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 음악은 무엇일까? 아마 아리랑일 것이다. 아리랑은 한국인이라면 세계 어느 곳에서 누구나 가장 친근하게 즐기며 부르는 우리 민요다. 다양성이나 개성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판소리가 또 다른 우리의 대표 음악이지 않을까? 판소리는 한국의 국가무형문화재이면서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에 선정되고 세계무형유산에 목록을 올린 우리 음악이다. 판소리는 전문 소리꾼의 소리에 청중이 함께 참여한다는 점에서 민중과 호흡하며 어우러지는 가장 민주적인 전통 음악이다. 판소리는 조선 후기부터 현재까지 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고 현재는 세계 속의 한국 전통 음악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아마도 앞으로 한류의 중심은 판소리 같은 우리 전통 음악의 현대화에 있지 않을까? 판소리는 독특하게 한국의 다양한 삽입 가요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서사이기 때문이다. 곧 판소리에는 한국의 전통 음악이 모두 들어 있다. 춘향가나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등 청중이 뻔히 아는 소설을 반복해서 소리로 듣는다. 판소리 사설이 그렇게 재미가 있었을까? 아니면 판소리 음악이 좋아서였을까? 어쩌면 두 가지 모두가 이유일 것이다.
조선 후기는 판소리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또한 소설의 시대였다. 조선 후기에 소설을 전문적으로 읽어주는 전기수(傳奇叟)는 꽤 인기가 있었다. 전기수 중에는 부유한 가정을 찾아다니며 소설을 읽어주고 보수를 받기도 하였다. 전기수가 도시에서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에 자리 잡고 앉아 소설을 읽어주다 긴박한 대목에서 읽기를 멈추면 청중들이 그 대목을 듣고 싶어 엽전을 던져주었다. 기록에 의하면 전기수는 서울 동문 밖에 살았다. 책 거간꾼인 책쾌(冊儈)도 조선시대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책쾌는 서적 중개상, 서적 외판원, 돌아다니는 서점이다. 독자를 찾아다니고 독자가 원하는 책을 구해 주며 거래하여 이윤을 남겼다. 세책가(貰冊家), 세책점, 세책방 등 책을 돈을 받고 빌려주는 서적 유통 방식이 조선 후기에 또한 성행했다. 최근의 만화방과 같다. 이 세책방에서 인기가 있었던 것도 소설이다. 채제공은 부녀자들이 비녀나 팔찌를 팔거나 혹은 빚을 내면서까지 책을 빌려 긴 해를 보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는 독서 환경이 부족한 지역에 사는 독자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세책 영업을 하기도 했다.
소설 독자층이 늘어나면서 주로 서울에서 활동한 전기수, 책괘, 세책방 등의 수요는 소설 출판으로 대체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인기가 있던 소설을 손수 베끼는 일이다. 책을 빌려다가 베끼고 베낀 소설을 다른 사람이 빌려가 다시 베끼다 보면 원래 소설에서 일부가 빠지기도 하고 창의성이 있는 사람은 일부 내용을 삽입하기도 한다. 전해오는 소설의 판본이 다양한 이유이다. 손으로 일일이 베끼는 작업의 한계를 극복한 상업적 출간이 방각본 소설(坊刻本小說)이다. 민중의 문학적 욕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 방각본 소설은 지역적으로 특성 있는 출간 형태를 보인다. 조선 후기 방각본 소설에서 인기가 있던 것은 군담소설과 애정소설 등이었다.
조선 후기 가장 인기 있던 판소리와 가장 인기 있던 소설이 춘향가에서 만났다. 그 결과가 방각본 소설의 출간이다. 판소리의 대표는 춘향가이다. 우리 문학 작품 중 가장 먼저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외로 알려진 작품도 춘향전이고, 최소 160년 이상 한국의 베스트셀러이기도 한 노래로 전해오던 한국의 대표 소설이다. 춘향가 중에 가장 문학성이 높고 분량이 긴 작품은 서울에서 출간된 『남원고사』와 전주에서 출간한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이다. 서울은 한 나라의 수도라는 점에서 당연하다고 할 수 있으나 전주판본인 완판본 춘향가가 상업적으로 출간되고 널리 알려진 까닭은 무엇인가?
조선 후기에 출판문화가 발달한 지역적 특성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중앙 정부의 책을 출간하는 감영이다. 감영의 관찰사는 왕권을 대행하는 사람으로 여러 책을 출간한다. 특히 사대부 취향의 도서는 감영이 주도하여 발간하였다. 전라감영 전주에서 출간한 책을 완영본, 완주 감영의 판본이라 했다. 상주에서 대구로 감영을 이전한 경상 감영의 판본을 영영본, 영남 감영의 판본이라 하였다. 청주 충주 공주 등으로 감영을 여러 차례 이전한 충청 감영 판본은 금영, 평안 감영은 기영, 함경 감영은 함영, 황해 감영은 해영이라 하였다. 그중에 전주의 영영본이 가장 많은 책 237종을 출간하였다. 이는 전라도 감영이 경상감영이나 충청감영처럼 감영을 이전하지 않고 오랫동안 한 지역이 감영으로 유지한 점도 한 원인이다.
