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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예리 Jan 11. 2024

마음에 하늘나라가

6. 설날


설날 앞둔 오일장은 대목장으로 펼친다.

대목장은 보통 오일장과 달리 시장통 가게들마다 종류의 상품으로 풍성하게 진열한다. 우리 가게 전방은 대들보 기둥을 중심으로 오른편 식료품왼편 건어물 평면진열대로 분리된 통로와 전방 문지방에서 생선대에 이르기까지 통합해 진열한다. 아버지는 왼편 식료품코너에 어머니는 오른편 건어물코너에 앉는다. 전방 양쪽 모퉁이에는 소쿠리가 수북이 쌓여있다. 


이른 아침부터 전방은 십 리를 걸어온 장꾼들로 북적인다. 소쿠리에 종류의 설 지상정을 담아 양쪽으로 앉아 호두알 만한 주판알을 정신없이 튕기는 부모님을 기다리는 장꾼들 털신과 구두에는 가닥의 짚푸라기로 칭칭 감겨있다. 큰언니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앉아 계산된 물건을 장꾼들이 가져온 보자기에 담아주는 시중을 들고 있다. 할머니는 부엌에서 명절 음식 준비에 바빠있다. 우리에게도 일상 규칙에 변화가 있다. 째, 부모님과의 상차림을 따로 한다. 둘째, 큰언니  조무래기 우리는 전방 접근 금지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시장통 또래 아이들과 골목길과 성당 앞뜰,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옮겨다니며  사방놀이와 오재미 던지기, 핀따먹기와 줄넘기 놀이에 흠뻑 빠져있다.


'산골짜기 다람쥐, 아기 다람쥐,

도토리 점심 가지고 소풍을 간다.

다람쥐야, 다람쥐야, 재주나 한 번 넘으렴,

퍼-얼 떡, 퍼-얼 떡, 펄떡 재주도 잘도 넘는다.'


손님이 들어

마주 보고 인사하고

가위, 바위, 보!

진 사람 나간신다.

손님이 들어다.

.....'


종명이네 집 골목길 모퉁이에서 사내아이들이 웅크리고 앉아 만화 딱지놀이를 한다. 작은언니는 핀따먹기 놀이를 좋아한다. 나는 오재미 놀이를 좋아하고 오재미주머니 만들기는 더 좋아한다. 할머니가 오래된 호청감을 가위로 조각내 바늘에 명주실을 꿰어주면 나는 열심히 오재미 주머니을 만들어 검정콩 넣어 시침으로 완성한다. 그다지 잘 만들지는 못하지만 나름 손주먹에 딱 잡힌 오재미 촉감 처음 만든 작품으로는 제법이었다.

어느 날 나는 옷장에서 안 입는 옷으로 듬성듬성 가위질로 조각낸  꿰맨 주머니에 종류의 콩을 넣어 만들었다. 차로  촉감, 소리, 그리고 상대방 향해 던져 맞 강도 또한 다르다는 것을 나는 알아냈다. 옥양목과 나일론 옷감에 검정콩, 메주콩 또는 마른 옥수수알 넣은 오재미는 상대편 향해 세게 던져 아웃시키는 점인 동시 받은 상대편의 손바닥 강도는 따끔하게 아프다는 것도 알아냈다. 반면 니트와 저지 옷감에 팥, 녹두콩 넣은 오재미 감촉은 대신 상대편이 잘 받아 아웃시키지 못하는 단점 알아냈다.

사씨아저씨 대장간 골목길에서는 사내아이들이 자치기와 딱지치기 놀이를 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벌겋게 달아오른 양볼과 트인 손으로 양쪽 바지 봉창에 뽈록 튀어나온 다마 무게로 내려온 바지 골타리을 추켜 올리며 흘러내리는 누런 콧물 훌쩍 드리마시랴 놀이에 흠뻑 빠져있다.


하늘이 뿌옇다. 곧 눈이 내릴 것 같다.

당에 어서자 밤송이 만한 눈이 눈까풀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나는 간지러워 어깨를 쫑긋 추켜올린다.

'눈 온다. 와-와!' 환성을 외치 작은언니 금새 달려온다.내리는 눈을 다 받아 먹으려는듯 우리는 하늘 향해 입을 벌리고 양손을 쭉 펼쳐 빙빙 돌아본다.  하얀 눈 우리를  덮어가는 모습을 보며 서로  신나 어쩔 줄 몰라한다.

'순딩아!' 할머니가 부엌에서 부른다.

'녜에 할머니.'

