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밥상 전주 막걸릿집

by 초이르바


계절밥상 전주 막걸릿집


전주 전통 맛걸릿집에는 차림표가 단출하다. 막걸리 한 주전자 0000원, 두 주전자째 0000원 가격만 있을 뿐 안주 차림표가 없다. 또한 전주 음식점은 막걸리 없는 곳 찾기가 더 힘들다. 방금 막 걸러서 막걸리, 맑은 청주를 뜰 것 없이 아무렇게나 휘저어 막 걸러서 막걸리. 막걸리는 농부들 새참으로 배를 채워주던 에너지원이었다. 한때 전주 삼천동 우체국 거리나 서신동 샛길은 막걸리 골목으로 이름을 날렸다.


가람 일기 속에는 옴팡집이 등장한다. 지금의 풍남문에서 전라 감영 사이에 있던 막걸릿집이다. 안주를 죄다 내놓아서 옴팡집, 모두 먹으라고 옴팡집이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시던 가람 선생의 가람일기에 옴팡집이 종종 등장한다. 이름 없는 대학가 막걸릿집 방구석에는 가마니처럼 큰 비닐봉지에 옥수수 튀밥이 가득했다. 안주가 부족하면 연신 튀밥을 그릇에 담아 안주로 먹었다. 술보다 안주로 배를 채우던 가난한 대학생들에게 막걸릿상은 풍요의 밥상이다.


전주천에서 김제 정읍으로 나가는 완산동 간이 터미널 뒤로 안주가 넘치는 막걸릿집이 몇 있었다. 그중 정읍집 술상의 화려함은 한 번만이라도 가 본 사람들이라면 오래도록 잊을 수 없다. 술을 시키면 커다란 탁자에 안주를 겹겹이 쌓은 술상을 두 사람이 무겁게 들고 들어온다. 가까운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자랑하고 싶은 오색찬란한 술상이다. 그런 날은 언제 술집을 나왔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여기도 너절한 차림표는 없다.


정읍집 이후 막걸리는 새로운 분위기, 새로운 술에 밀려 하나둘 사라진다. 중앙 시장 한두 집, 남부시장 선술집 몇이 있을 뿐이다. 막걸릿집이 거의 사라질 즈음에 효자동 주공 아파트 앞 깊은 골목 막걸릿집으로 술꾼들이 몰려든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술시에 가면 여지없이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진주집은 그리 깔끔하지는 않았다. 주모와 심부름꾼 남편이 자식 자랑을 하면서 하는 허름한 술집이다. 골목이 미로이고 깊어서 한 번 찾아가서는 한참을 헤맨다. 그래도 술꾼들은 술집을 용케도 잘 찾아오고 집에 잘도 간다. 진주집은 매일 시장에 가서 제철 식재료로 안주를 만들어 내놓는다. 빠짐없이 안주로 나오던 다슬기를 쪽쪽 빨아 속살을 빼먹던 소리가 지금도 선하다. 데이트하는 청춘들도 사이사이 여럿 끼어 있었으니 분위기도 젊다. 막걸릿집이 드물던 시절, 진주처럼 빛나던 술집이다.


계절도 순환하고 예전 막걸릿집도 다시 돌아왔다. 효자동 홍도 횟집이 어느 날 홍도 막걸릿집으로 상호를 바꿨다. 전주 막걸리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횃불이 홍도 주막이다. 횟집을 하던 주방장 아저씨의 음식 솜씨가 사람을 불러 모았다. 홍도 주막은 새벽 시장에서 가장 싱싱한 식재료로 만들어 내는 안주를 먹기 위해 막걸리를 마시는 집이다. 좌석이 많아도 사람들은 바깥에서 줄을 선다. 한두 잔 술잔을 기울이다가 옆을 보면 날을 바꾸어 시장이 도지사가 국회의원이 그리고 시인 안도현이 앉아 있다. 시끌벅적한 진짜 막걸릿집의 정경이다. 즐거운 시끄러운 소리, 그 소리가 또한 안주가 되는 곳이다.


홍도 주막이 막걸리 술꾼들의 흥을 돋울 때 삼천동에서 막걸리로 흥겹게 장단을 맞춘다. 이른바 삼천동 우체국 막걸리 골목의 탄생이다. 수목집은 훗날 50여 개가 넘는 삼천동 막걸리 골목의 출발점이다. 방안에 앉은뱅이 탁자 세 개, 밖에 의자 놓고 앉는 탁자 세 개가 전부이다. 좁은 골목 선술집 크기이다. 중년의 주모가 사장이며 사원이고 심부름꾼이다. 술집 앞에는 언제나 술꾼들이 줄지어 기다린다. 술자리에서 사람들이 일어서면 다음 차례가 되는 사람들이 술상을 치운다. 손님이 술상을 닦고 술안주를 날라다 진설한다. 술 주전자도 손님이 챙긴다. 주모는 술안주를 만들고 술꾼들이 나가면서 주는 술값을 받을 뿐이다. 그야말로 정신없다. 주모는 매일 새벽 시장에 가서 싱싱한 계절 식재료를 사 와 술상을 내기 직전에 음식을 만든다. 당연히 벽에는 술 한 주전자 값만 붙어 있다. 셋집이던 수목집을 나가게 되자 술꾼들은 주모를 따라 일벌들이 여왕개미를 따르듯 이동한다. 주모가 건강할 때까지 번암집에 술꾼들이 북적였다.

이른 저녁부터 관광객들로 줄 서는 삼천동 용진집, 삼천동 풍남중 앞 골목 개미집, 송천동의 생생 막걸리, 모래내 시장 서울 막걸리, 서신동 김삿갓 막걸리, 태인 명인 막걸리를 파는 고구려막걸리, 판소리에 취하는 서신동 달빛소리 등도 이제 옛날이다. 배달 음식으로 막걸릿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나오면서 전주막걸릿집은 죽었다. 막걸리에 돈이 비치더니 안주가 차림표에 빼꼼히 들어차기 시작했다. 막걸릿집 안주에는 계절이 사라졌다. 서신동 막걸리 골목, 새로운 방식의 옛촌 막걸릿집은 깨백숙, 돼지 수육, 홍어삼합, 게장 비빔밥, 새우구이, 보리굴비 등 젊은이들이 좋아할 안주가 나온다. 매일 시장의 싱싱함이 술상에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전주의 전통은 아니다. 그러나 술집에서 만드는 인공감미료 없는 막걸리는 새롭다.


첫 주전자에 만 오천 원 하던 술집이 이제는 없다. 예전에는 거의 모든 집이 첫 번째에 막걸리 세 병을 주전자에 넣어 내놓으면서 기본 안주가 나온다. 두 번째 술주전자를 시키면 2차 안주가 나온다. 세 번째 주전자는 두 번째 주전자와 같이 삼천 원 또는 오천 원 낮은 가격으로 게장에 밥이 나온다. 술 취하게 마셨으니, 게장에 밥 먹고 가라는 것이다. 게장에 밥 비벼 먹던 막걸릿집이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반찬 잘 나오는 음식점에 가서 막걸리를 주문한다. 집에서 제철 음식 싱싱함을 밥상에 펼치면 그때 막걸릿잔을 내놓는다. 새벽 시장의 싱싱함과 함께 차림표에 없는 계절이 안주로 오르는 막걸릿집이 전주 어딘가에서 이어가고 있으리라. 고물가 시대 새로운 탐색의 시간이리라. 살아 있는 음식의 고장 전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