 있다.

'성룡이 아버지! 성룡이 아버지! 서-성복아! 갑촌 의원에 빨리 여-연락....'

새하얗게 질려 혼비백산한 어머니는 꼼짝 않은 아버지를 실성한 사람처럼 흔들며 부르짖었다.

'성룡이 아버지! 성룡이 아버지 왜 이러시는규? 일어나 봐요 좀 야-아?'

자지러지게 우는 성아도 무시한 체 어머니는 꼼짝하지 않는 아버지를 흔들며 울부짖었다. 할머니가 등에 성아를 포대기로 업는다. 큰언니가 갑촌 의원으로 전화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열어 놓은 전방 대들보 기둥의 왕문짝 앞에 도착한  흰 가운 차림의 의사 할아버지와 검은 의료가방 들고 같이 온  곰보 간호원 언니를 안방으로 모신다. 우는 성아를 업고 있는 할머니가 안방에서 나온다. 의사 할아버지는 이부자리 위에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앉는다. 윗목 한쪽으로 앉은 간호원 언니는 검은 의료 가죽 가방을 열어놓는다. 문 밖에서 성아가 그칠 줄 모르게 운다. 할머니는 샘터로 피한다. 목에 청진기 두른 의사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눈까풀을 오른손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치켜본다. 그런 다음 목에 건 청진기를 양쪽 귀에 꼽자 간호원이 아버지의 메리야스를 가슴팍 위로 조심스레 말아 올린다. 의사 할아버지가 청진기로  아버지의 가슴팍 여기저기 집어 본다. 한편 사징통 사람들은 저마다 가게문 열다 말고 전부 우리 전방으로 몰려와 침묵 속에 검진하는 광경을 지켜본다.

'죄송합니다. 아줌니.' 고개 숙인 의사할아버지가 속삭인다. 


나는 보았다. 울부짖는 어머니의 모습을.

나는 보았다. 등에 성아를 업은 할머니의 그 표정을.

나는 보았다. 큰언니도, 작은언니도 그리고 성주, 성아 우리 모두 엉엉 우는 광경을.

나는 보았다. 갑작스런 충격으로 인간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글쎄, 쓰러지셨을 때 바로 바늘로 손톱, 발톱, 귓불에 찔러봤어야 했다구유.'

'쓰러지시고 입에서 바로 거품 품었대유.'

시장통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수군거렸다. 아버지 계원이신 동네 유지분들이 와서는 지난 저녁 아버지 계원들 모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집이 천당이지, 어디 밖에 나가 천당을 찾어?'

문득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내 귓전에 울려왔다.

'아버지, 저는요 그냥 예배당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갔었던거애요.' 그날 이렇게 대답하지 못한 나는 쓰러지신 아버지에게 속삭인다.

'참말로, 이게 뭔 일이여?'

망연자실한 체 할머니는 공중에 대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칠 줄 모르게 울어대는 성아를 추켜 업고 샘터에서 똑같은 문장을 되풀이 읊어댄다.              

'어-엄마, 어-엄마-아앙!'

나는 호랑이처럼 무서웠던 아버지가 꼼짝도 않고 누워 있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며 어제저녁 식사 후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여느 날 저녁 때처럼 안방에서 당신의 여식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어머니에게 계원 모임에 갔다온다고 전방을 나섰다. 그리고 두 시간 후, 술 담배 하지 않는 아버지가 홍조 띤 얼굴로 전방에 들어서며 '성룡이 엄마, 약주 한 잔 했구먼.' 하고 아주 기분 좋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편 양쪽 가게문 닫고 있는 큰언니에게 '그래, 잘한다. 성복아' 하며 아버지는 곧장 샘터로 갔다. 큰언니가 일부 가게문을 닫았던 기억으로 보아 시각이 가게 폐점 시간으로 저녁 10시쯤이었을 것이다.  한 여름 7월이고 약주 드셨으니 열이 나게 덥고 땀이 흥건했으므로 아버지는 곧장 샤워하러 샘터로 갔다. 가득 받아 놓은 샘터 욕조 물에 띄어 놓은 주홍색 플라스틱 바가지 물로 휙휙 몸에 뿌리며 '어이구, 시원하다. 어이구 시원하다' 하며 아버지는 탄식까지 했다. 샤워 후, 아버지는 바로 안방으로 들어가셨고 어머니가 준비해 놓은 다음 날 아침 조치원장에서 구입해 올 물건들을 적은 메모지와 여비 든 전대와 함께 머리맡에 놓고 여느 날처럼 검은 자명종 벽시계 걸린 벽을 등지고 세워 놓은 금성 선풍기의 미풍으로 회전 버튼을 누르고 이부자리에 드셨다.