'엄씨네 닭집에 갔다 오렴. 가서 할머니가 명절에 쓸 닭이라고 하면 엄씨가 알아서 해주니 그 들고 와.'

'네에 할머니.'

북새통이던 시장통은 한산다. 엄씨네 닭집은 우리 가게 왼쪽으로 세 번째 집에 자리하고 있다. 송이 같은 눈이 소복히 내린다. 나는 온 신경을 발바닥에 집중해 걷는다. 살금 살금 걸어가다 쭈르륵 미끄럼 타는 흉내도 내본다. 나는 평일에도 닭집을 지날 때면 코을 꽉 비틀어 잡고 지나간다. 굳이 닭집이라고 글씨 간판 표시하지 않아도 냄새로 금세 알 수 있다. 도로래 유리문에 빨간 페이트로 '닭집'이라 쓰인 글자에 이물질로 덕갱이가 져있다. 엄두가 나다. 나는 문 밖에서 서성인다.

털보 엄아저씨가 보이지 않는다. 한 날 나는  큰언니와 작은언니 따라 신작로 현숙미장원에 었다. 마침 파마하는 동네 아주머니가 있어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이런저런 수다 떠는 그들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작고 찢어진 뱁새눈에 귀 밑에서 코, 턱까지 얼굴반이 검은 구렌다로 덮였고 등치까지 우람해 딱히 소도둑놈처럼 생긴 닭장사와 결혼한 새댁을 측은해 했다.


가게 안쪽으로 들어앉은 방에서 쭈빗거리는 나를 보았는지 한복 차림에 앞치마 두른 새댁이 닭집 유리문을 드르륵 열었다. 열린 공간으로 역겨운 냄새가 내게로 확 쏟아져 나와 하마터면 쓰러질뻔했다.

'왜-에?' 미소 띤 새댁이 내게 물었다.

'저기, 가게 집에 사는 순딩인데요. 우리 할머니가요 명절에 쓸 닭이라고 하면 엄씨아저씨가 알아서 해주는 늠 가져오라고 했어요.'

'어-어. 근데 지금 아저씨가 안계시는데 어쩌나? 으-음, 명절에 쓸 닭 나도 잘 잡거든. 내가 잡아줄께.'

딱지 향이 그윽한 새댁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그녀의 말에  멈짓하는 내게 그녀가 확인해 물어왔다.

'할머니께서 명절에 쓸 닭이라고 했지?'

'녜에.'

'내가 잡아줄께. 밖에 추 들어와서 기다리렴.'

'추워 온몸이 움추려들어도 나는 좌우로 고개를 젓는다. 코를 집게로 집듯 양손 집게손가락으로 코를 꽉 조이고 닭집 유리문 앞에 서 있을 참이다. 새댁이 이따끔씩 덕갱이 진 닭집 유리문으로 흘끗 나를 쳐다보며 미소를 준다. 새댁은 닭장 모서리에 걸어놓은 긴 갈고리 쇠장대를 들고 삼단 닭장 앞에서 삽시간 위아래로 훌터내린다. 두 번째 닭장 문을 열어 갈고리를 안으로 드리자 서로 잡히지 않으려 닭들이 아우성이다. 한 마리의 닭다리를 잽싸게 갈고리에 걸어 새댁이 닭장에서 끌어낸다.   

갈고리에 걸린 닭은 안 나간다며 털을 풀풀 날리며 '꼬꼬댁-엑! 꼬꼬' 자지러지는 소리와 날깨를 푸덕이는 저항에도 불구하고 질질 끌려 나온 닭은 어리둥절한 눈동자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초조해 어쩔줄 모르는 표정이다. 새댁이 닭 날개쭉지 잡아들었다. 닭은 저항하며 길을 쓴다. 하필 왜? '나' 이냐며 꼼짝 할 수 없는 큰 위험에 처한 놀란 닭의 두 눈동자는 연실 두리번거린다. 그헣게 몸부림치며 발광을 쳐도  잡혀버리는 보잘것 없는 생명체. 새댁은 닭 날개쭉지 잡아 들고 위아래로 들었다 놓았다 서너 번 저울질을 한다. 이 정도 무게면 괜찮겠다는 표정이다. 새댁이 시멘트 개수대로 가더니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 닭의 목을 비트는 것이다. 새댁의 행위에 놀란 나는 입을 벌린 체 얼어붙었다.


