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 노티지, <스웨트>
>>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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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트>는 2000년과 2008년을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2000년이 부모 세대인 신시아와 트레이시의 이야기라면, 2008년은 자녀 세대인 크리스와 제이슨의 이야기에 주목하죠. 이를 통해 작가는 잘나가던 시기의 영광이 대대로 이어졌듯, 쇠락 이후의 궁핍함도 대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레딩은 과거의 좋았던 시절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극빈층의 비율이 40%가 넘는 가난한 도시가 되어버렸거든요.
[신시아] 크리스, 난 아직도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였니? (2막 1장, p128)
2000년에는 절친이었던 제이슨과 크리스가, 2008년에는 서로를 미워하는 관계로만 보입니다. 8년 사이에 감옥에도 갔다왔죠. 너무도 다른 두 가지 모습 사이에서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스웨트>의 이야기는 이들의 삶이 뒤바뀐 그 날의 이야기를 향해 나아가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노동자들의 파업이 계속되자 공장에서는 더 저렴한 임금의 임시직 노동자를 고용합니다. 기존의 노동자들은 피켓라인을 넘어 임시직들을 향해 욕설과 비난을 퍼부으며 출근을 저지하지만, 돈을 벌어야 했던 임시직 노동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남미 출신 사람들이었거든요.
[오스카] 전 그냥 돈을 벌겠다는 거예요, 그게 다예요. (...) 우리 아버지는 올스테드 같은 공장 청소부였어요— 거기 씹쌔끼들은 아버지가 노조에 가입하지도 못하게 했어요. (...) 사람들은 매일 여기 와서 나를 보지도 않고 지나치죠. 아무도 “안녕, 오스카”라고 말하지 않아요. 그 사람들이 날 보지 않는데 나라고 그 사람들을 봐줘야 할 이유가 뭐가 있어요. (2막 5장, p168-169)
바에서 일하는 오스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백인 중심의 노동자 사회에서 남미 콜롬비아 이민자인 아버지와 그의 자식인 오스카가 번듯한 공장에 취직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이런 오스카에게 파업은 그토록 선망하던 공장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스탠] 조심해.
[오스카] 왜요?
[스탠] 왜요?! 지금 다들 격앙된 상태야. 그게 왜야.
[오스카] 아 그거요. 근데, 시간당 십일 달러를 주거든요.
[스탠] 알어. 네 입장에서는 혹하겠지만, 그 십일 달러는 결국 여기 노조원들 주머니에서 나오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 사람들이 그걸 좋아할 리가 없지.
[오스카] 글쎄요, 저도 그건 유감이에요. 하지만 그게 내 문제는 아니잖아요. 지난 이 년 동안 그 회사에 들어가려고 꽤나 애썼어요. 근데 매번 사람들한테 물어볼 때마다 다들 날 밀쳐내기만 했어요. 그래서 지금 전 얼마든지 유연해질 준비가 돼 있어요. 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지만. (2막 5장, p164)
스탠은 오스카를 설득합니다. 결국엔 회사 좋은 일만 시키는 거라고 말이죠. 하지만 노동자들에게 무시당해왔던 오스카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정규직보단 적어도 자신이 지금 받는 월급보다 훨씬 많이 받았으니까요. 마침내 매일 공장에 나가게 된 오스카는 바를 그만둡니다. 그리고 그만두는 그 날, 일이 터졌죠.
[제이슨] 그렇게 못하겠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얠 여기서 걸어나가게 놔 둘 수가 없어. [스탠] 못하긴 왜 못해! 나가게 놔 둬도 너 못났다 그럴 사람 하나도 없어.
[오스카] 비켜!
[제이슨] 못하겠다면?
둘이 마주 노려본다. 제이슨이 오스카를 밀친다. (2막 6장, p189-190)
그 날 바에 있던 트레이시와 제이슨은 오스카에게 계속해서 시비를 겁니다.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아갔다며 인종차별적이고 모욕적인 말들을 쏟아내죠. 오스카는 무시하려고 노력하고, 스탠은 그런 두 사람을 말립니다.