아버지 장례식 3일 내내 하늘과 땅 사이는 온통 시컴하고 장마비가 억수로 퍼부었다. 바깥채 초가지붕과 별채 양철지붕 처마 밑으로 퍼붓는 빗물은 나이가라 폭포 같았다.  낯선 사람들이 별채 안마당에 차일을 치고 몇 겹의 가마니를 깔고 그 위에 멍석을 깔아 놓았는데도 발을 내딛 일 때마다 빗물이 지근지근 스며 오르는 그 위로 조문객 상차림이 펼쳐 놓았다. 다습함은 바깥채 초가지붕 곰팡이 짚 냄새까지 풀풀 날렸으며 온 집안은 낯선 냄새로 가득했다. 한편 집안 어른들은 장맛비가 이렇게 계속 내리면 묘자리를 쓸어갈 거라며 한 걱정을 하는 동안 별채 건넌방에서는 집안 친척이라는 낯선 아낙네들이 빽곡히 모여 앉아 상복 바느질로 부산했다. 안채도 별채도 우리 집 어디든 모두 낯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어머니와 오빠는 뻣뻣하고 칙칙한 무거운 누런 삼베 상복을 착용했다. 큰언니와 작은언니는 생무명 저고리 치마에 산내끼 꼰 사이마다 종이인지 헝겊인지 나풀거리는 머리띠와 허리띠를 졸라 매고 흰 양말에 신은 짚신 광경은 다른 이상한 곳의 사람들 같았다.  별채 안방의 전통 창호지 바른 쌍문은 외벽을 향해 대청마루 양쪽으로 활짝 열어 놓았다. 대청마루에서 안뜰까지는 상주 자리로 조문객 받는 안마당에 넓고 두툼한 멍석으로 펼쳐놓았다. 어머니는 하염없이 울어 얼굴이 퉁퉁 부었고 목소리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허스키했다.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자꾸 내 눈을 비벼댔다. 나는 어머니 곁으로 다가가 어머니 팔뚝에 기대고 앉았다. 어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어머니 손결에 안심을 느낀 모양이다.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자 나는 안채 건넌방에 누워 있음을 알았다. 방문을 열고 나오자 온 집안은 괴이한 상복 차림의 사람들로 우와좌왕거렸다. 나는 생시인지 꿈인지 헷갈렸다. 처음으로 모두 닫힌 전방 문짝 양쪽에 '조의' 란 한자의 굵직한 검은 붓글씨의 흰 마름모꼴 종이가 붙어 있었다. 별채 텃밭에는 잘 자란 채소들 위에 돌덩이를 받쳐 걸쳐놓은 검은 가마솥에 시뻘건 국을 끓이고 있었다. 그렇게 가마솥 아궁이에 지펴 놓은 장작불은 삼일 내내 밤낮으로 지폈다. 텃밭 다른 한쪽에서는 둥근 넙적한 철판에 아낙네들이 지짐을 붙이고 있다. 또 다른 한 패는 별채 안마당 긴 상차림에 빼곡히 앉은 조문객 음식 조달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술기운의 조문객들은 아버지 사망이 믿기지가 않다며 막걸리 대접을 주거니 받거니 마시는 그들의 표정과 말투에는 허망함으로 가득 차 있다. 한편 임신한 어머니의 체형을 발견한 문상객들이 쉬쉬하며 말을 아꼈다. 이어 서울 숙부 내외분이 내려오셨다. 얼마 후 이산 저산으로 떠도는 막내 숙부도, 그리고 내게 오촌 아저씨, 육촌 아저씨, 고모, 당고모 뻘 된다는 친인척들이 수두룩하게 몰려왔다.