닭의 눈은 거의 실눈이고 두 다리는 아직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이는데 '푹' 소리가 유리문 틈새로 흘러나왔다. 새댁 손에 쥔 작고 뾰촉한 칼이 닭의 어느 부위에서 빼내자 닭벼슬이 새댁 왼손등에 축 늘어져 댕글거린다. 새댁은 펄펄 끓는 물통으로 간다. 뚜껑을 열자 뿌옇게 오르는 김이 새댁 시야를 가리는지 잠시 멈춰 김이 사라지자 축 처진 닭을 물통에 넣고 엎치락뒤치락 샤워를 시켜 꺼낸 닭의 모습은 형편없는 자세다. 그것도 모잘라 닭털 뽑기 바쁜 새댁의 손에 순식간 나체가 버린 닭을 찬물에 헹군다. 그리고는 펜으로 종이에 금 긋 듯 배를 가른다. 내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랐다. 새댁이 내장 정리 중 간과 황색 알과 똥집을 가려낸다. 똥집 갈라 누런 모이를 꺼내 물로 씻어내 누런 껍질을 벗긴다. 그런 다음 정리한 내장 모두 가른 닭 뱃속에 넣어 비닐봉지에 담아 내 손에 들려준다. 나는 비닐봉다리에 시선을 둔 체 새댁 얼굴을 피한다. 땅바닥에 고개 떨군 체 집을 향해 어기적 어기적 걸으며 벌레 보고도 놀랄 거라 생각했던 새댁이 다시 보였다. 닭장에서 쇠갈고리로 잡아 끌어내는 동안 하염없이 푸드덕 몸부림치며 저항을 해도 희망이라곤 아닌 당신 손에 죽는구나 공포에 사로잡힌 닭의 눈을 보고도  닭날개를 꽉 잡아 비틀어 푹 소리 나게 하고는 순식간에 벌거-어.. 으으.. 새댁이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여기요.'

나는 부뚜막에 내려놓았다.

'얼굴이 워째 그려? 닭집에서 뭔 일 있던겨?'

'엄씨아저씨가 외출 중이어서 새댁이 잡아줬어요.'

'그렸어. 생긴 모양과는 다르게 신랑만큼 닭 잘 다룬다고 하더니 평생 같이 살려면, 뭐 신랑 하는 대로 따라 해야지. 어떻하누?'

'할머니. 새댁, 새댁이 꼬-꼬  꼬끼오!' 외치며 두려워 닭장 코너로 몰린 닭들을 갈고리로 한 마리를 잡아서는...' 나는 일그러진 얼굴로 몸을 지릿하며 목격한 광경을 설명한다.

'이렇게 해놓은 새댁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요.'

'원, 아이두..'

그날 저녁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엎치락뒤치락 이쪽저쪽 누워도 낮에 본 닭의 실눈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만 좀 들썩거려!'

에서 자는 작은언니가 짜증을 낸다.

'왜 사랑방에서 큰언니랑 안 자는거야?'

'아, 몰라! 큰언니는 또 뭐가 뒤틀렸는지 부리부리한 황소 눈에 입이 댓발 나와 있어.'


설날 아침.

여느 날 아침처럼 할머니는 일찍 기상하신다. 윗목에 앉아 상,하  뻘건 내복 차림으로 긴머리 양쪽 갈래을 하고 참빗으로 지런히 빗어 내린 다음 똬리 틀어 은비녀로 고정한다. 은 가디건 상의에 편물점에서 짠 고동색 스웨터에 옅은 회색 무늬의 누비 조끼와 누비바지에 짙은 회색 무늬의 누비 월남치마를 입는다. 두툼한 양말에 누비버선을 착용한 할머니는 건너방 문 앞 디딤돌에 가지런히 놓인 검정 털신을 신고 부엌 바닥을 내딘다. 간밤에 물 길어다 놓은 가마솥 뚜껑 손잡이 옆으로 꼭 짜 놓은 행주가 꽁꽁 얼어붙었다. 선뜻 펌프대 생각이 난 할머니는 부엌과 샘터로 연결된 외문을 열고 샘터 양철지붕 천장에 매달린 검은 소켓에 혹처럼 달린 스위치를 엄지, 집게손가락으로 비튼다. 누런 빛의 번개표 알전구는 샘 바닥에 깔아 놓은 가마니 카페트를 빛낸다.


