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 노티지, <스웨트>
※주의※
<스웨트>는 작품의 대사 중 비속어와 욕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원문의 표현을 그대로 활용하기 위해 비속어와 욕설도 함께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크리스]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팔 년 만에 처음으로, 집에 갈 수 있을 거 같았어요. (1막 1장, p27)
코로나19로 인해 경제가 어렵다는 뉴스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얼어붙은 취업시장이 더 안 좋아졌다는 소식도 들리죠.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직장을 잃고 실업자가 된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여행이나 공연처럼 팬데믹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분야에선 더더욱 그랬죠.
이런 대규모 실직 사태가 아주 새로운 일만은 아닙니다. 현대적인 형태의 산업구조가 정착된 20세기 이후, 여러 번의 경제 위기가 있었고 그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밥벌이는 휘청거렸습니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는 물론 우리나라 경제의 큰 분기점이 되었던 1997년 외환위기와 1930년대 대공황에 이르기까지, 경제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거리에 내몰렸죠.
실업은 그 사람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개인의 문제에 정부가 왜 그렇게 많은 돈을 써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실업은 일자리를 잃어버린 한 사람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규모가 커지면 하나의 도시와 나라를 위태롭게 할 만큼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대규모 실직 사태에서 우리가 겪었던 일들처럼 말이죠.
린 노티지의 희곡 <스웨트>는 한 도시의 경제를 지탱했던 공장이 폐쇄되며 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노동자들의 좌절과 분노, 그리고 갈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요.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모습들이 담겨 있죠. 풍요로운 공업도시에서 하루아침에 가난한 도시가 되어버린 그곳의 이야기를 만나볼까요?
[스탠] 그 공장은 내가 들어간 69년 이후로 변한 거 하나도 없어. 전구다마, 볼트와 너트 하나 바뀐 게 없다고. 사실 내 할아버지가 22년에 입사한 뒤로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1막 2장, p49)
<스웨트>는 미국의 공업도시인 레딩(Reading) 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미국 북동부에는 레딩 같은 공업도시들이 밀집해있는데요, 이 지역을 ‘러스트 벨트(Rust Belt)’라고 부릅니다. 거대한 규모의 공장들이 도시 전체의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곳이죠. 이곳에서는 도시 사람들의 대부분이 공장에 근무하고, 노동자들끼리 가족을 형성합니다. 이런 생활방식이 자녀 세대로 이어졌구요. 경제 성장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던 20세기에는 그 어떤 도시보다도 중산층이 많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도시였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신시아와 트레이시, 제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올스테드 공장의 노동자입니다. 신시아의 아들 크리스와 트레이시의 아들 제이슨도 같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공장 근처의 바에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레딩에 사는 노동자들의 핫플인 그 바의 매니저 스탠도 한때는 공장 노동자로 일했었죠.
[트레이시] 그게 그렇게 되는 게 아냐. 어쨌거나. 그리고 노조에 들어가려면 누군가를 알아야 돼. 우리 아버지가 거기서 일했고, 나도 거기에서 일하고 있고, 내 아들도 고기에서 일해. 그렇게 돌아가는 데야. 원래부터 그랬어. (1막 5장, p87)
이들은 안정적인 직장에서 좋은 연봉을 받고 일하는 삶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삶을 물려준 윗세대에게 존경심과 감사한 마음도 가지고 있죠. 자신들의 부모가 그러했듯, 아름다운 노후를 꿈꾸며 자식과 손주들에게도 이런 삶을 물려줄 것이라는 장밋빛 희망을 가지고 있고요.
[신시아] 작업용 앞치마를 안 입어도 되고, 열 시간씩 서있지 않아도 되고, 허리보강벨트를 끌러도 되고 이제 손가락이 굳는 걸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왼쪽 발에 피물집이 잡히는 걸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거지. 게다가 사무실에는 에어콘이 빵빵하게 돌아가니까 땀도 안 흘릴 것이고. 그 개자식들은 에어콘도 있더라고. (1막 5장, p88-89)
그러던 어느 날, 신시아가 중간관리자로 승진을 하게 됩니다. 현장직 노동자로써는 드문 일이었죠. 신시아는 사무실에서 편하게 일하고 월급도 오를 것이란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반면 트레이시는 신시아와의 승진 경쟁에서 밀렸죠. 트레이시는 이것이 정부의 인종 다양성 정책 때문이라며 낙담합니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과 갈등이 이어집니다.
[트레이시] 난 그냥, 어... 니가 그 사람들하고 너무 쿵짝이 잘 맞는 거 같아서 말이지... 그러고,... 며칠 전에 너 라인에 내려왔을 때 내가 너 불렀는데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지.
[신시아] 자기야, 난 바쁜 척해야 돼, 내 일의 반은 그거야.
[트레이시] 그건 나도 인정, 근데 네가 날 무시한 그 방식이 거슬린다는 거지. (1막 6장, p109)
트레이시는 조금씩 변해가는 신시아를 보며 ‘역시 윗대가리는 똑같은 것일까’라는 허탈함에 빠집니다. 관리자가 된 신시아도 결국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상사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거든요. 노동자들을 인간이 아닌 인건비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며, 회사의 사정들을 솔직히 알려주지 않아 답답할 따름이었습니다. 적어도 자신에겐 솔직하게 모든 것을 알려주길 원했거든요.