발인 날, 이른 아침 갠 하늘은 온통 잿빛 먹구름으로 덮였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장맛비는 아버지 장례식 삼일 내내 억수로 퍼부었다. 참으로 칙칙하고 음산한 날씨다. 별채 쌍대문 앞에는 섬찟한 색깔의 목각에 눈을 부릅뜬 괴이한 형상 그림의 상여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동네 사람들이 행상 주위로 몰려들었다. 아버지가 별채 안방에서 행여로 옮겨가는데 어머니가 기절하도록 절규하는 통곡이 어찌나 무섭던지 나는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싶을 지경이다.


상여 앞에 선 상여 대장의 손에 쥔 구릿빛 딸랑이 종을 흔들며 구술에 맞춰 곡을 읊으면 상여지기들이 받아 따라 라 합창을 한다. 무거운 상복에 짓눌려 더없이 초췌한 모습의 오빠가 아버지 영정 사진을 들고 고개 숙인 체 상여 대장 앞에 선다. 상여 대장이 뭐라고 큰소리로 외치자 어깨에 상여 줄을 맨 체 무릎 끓고 양쪽의 상여 행렬로 선 상여지기들이 받아 뭐라 합창하며 일어선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어-ㅇ허어야, 어-어허어야!'


귀를 틀어막고 싶도록 나는 온몸이 진절이 났다. 무거운 몸으로 탈진하다시피 통곡하는 어머니를 큰언니와 작은언니 부추김을 받으며 상여 뒤를 따라간다. 나는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볼 수 없고 귀가 먹어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다. 아홉 살 내게 아니, 어머니, 오빠,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광경이다. 시장통과 신작로를 벗어나 넉바위와 약수터를 지나 선산을 향하는 상여지기들의 구술적인 리듬과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장례식 후,

온 집안 구석구석 썰렁한 냉기가 슬렁이었다. 오빠는 무거운 심정으로 서울에 올라갔다. 할머니는 아버지 잃은 충격으로 혼이 반쯤 빠져나간 어머니의 모습을 애처로워하며 오늘내일하는 어머니의 출산이 여간 걱정이 아니시다. 나는 전방에서 호두알 만한 주판알 튕기는 아버지 모습이 자주 꿈에 아른거린다. '순딩아!' 하고 부르는 아버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잠을 깨곤 한다.       

'순딩아, 지청에 아버지 저녁상 갖다 놔야지.'

어른들은 늘 나만 부른다. 방 천장에서 방바닥까지 칙칙한 냄새로 가득 밴 누런 모슬린으로 커버해 놓은 건넌방에 아버지 지청을 모셨다. 사실 누런 모슬린의 칙칙한 냄새도 지청에 모신 아버지 영정 사진도 무섭고 싫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는다. 할머니가 아버지 밥사발, 객물 대접, 수저와 저분 그리고 마른 명태 준비해 놓은 쟁반을 들고 나는 지청상으로 간다. 영정사진의 아버지를 보지 않으려 쟁반에 고개를 떨군 체 밥사발과 객물 대접을 옮겨 놓는다. 밥사발 뚜껑을 열고 밥사발 중심에서 새 모임만큼 밥알을 수저로 세 번 객물 대접에 떠 놓고 그대로 수저는 담가 놓는다. 그런 다음 마른 명태에 저분을 올려놓는다. 끝으로, 나는 향그릇에서 짙은 솔잎색 향대 세 대을 꺼내 모아 성냥불에 댕긴 다음 놋 향로에 꽂아 놓을 때까지 사뭇 고개를 떨군 체 반절을 올리고 지청에서 나온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끝나갈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 달 하고 열흘째 되는 오전 9시경이다. 어머니는 축 처진 아랫배를 양손으로 안고 조심스런 걸음으로 사랑방 마루에 다가앉으며 말한다.

'엄니, 넉바위 산파 불러야 할 거 같유.'

할머니는 부엌에서 성급히 나와 어머니를 부추겨 사랑방에 눕힌다. 전화기 없는 넉바위 산파 집 향해 큰언니가 뜀박질해 갔다. 할머니는 가마솥에 물을 길어다 붓고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키가 훨칠한 50대 중년의 산파가 밤색 가죽 손가방을 들고 전방 문 턱에 들어선다. 잠시 거친 숨소리를 안정시키고는 사랑방으로 들어간다.

