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복은 어디에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읽었다.
나는 어린시절 캐나다에서 몇 년 살았던 시간 이후로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내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즐겁고 기쁜 순간들은 있었지만, '내 인생이 행복하다' 는 아니었다. 엄청나게 불행한 건 아니지만 행복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어떠한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법, 인식 등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선택 또는 잘못이 아닌 여러가지 일들로 견뎌야할 어려움이 너무 많았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캐나다에 살았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을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해외로 나가고 싶었다. 해외에서 일하고, 살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가려고 하면, 그것 또한 겁이 났다. 내가 두고갈 수 없는 여전한 문제들도 있었고, 또, 그런다고 이 문제들이 해결될까?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데. 등등의 걱정이 나를 가로막기도 했다.
어쨌든 내가 왜 이 곳에서의 삶이 힘든지, 내가 왜 행복하지 않은지 그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좋은 답을 찾을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최근 몇 달동안 수도 없이 들었고 그런 고찰?덕분에 이 책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 책을 빌려오는 순간마저도 '내 행복은 내가 찾는거지, 이 책에 답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ㅋㅋㅋ 어느정도 맞는 판단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가 왜 행복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글로 남겨두고 싶은 내용들을 정리해보겠다.
1. 인간은 동물이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우리의 예상보다 '무의식'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우리가 이성적이라는 생각, 그 오만함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2. 행복은 생각과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번에 근거하여, 우리가 이성의 영향만 받는 영역은 없으므로 행복 또한 경험과 쾌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감정인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감사하기만으로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는 없다. 마치 다리가 부러졌는데 다리가 건강하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한다.
3. 행복은 '빈도'에 달려있다.
흔하지 않은 대단한 행운보다,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행동 또는 일이 자주 일어날수록 인간은 행복해진다. 중요한 건,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행동이나 원인은 각자 다르다는 것. 세상이 정해놓은 것(특히 물질적인)만이 답은 아니다.
4. 개인의 자율성이 허락되는 정도에 따라 행복감이 높아진다.
그래서 개인주의 문화를 갖고 있는 국가일수록 국민들의 행복도가 높다.
5. 다른 이를 돕는 일을 하는 사람이 행복하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지 않는다. 반면, 의사와 교사 등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있었다.
6. 인간의 행복은 결국 '관계'에 달려있다.
인간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은 관계, 즉 사람이다. 좋은 관계를 많이 가질수록 행복도가 높아진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교류할수록 행복하다. 반대로,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받게 되면 그 또한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7. 물질구매보다 경험구매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더 행복하고, 오래 행복하다.
8. 행복감이 오래 가지 않는 이유는
그로 인해 우리가 계속해서 어떤 것을 욕망하고, 열심히 삶을 살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9. '행복하지 않은' 것과 '불행'함은 다른 것이다.
10. 인간의 목표는 행복이 아니라 생존이다.
내가 이해한 바를 정리해보자면,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 그리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행복감이 필요하다.
즉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연애하고 가정을 꾸리는 일이 가장 효과(?)가 좋고,
자주 행복감을 느끼면 행복한 사람이 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가 왜 행복하지 않은지 그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리고, 어렴풋이나마 알았던 그 이유들이 정확하게 정리되었다.
1. 집단주의
2. 물질주의
3. 좁은 시야
4. 강약약강
한국은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나라이다. 이 책에서 인용한 연구결과를 봐도, 일본과 한국이 유일하게 경제적 풍요에 비해 행복도가 낮은 국가라고 한다. 개개인의 자율성, 개성을 드러내기 힘든 사회일수록 행복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회사생활 같은 조직생활도 힘들게 느껴진다. 일보다도, 모든 말과 행동에 제약이 걸리는 그 답답함이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보다도 더 고질적인 문제는 물질주의라고 생각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어느정도를 소유하고 있느냐, 를 중요시하는 사회. 내게 필요한만큼이 아닌, 다른 사람들 눈에 없어보이지 않기 위한 소유. 단순히 물질을 넘어 외모, 이제는 인간관계까지 타인의 눈에 그럴 듯해보이기 위해 꾸며내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서양 문화권에서는 상위 몇 프로의 부자들(졸부)만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과 행동을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 같다. 한마디로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싶어하고, 아이돌이 되고 싶어하는 것 같달까.