신시아의 기분도 유쾌하진 않았습니다. 상상했던 것보다 중간관리자에게 주어진 업무가 만만치 않았거든요. 게다가, 트레이시가 자신의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죠. 자신의 진심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줄 알았던 친구들의 변화에 당황스러울 따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렇게 평화로운 삶에 위기가 닥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태풍이 치기 직전의 '폭풍전야'가 가장 맑은 것처럼, 지금의 안정적인 생활이 도시 전체를 휩쓸 혼란의 전조현상이 될 거라는 사실을 말이죠.
[신시아] 그 빌어먹을 나프타 덕에, 이제 그 사람들은 당장 내일 아침에라도 공장 전체를 멕시코로 옮길 수 있게 됐어. 거기 가면 너 같은 여자들이 지금 네가 받는 임금의 일부만 받고도 기꺼이 하루 열 여섯 시간씩 서서 일할 준비가 돼 있어. (2막 2장, p133)
이렇게 풍요로웠던 도시에도 위기가 찾아옵니다.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지금보다 더 적은 월급을 받고 일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임금이 더 낮은 멕시코로 공장을 이전해버리겠다는 것이었죠. 제안의 이름을 한 통보였습니다. 임금 삭감에 동의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출근을 금지당했고,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트레이시와 제이슨, 크리스와 제시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은 좌절하죠.
[브루시] 우리가 방직공장에서 파업 시작할 때도 크게 생각하고 시작한 거거든, 근데 그쪽에서는 우릴 그냥 내쫓아버렸어. 우리의 낙관은 무참하게 무너졌고 우린 다시 돌아가지 못했지. 그리고 거의 이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쪽에서 임시직들 데리고 오지 못하게 해— 싸워. 왜냐면 일단 임시직들이 들어오면, 너넨 끝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1막 7장, p116)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상당 부분 예견되었던 것입니다. 신시아의 남편 브루시도 방직 공장에서의 임금 문제로 인해 오랜 기간 파업 중이었죠. 하지만 꼼짝하지 않는 회사의 태도에 2년이 넘도록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신시아] 나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얘기해주고 있을 뿐이야. 지금 같아선 나도 이런 좆 같은 일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내가 지금 관둬버리면, 너희한테는 아무도 없어. 나도 별로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너네 편이야.
[트레이시] 그러면 그런 것처럼 행동을 해. 넌 그 사람들이 내놓는 것하고 하나도 다르지 않은 말도 안 되는 변명만 늘어놓고 있어. 우린 친구잖아!
[신시아] ...자기야,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있어. 난 네가 나한테 이 이상 뭘 바라고 있는지 모르겠다?
[트레이시] 우릴 위해서 싸워! (2막 2장, p136-137)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 중간관리자인 신시아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신시아는 그저 상사들의 방패막이일 뿐이었죠. 이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은 쏙 빠진 채 아무런 권한도 없는 신시아가 모든 비난과 죄책감을 감수해야 했거든요. 신시아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해고 통보를 해야 하는 가슴 아픈 상황에 놓입니다. 트레이시는 그런 신시아에게 자신들과 함께 노동자의 편에서 파업에 참여할 것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신시아는 그럴 수 없었죠. 흑인 여성이라는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이뤄낸 승진을 포기할 순 없었거든요.
[트레이시] 나는 싸워보지도 않고 물러서지는 않을 거야. 그 개자식들한테 가서 그렇게 말해. 내가 그놈의 공장을 불질러버리고 나서 죽어버릴 거라고. (2막 2장, p137)
트레이시와 제이슨을 포함한 다른 노동자들은 회사의 이런 조치에 대해 대응하기로 합니다. 파업이라는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친 회사를 상대로 승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회사는 오히려 더 낮은 임금의 임시직 노동자를 채용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실업 기간은 점점 길어지며 생활은 점점 더 피폐해졌습니다.
[스탠] 어쩌면 지금이 움직여야 할 때야. 이 동넨 이제 예전 같지 않아.
[제이슨] 가면 어디로 가요?
[스탠] 아무 데든. 어떨 땐, 우물이 마르면 보따리를 싸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어버리고 사는 거 같아. 우리 조상들은 알았는데.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에 잡혀서 살게 돼. (...) 난 네 아버지를 알아. 아주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한창 젊을 때 공장이 잡아먹었어. (2막 6장, p176)
‘러스트 벨트’에서 ‘러스트’는 ‘녹이 슬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때 미국 경제를 일으켰지만 지금은 도시 전체가 녹슬어 버린 거죠. 이렇게 사람들은 회사로부터 버려졌고, 도시는 활기를 일으며 점차 무너져 갑니다. 물이 모두 말라버린 우물처럼 그곳에선 더 이상 새로운 희망을 찾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버려진 공장 부품 같은 신세가 된 노동자들의 상처만이 남았을 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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