연일 강추위로 샘바닥이 얼어붙을까 할머니가 깔아 놓은 것이다. 불어 펌푸대가 얼어 터질까 산냇기로 둘둘 감아 두툼한 헌 옷가지로 묶어 무장해 놓다. 꽁꽁 얼어붙었다.  할머니는 부뚜막 연탄 고래 양은솥에서 김이 오르는 뜨거운 물 한 종그래기 담아온다. 무장해 놓은 가지를 벗기고 그 표면에 조금씩 부어 녹인다.  한 종그래기의 뜨거운 물로 펌프 주둥이에 조금씩 부어 펌프질 하려  펌프대 손잡이를 잡 슈퍼 접착제 발라 놓은냥 손이  철썩 늘어붙는다. 펌프 주둥이에 미지근한 마중물을 연속 부으며 펌프질을 한다. 울컹벌컹 요동치더니 물이 뿜어 올랐다. 할머니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고무 대야에 한 가득 펌프질 해놓고 부엌으로 간다. 먼저 물 가마솥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펴놓는다. 그런 다음 쌀을 씻어 얹어 놓고 양은 밥솥 아궁이에도 불을 지피고는 하나씩 설 음식 장만을 한다.


물 가마솥 아궁이에 집 핀 장작 불덩이 일부를 연탄 찌개로 아궁이 어귀로 긁어낸다. 그 위에 양념  놓은 산적을 적쇠에 받쳐 올려놓는 동안 할머니는  부뚜막 끝자락에서 두 톳의 김을 양은 오봉 위에서  한 장, 한 장 들기름 종지의 솔로 마사지를 하고 소금으로 솔솔 려 놓는다.

큰언니가 사랑방에서 나온다. 가마솥에서 따뜻한 물 한 종그래기 담아 샘터로 간다.

'여이, 김 발라 놓았으니세수하고 석쇠에 구워봐.'

'야아, 알았슈.'

한 장씩  석쇠에 끼워 '치-이익!' 지글거리며 오그라질 때 석쇠를 뒤집어 다시 '치-이익!' 지글거리며 오그라 김에서 마른 낙엽 으서지는 소리가 난다.


대학 입학을 앞둔 오빠는 서울에서 하숙 생활을 이어갈 참이다.  부모님은 장사하는 환경에서 오빠를  멀리했다. 나는 오빠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특별한 날에만 겨우 만난 오빠가 서먹서먹하다 못해 어렵고 또 어려워 말 한마디도 할 수가 없다.오빠가 마냥 낯설기만 하다.

오빠는 사랑방 이층 다락방에서 제삿상과 목기 상자를 차례로 사랑방 마루에 내려놓는다. 할머니가 명절용으로 준비해 놓은 하얀 소창 행주를 가져온다. 오빠는 마루에서 제삿상과 목기 한개 한개  빛나게  닦아 광주리에 담는다. 건너방에서는 작은언니가 밤껍질 벗겨 물에 불려놓은 속껍질을 과도로 벗긴다. 오빠는 아버지와 함께 제삿상을 안방 아랫목 유리 미닫이문 향해 신중하게 펼쳐놓는다. 따라서 광주리에서 빛나는 목기 하나하나에 준비한 설 음식 담아 제사상에 배열해 놓는다.


아버지는 오빠가 사랑방 앉을뱅이 책상에 앉아 벼루에 먹으로 갈아놓은  먹물에 붓을 적셔  한지에 두 줄의 수직으로 내가 읽을 수 없는 한문으로 쓴 지방을 밥풀로 제사상 중심의 문틀에 붙여 놓는다. 그런 다음 제사상 중심 방바닥에 놓인 놋향로에 가느다란 소나무색 향 세 개에 성냥불로 피꽂아 놓는다.

제삿상에 사과, 배, 홍시감, 밤, 마른대추, 곶감 등 제사용 과일과 산자, 약과, 진분홍 알사탕, 무지개색 마시멜로우 종류의  화려한 색깔의 과자류에 이어 고사리. 도라지나물, 쑥주 나물, 무채 볶음 나물 종류와 조기 자반, 산적, 삶은 닭, 김, 마른 명태포 생선과에 이어 허연 전(부침) 중에 대파, 왕멸치, 쇠고기로 장식된 종류의 전과 두부 부침려있다.

아버지오빠는 사랑방에서 한복 바지저고리로 갈아입는다. 우리 건넌방에서 부모님이 해마다 설빔으로 구입한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아버지와 오빠가 안방 제사상 앞을 향해 양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선 뒤로  리도 나란히 있는다.