이 모든 것들의 원인은 좁은 시야일 것. 한국에서 살다보면, 개개인의 취향이나 꿈보다는 모두가 인정하는 대기업, 명품 같은 것들을 꼭 가져야만 성공한 삶이고 그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여기게 된다. 나도 모르게 그러한 인식이 스며든다. 왜 그럴까? 결국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인적 자원 외에는 기대할 수 있는 자원이 없었다. 특히 빠른 경제 개발을 목표로 했던 국가 환경 속에서 더더욱 그러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권, 자유보다는 나라를 위해 조직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 갈아넣어야만 살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덕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안타깝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사람만큼 똑똑하고, 성실한 국민들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한 교육 환경 속에서 자랐음에도 뛰어난 창의력을 가진 인재들도 굉장히 많다. 연예인, 운동선수들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똑똑하고 성실한 것에 너무 큰 가치를 두어서일까. 잘못된 환경이나 문제를 뒤엎고 바꿀 만한 모험심과 대담함은 없는 것 같다. 우선 내 앞에 놓인 일, 내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인정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전에는 그렇게 하면 어느정도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그렇다보니 우리 모두 번아웃, 무기력증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뭔가를 엄청 열심히 하는데, 그건 결코 내게 풍요나 행복을 주는 일이 아니니까. 내게 돌아오는 건 쥐꼬리만한 월급이고, 이 또한 주변 사람들 눈에 우스워보이지 않도록 나를 잘 꾸미는 일, 좋은 곳에 가는 경험에 써줘야한다.(외국에서 좀만 지내보면 우리나라만큼 외모에 신경 쓰는 나라가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정말 원해서 하는 소비는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다.
실패와 시행착오에도 매우 큰 리스크가 따른다. 지금 퇴사하면, 이직하면, 여행가면 내 커리어가 끊기고 내 인생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휩싸인다. 또, 나이가 많은 사람은 그의 경력이나 능력과 상관 없이 조직에서 받아주지 않는다.(요즘은 조직 뿐만이 아닌 듯하다. 전문기술을 가진 풀에서도 그런 경우가 잦다) 그러니까 우리는 확실한 목표도 없이 끝없이 달리고, 달려야 한다. 높은 노동강도 덕에 내 스스로를 돌아보고 진정으로 나를 위한 일에 신경을 쓸 에너지도, 시간도 없는 것이다.
이처럼 성인들이 느낄 수 있는 어려움 외에도, 어린 시절부터 내가 억울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약자에 대한 도움이나 배려를 얻기가 정말 힘든 사회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는 부부가 이혼한 후 한 사람이 위자료 또는 양육비에 대한 책임을 다 하지 않을 경우 법적으로 그 사람의 월급에서 바로 일정 금액을 빼서 이전 배우자에게 전달해줄 수 있다고 한다. 개인의 피해 구제를 위해 소송을 하는 일도, 승소하는 일도 잦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혼가정에서 여자 혼자 아이들을 키우느라 숱한 고생을 하고, 자녀들도 그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또는 짐을 갖고 사는 경우가 많다. 이건 단순히 개인의 노력이나 극복해야 할 문제를 넘어, 법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하는 부분이다. 이외에도 학교폭력, 과도한 노동 등 강자에 의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약자들을 위한 구제나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반면 가진 자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럽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나같은 사람은 행복하기가 어려운 환경인 것이다.
자율성이 강하지 않고, 물질적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다른 이들이 의견을 수용하는 것에 불편함이 없고, 약자들에게 무관심한 사회라도 상관 없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맞추기 위해 노력해왔던 것 같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 관계가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데, 나와 같은 결을 가진 사람이 주변에 많이 않으니 관계에서 오는 충만함도 부족했을 것. 특히 해외 경험이 없는 이들일수록 더욱 그래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대화를 하기가 어려웠다.(나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미 해외로 나가고 없더라,,!)
나는 이미 어린시절부터 세상에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고, 다른 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을 경험했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늘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여러가지 현실이 너무너무 답답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제는 더이상 사람들 눈에 그럴싸한 인생을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거나, 참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 경험하고 배운 많은 것들을 잊지 않고, 도전할거다.
한국을 떠날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