'아줌니, 소창 준비해 놓셨지유.'

'준비 다 해놨유.'

산파 지시 대로 고무다라에 따뜻한 물 받아 사랑방과 부엌을 부산하게 오가는 할머니는 예전과 다르게 다소 경직된 모습이다. 얼마간 힘들어 하는 어머니 신음소리가 나더니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보게, 성룡이 엄마, 아들일세.'

 '........'

'지금에 와서 아들이면 무슨 소용이유' 하는 눈물 고인 어머니의 눈이 말한다.

'그놈, 아주 잘 생겼네.'

당신의 일곱 아이 모두 받아 준 넉바위 산파가 기뻐할 만도 했다.

'아저씨가 이 고추를 봤으면 동네잔치 벌인다고 했을거구먼유.'

기진맥진해 누워 있는 어머니의 침울한 표정에 넉바위 산파는 어머니의 심정을 인식했는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는다. 어머니가 흐느낀다.

'성룡이 엄마, 자네 건강해야 함세. 뜻하지 않게 자네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부디 마음 단단히 머금세. 어린 자식들 위해서라도 말일세.'

넉바위 산파는 어머니의 건강을 진심으로 염려했다. 부엌과 사랑방을 수도 없이 들락거리며 어머니 보살피는 할머니는 이골이 나도록 미역국을 끓였을 것이다. 아들, 아들 노래를 불렀던 아버지, 그늠의 고추가 뭐 그리 대단하기에... 내리 딸 다섯을 낳은 어머니가 아들 출산했으니 아버지의 기쁨은 넉바위 산파 말대로 동네잔치를 벌이고 남을 경사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렇게도 원했던 아들도 자식도 장사도 돈도 그야말로 모든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처럼 기쁜 기색은 전혀 볼 수 없는 짝 잃은 새처럼 아버지 그리움에 빠져 있다.

'여이, 속 끓이지 말어.'

눈물 글썽이며 울먹이는 할머니가 말한다. 지아비 잃은 슬픈 딸에게 어떤 위안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할머니는 잘 알고 있다.

'성룡이 엄마, 마음 굳게 머금세. 어느 때보다 몸조리 잘해야 하네, 아무 때고 불편하면 연락하게나. 그럼, 난 올라감세.'

넉바위 산파는 착잡한 심정으로 사랑방에서 나온다.

위로는 타인의 표현에 불과할뿐 어머니의 슬픔은 기쁨처럼 쉽게 발산되지도 까발린다고 나눠 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할머니는 외로 꼰 새끼줄에 붉은 마른 고추와 숯으로 엮어 만든 금줄을 식료품 진열대와 건어물 진열대 사이로 난 통로 상단에 매달아 놓는다. 오래전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들을 낳으면 집안의 돌림자, 남녘 병자와 상관없이 '명룡'이라 지어 놓은 이름으로 아기를 부른다.  


출산 한 달이 되자 어머니는 안방으로 옮겨와 지낸다. 한 날 어머니는 후덥지근하고 깝깝하다며 방에서 나와 전방과 별채를 배회한다. 할머니는 어머니를 보고 깜짝 놀란 속상해한다. 아직 가시지 않은 퉁퉁 부은 얼굴은 흰떡가루처럼 푸석푸석했다.

'여이, 어서 방으로 들어가아. 참말로 속상하게 왜 이러니 그래?'

'어-엄니.'

어머니의 들릴까말까 기력 없는 목소리로 할머니를 부른다.

'왜 그려?"

'콩나물시루에 물 좀 줘야 하잖유?"

서 있는 것조차 벅찬 어머니는 상당히 나약해 있다.

'여이, 참말로 지금 니 몸이 어떤디 쓰잘데 없는 걱정이여. 내가 하잖여.'

갑자기 잃은 지아비와 출산으로 몹시 허약해진 어머니의 건강과 비통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슬픔과도 상관없이 아침이 오면 저녁이 왔다. 그렇다. 아버지 없는 추석 대목장도, 가을 농사도, 명절 차례도 지냈으며 동짓달 작은언니 생일날에도 팥죽도 쒀 먹었다. 