      

제사상에 차려진 밥그릇, 국대접, 숟가락, 젓가락, 술잔, 잔 받이 용기가 모두 놋그릇이다. 문득 며칠 전 광에서 전부 놋그릇을 꺼내 별채 앞뜰에서 가마니 깔고 녹색가루 묻은 짚푸라기로 닦는 할머니 모습을 보았다. 설날 우리는 밥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아버지가 제사상 앞으로 다가간다.  차례 음식 아버지의 지시아래 안방과 부엌을 연결한 쪽문에 서 있는 큰언니에게 전달한다. 큰언니는 부엌에서 대기하는 할머니에게 전달한다. 할머니가 제삿밥과 쇠고기 무 탕국 대접을 오봉에 받쳐 큰언니에게 전달한다. 아버지는 제사상에 올린 흰쌀 밥주발 중앙에 놋수저를 깊숙이 꽂고 산적에 저분을 올려놓는다. 아버지가 두 손으로 종지를 받쳐든디. 오빠가 향로 옆에 준비된 정종술 주전자를 조심스레 들어 따른다. 아버지는 술잔 종지를 향불 위로 시계방향으로 세 번 돌려서는 제사상에 올린다. 경건한 모습의 아버지 따라 우리 모두 경건한 자세로 세 번의 절을 올린다. 다시  술잔 종지를 비우고 오빠가 다시 채워 놓은 술잔 종지를 제사상에 올린 다음  아버지는 산적 위 저분을 조기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다시 세 번의 절을 올린다.


'갱물 대접 준비하거라!'아버지가 지시한다.

큰언니 갱물 대접 담은 양은 오봉을 할머니로부터 전달받는다. 아버지는 제사상에서 탕국 대접을 거둔다. 동시에 오빠는 들고 는 갱물 대접 오봉에 탕국 대접을 받아 큰언니에게 전달한다.

아버지는 밥공기 중앙에 꽂힌 숟가락을 빼서는 새 모이만큼 세 번을 떠 갱물 대접에 말아 수저 채 잠겨놓는다.  아버지 따라 우리는 다시 절을 한다. 아마도 세 번의 절을 한 것 같다. 이쯤에는 기억이 희미하다.

아버지는 쇠고기 산적에서 조기 자반으로 그리고 마른 명태인지 흰 전으로 저분을 옮겨 놓는다. 그리고는 다시 세 번의 절을 올리고는 우리 모두 안방에서 나온다. 아버지는 안방 천장 중심에 일자형 번개표 형광등 갓 가장자리  늘어진 흰 전깃줄에 달린  대추알 만한 스위치 속에 구기자 검은 단추를 한쪽으로 밀어 불을 끈다.  향로에서  경건히 피어  오르는 연기는 에스자를 그리며  어둑한 안방 대기로 올랐다. 우리는 아버지가 부를 때까지 잠시 건넌방에 가 있는다.


잠시 후, 안방 형광등 스위치를 켠다. 버지기 지방을 떼어 향불에 붙여 향로 속에 태운다.

'순딩아!' 냉기 어린 아버지 목소리와는 달리 온화한 목소리다. 순간 나는 울컥하는 것이 아버지가 상구 이런 목소리로 날 불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순딩아, 대소서방 할아버지 모셔 오너라!'

'녜-에.' 나는 최상의 기분으로 대답한다.

 무렵 갑촌리에는 면사무소와 공장, 지서, 영단 방앗간, 목재소, 옛 기와집, 초, 중학교, 세 개의 의원과 약국, 그리고 중대장 집과 아버지와 계원이신 동네 유지분들 집을 제전화 없는 대소서 할아버지 모셔 오는 심부름도 내 차례다.  


우리 집 가게는 365일 열어놓는다. 나는 소전 앞 몇 가구들이 모여 사는 대소서방 할아버지 집을 향해 걷는다. 함석집을 지나 양은그릇 집, 엄씨네 닭집, 박씨네 담배가게, 정육점 모두 굳게 닫혀 있다. 어제 북새통이던 시장통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대소서방 할아버지는 대소서을  운영하며 큰언니와 동갑내기 외동딸과 단 둘이 살고 있다. 할아버지네 대소서방 미닫이 유리문허연 살얼음으로 덮 안을 볼 수 없다. 나는  미닫이문을 열며 대소서방 안쪽으로 들어앉은 단칸방과 부엌을 향해 '할아버지!' 하고 부른다.

방문 디딤돌에는 할아버지의 검은색 털신과 흰끈으로 맨 감색 학생운동화가 가지런히 놓였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조반 드시러 오시래요.'

할아버지 방문 고리 잡은 체 열고는 콧등에 걸친 안경 너머로 나를 확인한다.

'순딩이냐?'

