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가 되어버린 장난 ②

톰 라이코스&스테포 난쑤, <소년이 그랬다>

by 박진서

>>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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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와 정도, 작가의 목소리를 전하다

민재와 상식 말고도 작품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주인공들이 있죠. 바로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광해와 정도입니다. 이제 막 경찰생활을 시작한 열혈형사 광해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선배형사 정도는 항상 붙어다니며 일을 합니다. 마치 민재와 상식처럼 말이죠. 하지만 두 사람의 성향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 차이는 작품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보여줍니다.

[정도] (표어를 읽듯) 착한 마음 고운 마음, 여린 짭새 호구 된다.
[광해] 착한 게 아니라 애들을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대하려는 겁니다. (2장, p30)

광해는 인간의 본성이 원래 착하고, 아무리 범죄자라도 개과천선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경찰들이 범인을 체포하고 구속시키는 것 또한 범죄자들이 다시 착한 모습으로 사회에 돌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죠. 범인을 대할 때도, ‘왜 이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을까’하는 동기에 더 초점을 맞추어 생각합니다.

[광해] 가해자를 엄벌한다고 해서 피해자의 분노와 슬픔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정도] 가해자를 이해한다고 해서 범죄까지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달래듯) 인마, 네가 그런 걸 왜 신경 써. 사건이 일어났고, 사람이 죽었어. 그럼 유죄지. (9장, p86)

반면, 정도가 바라보는 세상은 부정적이면서도 매우 현실적입니다. 범죄자는 범죄자일 뿐이니, 동기를 찾는 것은 의미없다 말하죠.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비슷한 처지에 있는 모두가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니니까요. 광해와 같은 이상적인 태도로는 형사생활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광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정도] 복잡할 게 뭐가 있어?
[광해] (단호하게) 우린 지금, 두 아이의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겁니다.

사이

[정도] 만약에 그 죽은 운전자가 네 아버지면? 누가 던진 돌에 재수 없게 맞아서 차 앞 유리가 깨지고, 안구가 함몰되고, 가드레일 받아서 50미터나 질질 끌려가다가 죽었어. 그게 네 아버지면?
[광해] 그 아이가 박경사님 열네 살짜리 따님이라면요? 그 애가 갑자기 집에 와서, 아빠 나 사람을 죽였어, 그렇게 말한다면요? (9장, p87)

광해와 정도의 이런 상반된 태도, 어딘가 익숙하지 않나요? 아마 도덕시간이나 윤리시간에 한 번쯤 들어봤을 ‘인간의 도덕적 행동에서 동기와 결과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에 대한 논쟁이 떠오를 거에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시간 동안 철학자들은 이 질문을 둘러싸고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켜왔습니다. 얼핏보면 이런 논쟁들은 우리의 삶과 무관한, 철학자들만의 이야기처럼 보이죠.

하지만 이 논쟁은 우리의 삶에 매우 밀접하게 닿아있습니다. 이것은 도덕적인 행동 뿐만 아니라 범죄에도 적용해볼 수 있는데요. ‘범죄를 판단하는 기준은 동기인가 결과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볼 수 있겠죠.

<소년이 그랬다>는 이러한 철학적 논쟁을 두 형사의 대화를 통해 풀어내고 있습니다. 작가가 범죄를 바라보는 두 형사의 시선에 대해 어떤 쪽을 더 지지하는 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한 가지 주장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균형있게 다루면서 관객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소년법이 무조건 필요하다, 아니다라는 식의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촉법소년 제도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촉법소년제도로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뭐지?’와 같이 더 깊이 있는 질문을 통해 소년 범죄자를 바라보는 태도를 생각하게 만들어주죠. 이것이 광해와 정도의 대사에 작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심어 둔 이유입니다.


연극만이 만들 수 있는 박진감

만약 여러분이 어느날 갑자기 범죄자가 되었다면 어떨까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긴장감과 불안감에 휩싸일 것입니다. 물론 내 잘못이긴 하지만 억울한 마음이 들 수도 있겠죠. 이 작품에서는 민재와 상식이 느꼈을 이러한 감정들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연극적 장치를 활용합니다.

민재 역을 맡은 배우는 광해를, 상식 역을 맡은 배우는 정도를 동시에 연기한다. 따라서 의상이나 특정 행동을 통해, 인물의 변화를 수시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등장인물 소개, p9)

가장 눈에 띄는 장치는 바로 1인 2역입니다. 연극에서 1인 2역을 한다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한 배우가 하나의 역할만을 맡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방식이지만요. 연출가와 작가는 는 캐릭터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을 때 한 명의 배우가 여러 명의 캐릭터를 연기하도록 배치하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서 2명의 배우는 4명의 인물을 연기합니다. 민재와 상식을 연기하는 배우는 각각 광해와 정도를 연기해야 하죠. 심지어 하나의 장면에서 동시에 두 가지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합니다. 마치 지킬앤하이드처럼요. 배우들은 바람막이점퍼를 입었다 벗었다 하며 청소년 연기와 형사 연기를 왔다갔다 합니다. 배우들의 엄청난 연기력이 돋보이는 부분이죠.