할머니는 방앗간에서 빻아온 쌀가루에 팥을 쪄 으깬 팥고물을 겹겹이 깔아 놓은 시루 단지를 큰 양은 솥단지 위에 얹혀 놓고 솥단지와 시루 단지 틈새에 쌀가루를 개어 빙둘어 흰 띠로 메꾼다.  장작불에 지펴 완성된 시루 팥떡 단지 그대로 장독대 위에 옮겨 놓는다. 그리고는 준비한 물 사발 대접과 촛불을 켜놓고 고사를 올린 후 어머니는 가게 구석진 모퉁이와 콩나물광, 부엌, 연탄광, 땔감광, 쌍대문, 안채, 별채 구석구석에 시루 팥떡을 갖다 놓는다.


겨울 방학이 돌아왔다.

나는 안방에서 어머니와 갓난아기 명룡이와 함께 자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원해서다. 어머니와 함께 자는 것도 또 나만 선택한다. 여느 때처럼 나는 투정 없이 모두 해낸다. 이 무렵 나는 단것이 몹시 당겼다.

겨울날 어느 아주 깊은 한밤중으로 식구 모두가 깊이 잠 든 시간으로 또렷하게 기억난다. 유독 그날 밤 따라 단 것이 너무 먹고 싶어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누운 체 내가 좋아하는 콘티넨탈 아이스 슈가빵이 하늘의 별처럼 아른거렸다. 그 빵을 먹어야 잠을 잘 것 같았다. 만약 나비가 '메옹' 하고 소리 내기라도 하면... 아-아니야, 쌀가게 안쪽 깊숙이 묶여 있어 문제없을 거야' 하고 단정한 나는 전방이 내다보이는 안방 유리 미닫이문으로 나갈 것인지 사랑방 마루와 마주하는 안방 쪽문으로 나갈 것인지 망설이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조심스레 아주 조심스레 이불속에서 나와 후자의 문을 택했다. 전방은 칠흑같이 컴컴했다. 맨발로 뒤꿈치를 들고 종류의 빵이 진열해 놓은 식료품 진열대로 아주 조심스레 접근해 갔다. 나는 어디쯤에 아이스 슈가 빵이 놓였고  어디쯤에 소라빵이 놓였는지 익히 알고 있다. 바삭거리는 빵비닐봉지를 소리나지 않게 숨을 죽일 뿐만 아니라  온 전신의 신경을 바싹 조이고 오른손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빵 봉지 모서리를 살벌하게 조심이 집어들어 행여 부스럭 소리가 날까 품에 안고 뜯었다. 아뿔싸! 빵이 진열대 밑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나는 기겁을 하고 진열대 밑으로 얼른 웅크리고 앉았다. 진열대 밑바닥은 암흑이었다. 손을 최대한 뻗어 더듬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앉을뱅이 걸음을 하고 새까만 진열대 밑바닥 안쪽으로 들어갔다. 거미줄에 왕거미가 있을지도 생쥐가... 으스함이 와락 몰려왔다. 하지만, 바닥에 떨어진 빵을 찾아야 했다. 두려움에도 손바닥으로 여기저기 더듬어댔다. 손바닥은 그물망처럼 소주 병뚜껑, 종이조각, 빈 봉지의 촉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쪽에는 차갑고 딱딱한 촉감으로 딱히 동전이란 생각이 불끗 들었다. 또 다른 쪽을 더듬자 끈적이는 빵이 손바닥에 늘어 붙었다. 움켜쥐고 기어 나와 한쪽 바닥에 놓았다.  나는 꼭 빵을 먹어야만 했으므로 또 하나 빵 봉지를 집어 들어 바로 웅크리고 앉아 빵 봉지를 품 안에 꽉 품고 뜯었다. 악어 입처럼 벌려 반 뚝딱 베어 먹었다. 입 속에서의 느낌은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소라 모양의 크림빵이었다. 목이 메이도록 꾸역꾸역 다 먹은 나는 아이스 슈가 빵 주워 뜯어진 빵 봉지에 소리나지 않게 대충 둘둘 말아 사랑방 마루 바닥 밑에 숨겨 놓았고 동전처럼 느껴지는 것은 사랑방 마루 두 번째 층계 모서리에 두었다. 마루 끝자락에 놓아둔 방 걸레통 걸레로 손을 닦고 안방 쪽문을 살그머니 열고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일어난 나는 바로 마룻바닥 밑에 숨긴 빵을 집어 샘터 구정물 통에 버린 다음 마루 두 번째 층계 모퉁이에 놓은 것을 확인했다. 벼이삭이 새겨진 실버 동전이었다. 나는 선뜻 보물 바닥을 발견한 기쁨에 날아갈 듯 신나는 걸 애써 감췄다. 언제 어떻게  진열대 밑바닥에 들어가 동전을 주울까 나는 생각하다 어머니가 조치원장에 가는 날로 마음먹었다.