'네. 할아버지.'

'추운디 왔어! 들어오려무나.'

'괜찮아요. 할아버지. 그냥 여기 있을래요.'

'그럼, 내 부지런히 하고 나가마-아.'

'네에. 할아버지.'

유리미닫이 문틀 향해 할아버지의 낡은 책상 머리맡에는 우리집 안방 천장에 달린 일자형 형광등 갓 씌은 번개표 형광등이 매달려 있다. 책상 위에는 잉크병과 나란히 꽂힌 펜대 옆으로 알 수 없는 한문 책자들과 두툼하게 쌓인 원고지 다발과 벼루, 먹 그리고 종류의 붓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팍!'

창호지 바른 문짝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반사적으로 방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할아버지멋진 중절 썼다. 털신을 신고 디딤돌 옆에 세워 놓은 지팡이를 손에 쥔다.  할아버지는 지저고리 차림새 솔방울 한 단추로 여민 스웨터 차림새이다. 앞자락 양쪽에는 손 푹 집어넣을 깊이의 호주머니 달린 엉덩이 길이의 옅은 밤색 스웨터이다. 문득 앞집 편물점에서 맞춘 스웨터란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목둘레에는 고동색 울 목도리로 엮어 맸다.

'가자꾸나, 순동아.'

'녜에.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대소서방 문을 드르륵 열고 나와 내가 드르륵 문을 닫는다. 나는 지팡이를 잡고 조심스레 걷는 할아버지 따라 살금살금 걷는다.

'할아버지, 제 손 꼭 잡으세요. 시장바닥 얼어붙어 엄청 미끄러워요.'

뼈와 가죽만 남은 할아버지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띤다.

'그놈.'

'할아버지, 할아버지 손이요.'

'어이구, 그럼 어디 순딩이 손 잡아볼까나?'

나는 할아버지의 거북이 발걸음에 맞춰 걷는다.

'할아버지 오셨어요.'

'어서 오셔요, 어르신.'

'생각보다 꽤 빙판일세. 순딩이 아니였으면 못 올 뻔했네 그려.'

우리 가게에서 할아버지네 집까지 5분 거리를 15분이나 걸렸다.

'할머니, 아- 내 발가락 아오, 아오!'

'얼렁, 이쪽 곳고랑에 와 대고 쬐어.'

'할아버지 안녕하셨어요.'

'성룡이 왔구나. 그래 입시는 잘 보았느냐?'

'예에.'머리 긁적이며 오빠가 대답한다.

'성복아, 어서 나와 안방에 탕국 드려가야지.'

'나가유. 야, 넌 왜 그렇게 오래 걸렸냐?' 큰언니는 황소 눈알을 하고 내게  뻔대 없이 말한다.  

'할아버지 발걸음 맞춰 걸어야해서.' 시쿵둥한 표정으로 나는 대답한다.

할아버지는 걸어오는 동안 기력이 다 떨어지셨는데 가파른 숨을 내쉬며 띠엄띠엄 말을 잇는다. 움푹 패인 할아버지 눈두덩이에 걸친 자두알 만한 안경알 주름이 빙빙 돌았다. 우리는 제사상 앞으로 빙둘어 앉았다. 그러고 보니 문득 외할머니와는 모든 명절제삿날이나 평일에도 안방에서 함께 상차림 한 적이 없다. 외할머니는 아버지와 어떤 거리감 같은 걸 느꼈지만 어머니와도 말수가 없는 편이다.


'어르신, 여기.'

아버지는 준비해 놓은 정종술 주전자를 들자 할아버지는 상 위에 준비된 곱보을 든다. 아버지가 두 손으로 조심스레 따른다. 할아버지는 입에 한 모금 적시고는 상 위에 내려놓는다.

'.....'

떨림 섞인 가냘픈 할아버지 목소리와 아버지와의 대화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한참 오간다. 그러더니  성룡이 이름을 집안의 돌림자로 개명을 해야 한다느니 또 큰언니와 작은언니 이름도 돌림자로 해야 하는 말이 내 귀에 들려왔다.

'이보게, 갑수. 남녘 병자로 써야 함세. 그리고 자네 여식들 이름도 말일세. 정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 여식들 중간 이름은 '룰 성'자 그대로 사용하되 이름 끝자만는 개명토록 함세.'

우리 사촌들과 육촌들 남녀 모두 중간 이름이 남녘병 돌림자이다.  그런데 집안의 장손인 당신 자식들 중간 이름을 이룰 성 자로 지은 것이다. 아버지에게 분명 알 수 없는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두 어른은 내가 이해 못하는 어려운 말을 계속 이어갔다.


