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별 Sep 28. 2024

플루토에서 아침을 breakfast on pluto

닿지 않는 그 곳을 향해

킬리언 머피 주연의 영화 '플루토에서 아침을'을 봤다. 요즘 킬리언 머피에 입덕해서(!)그가 나온 작품을 여러개 보고 있는데, 제일 놀라우면서도 여운이 남는 작품이라 이렇게 글을 남겨본다.


여기서 킬리언 머피가 맡은 캐릭터는, 몸은 남자이지만 마음은 여자인 '패트릭'이자 '키튼'. 개인적으로는 게이, 트렌스젠더, 드랙퀸같은 류의 이야기나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 영화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그런데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들고, 공감가는 지점들도 많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플루토에서 아침을'이라는 제목이 오드리 헵번 주연의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을 트위스트한 버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패트릭은 오드리 헵번처럼 예쁘고 우아한 여자로 살고 싶지만, 불가능에 가깝다. 닿을 수 없는 플루토(명왕성)같은 세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좌절하거나, 우울해하지 않는다. 그저 꿈을 꾸며 나아간다. 명왕성이라느니, 유령이라느니 하는 이름을 붙여가며. 나름대로 유쾌하게.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패트릭은 어렸을 때 부모에게 버림받아, 양어머니에게 키워진다. 어린시절부터 여자아이들과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어 양어머니에게 늘 혼이 나곤 한다. 너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고. 고등학생이 되어 정갈한 학교 유니폼을 입고 다녀야하지만, 본인만의 취향대로 교복을 화려하게 꾸미고 다니기도 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든 생각은, 여자들 중에서도 패션에 관심없고 수수한 걸 좋아하는 여자들이 있는데 꼭 화려한 색상을 좋아하고 패션감각이 좋은 남자들은 게이취급을 받거나, 게이의 특징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게 좀 의아하다는 것?

또, 패트릭은 함께 사는 누나와 엄마에게도 별다른 애정이 없어보인다는 점도 좀 궁금했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구박 받고 본인의 성정체성에 대해 억압을 해서였을까? 위의 사진도 엄마한테 자기 놀러가야되니까 돈 달라고 하는 장면인데 엄마가 안 들리게 엄마를 욕하고 있음 (ㅋㅋㅋㅋ) 진짜 엄마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진심어린 사랑을 받지 못해서인지.. 거의 20년간 함께한 가족들임에도 전혀 미련 없이 집을 떠나는 패트릭이다.


자기를 버린 친엄마를 찾겠다는 목표 하나로 고향 마을을 떠나는 패트릭.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사랑도 하고, 또 버림을 받기도 한다. 너무 귀엽고 짠한 패트릭 키튼 .. ㅠ(패트릭이라고 하면 키튼이 화낸다) 처음에는 키튼이 마냥 생각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빙그레 썅년(!)같았는데, 사실 그렇지만도 않다. 자기를 사랑하는건지 이용하는건지, 거짓말하는지 아닌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의 태도는 늘 한결같다. 키튼은 언제나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

항상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를 우스꽝스러운 말이나 과장된 몸짓을 보여주지만, 그건 결코 장난이 아니다. 그건 그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버림 받고 상처 받을 때마다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그만의 노력이다. (여담이지만 이 뽀글머리가 머피한테 너무 잘 어울리고 귀엽다 .. ㅠㅠㅠ 진짜 매 컷마다 이 사람이 진짜 배트맨 그사람 피키블라인더스 그사람 맞나 하는 경이로움과 충격이 계속해서 밀려옴;)


어찌저찌 엄마를 찾기 위해 런던 입성에 성공한 키튼! 이제부터는 혼자 힘으로 돈을 벌어야 되니 닥치는대로 이 일 저 일 하게 된다. 런던에서의 첫번째 잡은 바로, 인형탈 쓰고 공원에서 춤추기 ㅋㅋㅋㅋㅋ 개인적으로 영화 내에서 가장 밝고 귀여웠던 구간..  얼떨결에 하게 된 일이지만 열심히 춤과 노래를 배우는 모습도 참 사랑스럽다. 귀에 맴도는 언더그라운드 오버그라운드 웜블링 프리 ~~ (?)

https://www.youtube.com/watch?v=FZ2mJPSccvo&list=PLNX2qACnoW1hyxEiU5HsW_ge19F3_9iOX&index=9

+이제보니 뮤비에 나오는 애들도 저런 옷을 입고 있네;;ㅋㅋㅋㅋㅋ영국의 유명한 고전노래인가부다 ..