마침내 어머니가 조치원 장 보러 가던 날 나는 식료품 진열대 바닥에 뭐가 떨어져 주우는냥 가장을 하고 쭈그리고 앉았다. 바닥에는 먼지 투성에 여기저기 거미줄이 쳐있으며 너저분한 종류의 종이 쪼가리와 비닐봉지, 나막신 한 짝, 소주병 마개와 함께 여러 동전이 여기저기 두껍게 쌓인 먼지 속에 숨어 있었다. 나는 마치 숨어있는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무안한 흥분에 어쩔 줄 몰라 성급하기까지 했다. 원피스에 달린 작은 봉창에 부지런히 동전을 주어 넣었다. 원피스 앞자락이 축 늘어져 더는 주워 넣을 수 없는 나는 태연하게 진열대 밑에서 슬그머니 나와 샘터 장독대와 담쟁이 사이로 난 시멘트 바닥 통로로 갔다. 동전 모두 바닥에 꺼내 놓고 어머니 약탕기 속에 숨겨 놓고 그 길로 나는 평소 신작로 문방구점 앞을 지나며 봐 두었던 노란 플라스틱 토끼 저금통을 구입했다. 탕기 속 모든 동전을 토끼 저금통에 넣고 안방 전축 스피커 상단 코너 옷 바구니 뒤에 숨겨 놓았다. 


나는 초등학생임에도 혼자 극장에 잘 간다. 신성일, 신영균, 박노식, 최무룡, 허장강, 윤정희, 남정님, 문희, 안인숙 등 배우들이 나오는 성인 영화와 홍콩의 사극 영화 관람을 한다. 뿐만아니라 해마다 겨울날에 찾아오는 서어커스단이 소전에 천막 높이 쳐 놓은 시설에 공중 줄타기와 마술쇼 그리고 난쟁이들의 공연, '홍도야 울지 마라' 연극과 삼류가수 공연이 펼치는 서어커스에도 혼자 구경 간다. 또한 나는 만화가게에도 자주 출입을 한다. 만화가게는 우리 집 바깥채 왼쪽으로 박목수 아주머니네 담쟁이, 오약국집 뒷담쟁이, 그리고 영순네 옷가게 집 담쟁이와 신작로를 향한 싱싱 자전거포 집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만화가게는 목재 굴조의 뿌연 유리문으로 드르르 문을 열며 나는 '할아버지, 새 만화책 왔어요?' 하고 흥분 된 마음으로 묻는다. 건장한 체구의 덥수룩한 흰머리와 턱수염에 검은 사각 뿔테 안경을 착용한 할아버지가 외닫이 창호지 문을 '퍽'소리 나게 열며 '오냐' 한다. 상다리 세 개 달린 둥근 양은 상 위에는 저번 날처럼 황금색 라면 냄비와 김치 대접만이 올려있다. 내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캔디 할아버지와 너무나 닮아서다. 할아버지에게는 나 보다 한 살 많은 외동딸이 있다. 이름은 이현주로 기억한다. 저학년 때 현주언니는 육상선수였다가 고학년 때는 갑촌초등학교가 자랑하는 농구반 대표선수를 했다. 방문과 가게 미닫이문을 제외한 사면의 만화가게 벽에는 만화책으로 빽곡히 도배를 하고 있다. 방문 오른쪽 진열장 두세 칸 줄에 빳빳하고 샌빙의 만화책들이 굵고 검은 고무줄에 당겨 꽂혀있다. 나는 어느 것부터 읽어야 할 지 흥분감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마음 같아선 새 만화책 모두 읽고 싶다. 그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가, 민애니, 신영섭 만화책으로 '어떤 것을 볼까요?' 하고 손가락이 신영섭 만화책에 멈춘다. 상권, 하권 모두 손에 쥔 나는 긴 나무의자 모퉁이에 내려놓는다. 나의 눈길이 만화가게 한쪽 모퉁이 널빤지 위 흰가루 번벅이 된 주사위 모양의 갱엿과 곱돌처럼 하얀 달고나가 들어있는 유리상자로 간다. 상자 옆 나란히 왔다 껌과 달짝지근한 건빵 봉지와 여러 마리 든 쥐포 봉지가 진열해 있다. 나는 갱엿 세 덩어리를 구입한다. 한 덩어리 입 안에 넣고 질겅질겅 턱운동하며 상권을 본다. 상권을 다 읽어갈 때쯤, 만화가게 문이 드르륵 하고 열린다. 얼마 전 다른 지역에서 이사 온 사내아이 형제가 들어온다. 나는 얼른 코를 삐틀어 잡는다. 연탄가스 배출기로 만든 양철 함석 원통이 문쪽으로 연결돼 있어 문을 열 때마다 연탄가스가 들어온다. 