오빠 대학 등록할 때는 '성룡'을 남녘 병자와 빛날휘로 개명해 입학했다. 큰언니와 작은언니의 중간 이름, 이룰 성자 그대로 사용하되 끝 자는 개명했으나 가족들과 친척들 그리고 갑촌 사람들은 언제나처럼 우리의 개명 전 이름으로 부른다.

'어르신. 저쪽 학교(서울의 K대학, Y대학)와 상의할 겸 서울에 올라가 보려합니다.'

'이보게, 갑수. 무리하지 말게. 자네 아들 하나라고 귀하게 키우지만 그것이,,,'

할아버지는 자리에 있는 오빠를 의식해 말을 멈춘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어르신.'

오빠가 합격한 H대 법정대에서 저쪽이라는 대학에 등록할 수만 있다면 기부금 내서라도 입학시킬 아버지 생각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여린 오빠 성향에 대한 할아버지 조언임을 인식한 듯 더 이상 오빠 대학에 대한 화제는 언급하지 않는다.

'어르신, 여기 잔 받으세요.'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정종 술 따라 드리며 선산 산지기 허 씨 관해 오갔다.


정월 달, 어느 이른 아침.

'지아버지, 성룡이와는 어디서 만나기로 한규?"

어머니는 걱정 어린 어투로 묻는다.

'망우리 오촌집으로 오라했구먼.'

'망우리는 성룡이 학교와 하숙집 동네와 가까운가요.'

'가깝다는구먼.'

'그거 잘 챙기신규?'

어머니가 언급한 '그거' 은 오빠 등록금과 하숙비와 책값 그리고 일 년에 두 번 내려오는 오빠의 용돈까지 들어있는 돈뭉치다. 아버지 윗 배에 단단히 맨 전대 위에 컬러 달린 밤색 스웨 타을 입고 잿빛 울 목도리로 엑스자로 목에 걸친 그 위에 밤색 가죽잠바 입은  또 다른 무릎 기장의 검은색 울코트로 무장하고 아버지는 역전으로 향한다.


어머니는 전방 중심 대들보 기둥을 기준으로 닫힌 문짝 순서대로 떼어 안채 건물 양쪽의 외벽에 세워 놓는다. 이어 가게 안 통로에 갖다 놓은 생선궤짝들을 생선대로 옮기며 뭔가 생각난 듯 부엌에서 조반 준비하는 할머니에게 외친다.

'엄니! 아침 일찍 방앗간 갔다 오시는 것이 좋지 안 것슈?'

'그러잖아도 방앗간 문 열면 얼른 갔다 오려는 참이여.'

'그렇게 하셔요. 엄니.'

할머니는 양은 다라에 담가 놓은 찹쌀을 대나무 조리개로 원을 그리며  대나무 광주리에 받쳐놓는다.

정월대보름 앞둔 전방 채소전에는 데쳐놓은 고사리나물, 숙주 나물, 우엉 줄기, 도라지나물, 호박고재기, 쓰기나물이 똬리 모양새로 만들어 양은 다라에 담아 있다.

초저녁 동네 사내아이들은 살을 에리는 매서운 찬바람에도 넝마 주기 차림에 거지 행세로 너저분한 벙거지 뒤집어쓴 손에 깡통 하나씩 들고 각설이 타령을 부르며 시장통 이 가게, 저 가게에서 오곡밥과 나물을 얻어 다닌다. 해질 무렵이 되자 사내아이들은 시장통 골목길에서 쥐불놀이 한다고 빈 깡통에 대못을 대고 돌멩이로 두둘겨 구멍 뚫은 소리 함석집을 버금갔다.

구멍 낸 깡통 속에 나무 조각, 지푸라기, 골연박스을 찢고 조각내 채워 넣 사씨아저씨네 대장간을 지나 샛길 양쪽으로 펼친 겨울 논두렁으로 몰려간다. 겨울 얼어붙은 논두렁에  벼이삭 벤 뿌리가 썩어  곰팡이 냄새나는 깊숙이에 우렁이가 많이 숨어 있다는 사내아이들 말에 나는 열심히 손가락과 나무 막대기로 후벼 파 우렁 찾는 신비감에 몰입해 있다. 얼마나 쭈그리고 앉아 우엉을 찾았는지 다리가 얼얼하니 저려왔다. 고작 우엉 네 개 찾는라 털신은 진흙으로 더덕더덕 달라붙어 거인 신발처럼 되버렸다.