감영본과 달리 방각본은 상업적 출간의 민간 출판이다. 감영본을 출간하는 지역이라고 방각본이 발달한 것은 아니다. 방각본으로는 경판본, 안성판본, 완판본이 대표적이다. 연구자마다 견해가 일부 다르지만 서울 방각본인 경판본은 70여종, 안성판본은 11종, 완판본은 23종으로 모두 소설이다. 이는 독자층의 수요와 함께 경제 규모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중 완판본의 문학성은 두드러진다. 전주가 감영이 있는 도시라지만 상업적인 방각본이 발달하고 『열녀춘향수절가』처럼 문학성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책을 발간하려면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한다. 글자를 새기는 목판의 나무 공급이 좋아야 하고, 닥나무 재배가 잘 되는 곳, 그 닥나무로 한지를 만들 수 있는 깨끗한 물이 있어야 한다. 조선시대 감영에 한지를 공급하던 한지 생산지로 유명한 곳은 조선시대에 전주, 남원, 상주, 의령 등이다. 특히 전라도 한지는 조선시대에 일본과 중국에 수출하였다. 이들 지역은 한지 공예도 발달한다. 다음으로 책 발간에 참여하는 장인들이다. 나무를 다루는 장인, 글자를 새기는 각수, 서예인, 글을 아는 지식인 등이 있어야 한다. 책 인쇄 유통을 위해 돈을 대는 인쇄인, 유통 중개인, 소비자 등도 있어야 한다. 감영이 있던 지역은 이들 조건을 거의 충족한다.
감영이 있던 지역적 특성만으로 완판본을 설명할 수 없고, 그 예술성을 설명할 수 없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긴 분량의 책을 출판하고 구매할 대상이 있었기 때문에 춘향가는 예술을 확보하며 책으로 출간된다. 구체화하면 아마도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판소리 문화를 발달시킨 예술성과 그 예술을 즐기는 심미안을 가진 사람들, 또 하나는 음식 문화이다. 이 둘은 따로이면서 하나이다. 음식 문화가 잔치 문화를 만들고 잔치 문화가 소리꾼을 부르고 그 소리에 마을 사람들이 함께 청중이 된다. 춘향가 사설은 민중의 요구를 반영하여 광대가 만들어 간다. 곧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는 호남지방의 예술적 심미안을 갖춘 청중의 요구를 반영하여 소리꾼 광대가 만든 예술이다. 이와 같은 예술은 인류 문화를 살펴볼 때 여유 속에서 일상의 삶을 뛰어넘을 때 나타난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 등 수많은 전주 출신 소설가들에 완판본의 예술성이 이어지고 있다.
예술을 즐기거나 가진 자들이 잔치할 때는 소리꾼을 불렀다. 잔치는 먹고 즐기는 자리이다. 잔치 음식 문화 속에는 춤과 음악이 있다. 음식 문화의 발달은 당시 가장 인기가 있던 판소리 문화를 즐기는 기회가 된다. 음식 문화가 발달한 곳이 물산이 풍부한 호남평야였다. 전주는 동으로 산에서 채취한 나물, 서해에서 잡은 해산물, 서해의 염전이 만든 각종 젓갈, 호남평야에서 수확한 쌀과 채소 등으로 음식 문화가 발달한다. 이것저것 섞어서 서민들은 비빔밥을 예술처럼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 해방을 한 편의 예술적인 사랑 이야기로 즐겼다. 판소리는 개방적인 음악이다. 판을 깔아놓고 청중이 둘러앉아 얼쑤 하면서 호흡하는 소리이다. 부잣집 잔치는 서민들이 판소리를 공으로 들을 기회였다. 판소리가 대중음악인 이유이다. 청중과 소리꾼 광대가 협연한 음악이 판소리며 이를 문자로 기록한 것이 춘향전이나 심청전 등이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그동안 실린 작품은 문학성이 높아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 84 장본이다. 이보다 약 30년이 앞선 『남원고사』는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보다 작품의 양이 두 배 이상이다. 『남원고사』를 춘향전의 대표 작품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완판본은 춘향의 인간미를 부각하며 하층민의 현실 비판과 저항 의식이 나타는데 비해 『남원고사』는 월매와 방자, 농부 등 하층민이 양반 이도령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남원고사』는 파리 동양어학교와 일본 동경대학 도서관에 있다.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는 전주 한옥마을 완판본문화관에 소장하고 있다. 경판본 『남원고사』는 춘향의 신분이 기생이다. 기생이면서 기생이기를 거부하는 이야기이다. 기생이 양반의 정실부인이 되는 비현실을 생각하여 완판본에서는 기생 신분에서 벗어나는 쪽으로 변화한다. 춘향가는 시대를 반영하며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춘향가는 여러 판본 모두를 일컫는 말이다. 어느 하나만 언급하는 것은 춘향가의 일부만을 이야기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