처음 땅을 밟은 런던에서 오갈 곳 없이 떠돌며 일하고, 술마시고, 노는 키튼. 엄마를 찾기 위해 나름대로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다니지만, 여전히 엄마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가 없다. 사실 런던에 있다는 것도 키튼의 감?추측에 가까웠으니..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와 같은 난이도 아닐지 (ㅠㅠ)

무엇보다 이쯤에서의 킬리언 머피의 표정연기가 참.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공허한 것 같기도 하고 공상을 하는 것 같기도 한 눈빛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영화 내내 얘는 왜 항상 어디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표정인지, 왜 자꾸 이 사람 저사람에게 끌려다니는지, 심각한 얘기는 왜 그토록 회피하는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그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과 상처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겠지. 어릴 때부터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해 부정 당하고, 미움 받고, 그럼에도 사랑했던 친구와 연인은 아프게 떠나보내야 했으니. 그 모든 감정들이 밀려오지 않도록, 떠오르지 않도록, 이상하고 가벼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키튼은 아주 순수하다. 투명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CyBcHUe4WeQ&list=PLNX2qACnoW1hyxEiU5HsW_ge19F3_9iOX&index=11

+사운드 트랙 중 추천하고 싶은 곡. 런던에서 방황하는 키튼의 모습이 떠오르는 곡이다.



진짜 보다보면 제발 아무나 믿고 따라가지 좀 말라고 영화 속으로 들어가서 키튼을 뜯어말리고 싶어진다(;;). 그나마 그 역할을 해주는 게 어릴 때부터 절친한 친구인 '찰리'인데, 그렇다고 찰리가 키튼만을 위해 런던에서 계속 키튼과 함께할 수가 없으니.. 사실 찰리의 이야기도 참 슬프다. 영화가 1940년대 후반의 아일랜드와 런던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키튼의 개인적인 이야기 외에도 당시 혼란스러웠던 사회상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그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위험한 도시의 모습 등등.


그 와중에 어떤 말도 안되는 사건으로 경찰서에 들어가 조사를 받게 되는 키튼 (하..). 진짜 해도해도 너무하다 싶다. 그리고 이 쯤부터 키튼의 진실된 목소리, 속마음을 조금씩 알 수 있게 된다. 외롭고 무서운 세상 밖으로 나가느니,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한 감옥 안에 있고 싶어하는 키튼.. 너무 불쌍하고 슬프다. (아니 경찰들이 엄마를 찾아주는 건 기대도 안하고 좀 제대로 된 일자리라던지 숙소로 인도해주면 좋으련만, 너무 매몰차다 진짜;)

늘 아무것도 모르는 듯 웃고만 있는 키튼이지만, 사실 자기가 얼마나 위험하고 안 좋은 상황에 놓여있는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갈 이유도 그에게는 없다. 이미 그 곳에서도 많은 상처와 아픔을 겪었으니.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찾는 것만이 외롭고 고독하고 상처 받은 그의 마음을 치유해 줄 유일한 방법, 유일한 안식처라고 생각했을것이다.


그래서, 키튼은 엄마를 찾았을까?

스포일러를 하자면, 찾는다. 하지만 그것이 키튼에게 평안과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다. 대신, 오랫동안 자신을 사랑으로 지켜주었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사실 후반부부터는 키튼을 지켜보는 것이 참 힘들었다. 저 삶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아무런 희망도 없는 무료한 얼굴이 너무 아팠다. 그 때 아주 중요한 인물이 등장하게 되고, 그 인물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제 와서?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 비겁함과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니. 하지만 그래도, 만약 진작에 키튼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줬다면, 키튼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세상으로부터 지켜줬다면, 키튼이 겪은 수모들은 아마 겪지 않아도 되었을 일들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여전히 떨칠 수 없었다.



요건 비하인드씬 ㅎㅎ

어쨌든,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긴 했지만? 어찌 보면 굉장히 현실적이고, 납득이 가는 전개와 결말이었다. 결국 우리는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니까. 사랑의 힘으로 지난 아픔을 극복하고, 함께 삶을 이겨나가는 법이니까.

영화 내내 그토록 방황하고 아파하던 키튼이 처음으로 평화를 찾은 것 같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엔딩이었다. 물론 앞으로의 삶도 그리 평탄치는 않겠지만, 키튼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니까.


그렇게 살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고 소리치는 경찰에게 자기도 알고 있다고 대답하고,

스스로를 재앙이라고 칭하는 패트릭 키튼의 슬픈 눈빛이 아직도 선명하다.

어찌보면 유약하고 의존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캐릭터이지만

늘 자신만의 유머와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고 키튼으로서의 삶을 살아나가는 그 또는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

그리고, 너무나 완벽하게 사랑스럽게 키튼이라는 캐릭터를 소화한 킬리언 머피에게 더 빠져버리게 된 영화였다(오열)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목소리, 눈빛, 몸짓 하나하나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너무 과하지 않으면서도 순간순간 웃음이 터져나올 정도로 기가 막힌 연기(ㅋㅋ) 키튼이 여자로 살아가는 남자라는 특이성? 외에도, 키튼이라는 사람의 매력 자체를 정말 잘 살린 것 같다. 정말 슬프면서도 웃기고, 유쾌하면서도 불쾌한, 많은 생각과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작가의 이전글 갑자기 비가 올 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