논둑으로 나와 벗어 털다가 미쳐 떨어지지 않는 흙을 막내기로 긁어낸다. 논두렁 앞 시냇가로 내려가 시냇물로 노란 고무 털신 가장자리를 깨끗이 닦는다. 우렁 네 알도 깨끗이 씻어 집에서 키울 참이다. 논두렁 둑 한쪽에서 작은언니 또래 홍식 오빠와 친구들이 모여 나무조각과  짚푸라기로 앉아 불을 지펴서는 우렁을 바베큐해 먹는다. 다른 한쪽에서는 동네 아이들 손에 들린 깡통에 불을 지핀다. 깡통 구멍 틈새로 흘러나오는 그을림 연기에 눈을 비비며 양쪽 깡통에 구멍 내 손잡이로 긴 철사줄로 매달아 들고 서서히 원을 그리듯  아이들 몸도 따라 빙빙 돌아댄다. 깡통의 불빛은 반딧불처럼 보인다.

'와-아!'왁작지껄 신이 난 아이들의 탄식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나는 지불놀이에 흠뻑 빠진 동네 아이들 사이에 끼여 헹그러니 하늘 향해 우러러본다.

저 높이, 저-어 높은 겨울밤 하늘에 금방 내게로 쏟아질 것 같은 어마어마한 보름달의 신비함에  '와, 와' 탄식이 연거푸 흫러나왔다. 나는 양손을 한일자로 펼치고 눈을 지그시 감고 빙빙 돌아본다. 나는 신비의 세상으로 들어가려는 듯 빨리 더 빨리 돌아댄다.


1970년 3월 초.

등학교 입학식날

아침나절 따뜻한 햇볕은 얼어 붙은 땅을 사르르 녹인다. 며칠 못 본 햇볕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웠다.

운동장 여기저기에는 아직 울퉁불퉁 꽁꽁 얼어붙은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정사각형이 학교 운동장이면 왼쪽은 일제 목조건물의 잿빛 기와집의 초등학교 2, 3학년 교실이 자리하고 위 편에는 학교 공동변소가 있다. 경사진 화단과 계단 아래로는 1학년 5 학급의 교실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건물 주변으로는 중학교와 경계수 소나무 숲을 이룬 초등학교 뒷동산을 등진 잿빛 팔작 기와지붕의 교무실(초등 4학년 때부터 강당으로 사용함) 은 대각선으로 운동장 저만치 교문을 마주하고 다. 교무실 건물 측면으로 이어지는 무성한 소나무 숲 속에는 탁구공 만한 눈동자를 부릅뜬 짙은 잿빛의 우람한 이순신 장군상이 우뚝 서 다. 오른쪽에는 새로 건축하는 이층짜리 상급생 교실 건물로 운동장 향해 정향나무가 조경돼 있다. 잿빛 이순신 장군 동상을 등진 철제 교단 앞에서 입학식 진행이 있을 모양이다. 팔작 기와지붕의 교무실 건물 앞으로 펼친 운동장에는 다섯 개 책상 의자에 앉은 선생님 앞으로 학부형 손을 잡은 체 우는 입학생들로 우왕좌왕이다. 아버지는 1학년 3반  임시 명찰을 받아 내게 손수건과 함께 누비 오버 앞자락에 오핀으로 찔러 달아 주고는 반편성 된 줄에 두 명씩 맞춰 정렬해 서 있는 나를 잠시 보고 집에 가신다.

나는 너무 추참을 수가 없는데 교장선생님의 긴 연설은 도대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내복 위에 독고리 두 개나 겹쳐 입모자 달린 누비 오버와 누비바지차림에  털목도리를 둘렀고 양손에는 털 벙어리장갑에 두툼한 양말에 새로 구입한 털신지 신었는데도 발가락은 아무 감각을 느낄 수 없다. 나는 너무 추워 견딜수 없을지경이다. 우리 집 따끈한 구들목 생각이 절로 났다.

어떤 아이는 아직 반을 못 찾았는지 콧물 훌쩍훌쩍 드리 마시며 울며 헤매고 있다. 오줌이 마려왔다. 입학식 끝날 때까지 참을 수가 없다. 비비 다리를 꼰다. 얼른 변소에 가 오줌을 빼내고 싶은 생각뿐이다. 서서 지릴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번쩍 손을 들어올린다. '변소가 급해요.'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교무실 건물 아래 작은 목재 건물 향해 가르쳐 준다. 그곳이 엄청 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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