두 사내아이는 만화책 진열대에 앞에 서서 이 만화책, 저 만화책을 빼내어 뒤척이며 짜증나게 고른다. 한 사내아이가 널빤지 쪽으로 간다. 유리상자 속에서 달고나 두 알을 꺼낸다. 연탄난로가에 다가가 앉자 또 한 사내아이가 연탄난로가로 다가앉는다. 낡아 희끗희끗한 국자에 달고나 두 알을 넣고 긴 나무젓가락 한 짝으로 달고나를 빙빙 돌려 녹인다. 나는 세 덩어리 갱엿을 다 먹고도 달고나 냄새가 나를 유혹한다. 남은 하권 다 읽은 후 사먹을 참이다.

'할아버지, 달고나 두 개 주세요.'

나는 손아귀에 달고나 두 덩어리를 쥐고 연탄 날로 앞에 앉아 옆 물통에 담아 놓은 낡은 국자 하나와 긴 나무젓가락 한쪽과 물기 털어 낸 국자에 흡사 허연 곱돌처럼 한 달고나 두 알을 넣고 센 불씨 오르는 연탄 화로에 올려놓는다. 허연 곱돌 같은 두 덩어리가 힘없이 녹아버린다. 난로 옆 소다 깡통에서 코딱지만큼 젖가락에 찍어 액체 달고나에 섞어 휘휘 젓는다. 움푹 파인 국자 위로 솜사탕처럼 부풀어 올랐다. 국자에 시선을 둔 체 의자에 정착해 앉은 나는 세상에서 최고의 맛인 양 나무젓가락으로 야금야금 아껴 먹는다. 그렇게 아껴 먹어도 달고나는 금세 바닥이 났다. 빈 국자에도 미련 남은 나는 국자 밑마닥에 늘어 붙은 달고나를 울켜 마실 생각이다. 무거운 물주전자 주둥이에 빈 국자를 드리대고 적당한 양의 물을 부어 연탄 난로에 올려놓는다. 나무젓가락으로 국자 바닥을 벅벅 긁는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국물을 호호 불어 후루룩 식혀 마실쯤 한 사내아이가 티스푼 양의 갈색 설탕 담은 국자를 연탄난로에 올려놓는다. 잠시 갈색 설탕이 시럽으로 녹아버리자 나무젓가락에 깨알만큼 소다를 찍어 시럽에 넣고 휘젓는다. 노르스름한 크림의 형체가 서서히 부하게 오르자 사내아이는 할아버지가 준비해 놓은 철판 위에 쏟는다. 할아버지는 즉시 함석 누름판을 지그시 누르는 동안 사내아이는 모양 새김판에서 별 모양을 선택해 할아버지에게 준다. 꾹 눌러 굳은 별 모양 형체를 흠없이 띠므로 덤으로 제공하는 공짜 띠기 위해 사내아이 손은 여간 신중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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