사실 두 가지 인물은 완전히 다른 듯 보이지만 닮은 점도 많습니다. 특히 서로의 관계에 있어 닮은 점이 많은데요. 나이가 차이나는 형-동생 사이임에도 마치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는 점도 닮았지만, 그보다 더 결정적인 공통점이 있습니다. 극 초반에서 정도는 광해에게 딱딱한 관계 대신 친구같은 형-동생 사이로 지내자고 이야기합니다. 이름 대신 자신을 ‘형님’이라 부르라고 하죠. 그런 관계가 부담스러웠던 광해도 처음엔 쭈뼛거리다가 금새 적응하죠.

[광해] 형님.
[정도] (짜증을 내며) 형님은 얼어죽을! 너 앞으로 꼬박꼬박 박 경사님이라고 불러! 왜 이렇게 답답하게 굴어? (9장, p86)

하지만 민재와 상식의 사건을 접한 이후 두 사람은 의견 차이로 인해 번번히 부딪치게 됩니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전혀 순탄하지 않았죠. 그 전까지는 서로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환상의 콤비는 결국 갈라섭니다. 마치 그 날의 사건 이후 서로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은 민재와 상식의 관계 변화같아 보입니다. 작가는 중학생들과 형사들의 다른 듯 닮은 관계를 1인 2역으로 교차시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명확히 보여줍니다. 잔잔한 호수 위에 떨어진 돌이 파도를 일으키듯, 평범한 일상과 관계의 위기 또한 엄청난 무언가가 아니라 돌멩이 하나처럼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말이죠.

민재, 돌을 던진다.
상식, 웅크리고 앉아 키득거린다.
민재를 놀리려 던지지 않은 것이다.
민재, 상식을 노려본다.
순간 음악이 멈춘다.
자동차의 급브레이크 소리.
그리고 자동차가 어딘가에 부딪히는 충격음.
찢어질 듯한 굉음이 무대를 압도한다.
둘, 한동안 말이 없다. (4장, p46)

다양한 음향효과들도 관객들을 더욱 끌어들이는 도구로 활용됩니다. 특히 음향효과와 조명만으로 자동차사고의 순간을 표현해내는 부분이 정말 압권입니다. 자동차 없이도 사고 장면을 이렇게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건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는 연극만의 매력일텐데요. 사고가 나는 장면의 지문을 읽어보며 무대 위에서 얼마나 생생하게 구현될 수 있을지를 상상해봐도 좋겠네요.

공연 당시에 음악은 라이브로 연주되었으며, 전자 기타와 드럼을 활용하여 인물들의 심리와 상황을 전달하려 했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극의 리듬을 살리려 애썼다. 희곡에서도 이와 관련한 지시문이 있으므로, 적극적인 무대 상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음악, p10)

음향효과만큼 작가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음악입니다. 라이브 음악이 곁들어진 연극은 어떤 느낌일까요? 작품 곳곳에 들어갈 만한 음악들을 하나하나 찾아보며 읽어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마치 여러분이 <소년이 그랬다>의 음악감독이 된 것 처럼 말이죠. 아마 음악과 함께 한다면 더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희곡을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거에요.


<소년이 그랬다>가 관객에게 남기는 질문

희곡은 재미와 감동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독자와 관객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문제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 문제에 대한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들을 희곡 속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표현하죠.

<소년이 그랬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작품은 재미와 감동보다 ‘촉법소년’이라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질문을 남기죠. 정도와 광해의 의견 차이를 통해, 그리고 민재와 상식의 관계를 통해, 범죄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과 대사들을 통해. 이렇게 작가는 작품 곳곳에 질문을 숨겨둔 채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그리고 관객이 된 우리는 이 질문에 귀 기울이며, 작가가 남긴 질문에 답을 찾아가며 작품을 볼 수 있겠죠. 그리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더 현명한 독자이자 시민이 되어갑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촉법소년제도에 대한 논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딱 한 쪽으로 결론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어떻게 주장하더라도 명쾌하진 않을 거에요. 오히려 알면 알수록, 답을 알 것 같은 느낌보다는 어떤 게 맞는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수도 있구요. 하지만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소년이 그랬다>를 읽으며 촉법소년제도가 필요한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서 혼란스러워졌다면, 그것만으로도 작가 던진 질문이 충분이 이해한 거니까요.

사회 문제에 대한 답은 언제나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한 답이 맞지 않을 수도 있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그 질문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이미 한 단계씩 성장하고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희곡은 다양한 질문들을 던지며 여러분의 성장을 함께해줄 거에요.



▷ 도서 정보

톰 라이코스, 스테포 난쑤(한현주 각색). (2014). 소년이 그랬다.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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