하지만 일자리를 잃은 두 사람은 폭주 기관차 같았습니다. 참고 참던 오스카도 폭발하며 결국은 싸움이 붙죠. 싸움을 막으려던 크리스도 싸움에 휘말리고, 스탠도 이들을 말리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리고 이들의 싸움은 생각지도 못한 결말을 마주하죠. 공장 폐쇄만큼이나 이들의 삶을 산산히 깨뜨린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은 희곡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 작품을 쓴 작가 린 노티지(Lynn Nottage)는 최근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극작가 중 한 명입니다. ‘퓰리처상’에서 희곡부문으로 2번이나 수상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이 상은 영어로 쓰인 문학작품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주 권위있는 상입니다. 퓰리처상을 2번 이상 받은 유일한 여성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스웨트>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취약한 위치에 놓인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여성, 흑인, 이주민, 노동자의 이야기를 말이죠.
먼저,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이 대부분 여성입니다. 보통 여성 인물은 주연이라 하더라도 남자 주인공을 뒷받침하는 역할로 많이 등장하죠. 하지만 <스웨트>의 세 친구는 모두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오히려 남편인 브루시나 아들인 크리스와 제이슨이 이들의 이야기를 보충해주죠. 세 명의 주인공이 모두 육체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공장 노동자는 남자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던지고, 지금까지 소외되었던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신시아] 화를 내고 싶으면 화를 내, 하지만 이거 떄문에 그러진 마. (자기 손등을 가리킨다.) 나 좀 봐봐, 트레이시. 피부색 가지고 따지는 쪽으로 가지는 말아줘. 그러기에는 우리 둘 사이에 쌓인 게 너무 많잖아. (1막 6장, p108)
이 작품에서는 인종 문제를 조금은 독특한 방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신시아, 브루시, 크리스 이렇게 세 명의 흑인 캐릭터가 있지만, 흑인이라는 사실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갈등이 발생하는 순간 인종 문제가 전면에 드러납니다. 이를테면 관리자로 승진한 신시아에게 인종차별적 험담을 하는 트레이시나, 2008년의 제이슨의 인종차별 문신처럼요.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인종의 차이도 갈등이 생기는 순간 차별이 되어 칼날처럼 돌아오는 거죠. 이런 모습을 통해 작가는 평소에 서로 다른 인종에 우호적인 사람들도 위기가 닥치면 언제든 차별적 시선에 휩싸일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합니다.
이 인물들은 모두 펜실베이니아 주 벅스 카운티 태생이다. (등장인물, p7)
이주민 문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스웨트>의 인물들의 윗세대는 아프리카나 독일,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하지만 본인들은 모두 미국에서 태어났기에 미국 법에 따라 미국인으로 성장했죠. 하지만 남미 출신 아버지를 둔 오스카는 아무도 ‘미국인’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미국인이지만 여전히 부모의 출신 국가를 이유로 차별 받습니다. 이러한 차별은 미국 사회에서는 주요하게 떠오르는 사회문제이기도 합니다. <스웨트> 속 그 날의 사건의 원인이 된 것처럼요.
[스탠] 그렇다면 좋아, 하지만 넌 진짜 적을 만들게 될 거야. 네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오스카] 어차피 그 사람들은 내 친구가 아녜요. 그 사람들은 날 찾은 적도 도와준 적도 없어요.
[스탠] 좋아.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해두는데, 지금 상황은 정말 심각하게 엉망진창이야. 두고 봐라, 여섯 달 뒤면 저놈들은 너처럼 피켓 라인을 기꺼이 넘어설 애들 한 그룹을 또 데리고 올 거야.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는지 알아? 걔들한테는 시간당 십 달러를 줄 거야. 두고 보라고. 그때가 되면 너도 자리를 잃고, 너랑 같이 싸워줄 사람을 찾게 될 거야.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해주지 않을 거야. (2막 5장, p165)
또한, 극단적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에서 노동자는 약자에 위치에 놓입니다. 자본가에게 월급을 받는 입장이다보니 많은 경우 노동자는 ‘을’이 됩니다. 기업이 임금을 낮춘다고 했을 때, 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이거나 회사를 그만두는 것뿐이죠.
파업을 한다면 어떨까요? 결국 오스카처럼 그보다 더 낮은 임금으로 일할 임시직 노동자가 고용되며 사실상 실업 상태가 되버립니다. 그리고 여기서 임시직과 정규직의 분열이 생기고, 이 분열을 통해 회사는 월급이라는 비용을 절약합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노동자들은 점차 일자리를 잃어가고 월급을 줄인 기업의 이윤은 커지죠.
작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와 기업의 이런 불평등한 관계를 지적합니다. 물론 ‘그 날의 사건’은 인물들 간의 갈등이었지만 그 원인을 제공한 건 기업과 신자유주의라고 이야기하죠. 하지만 그들은 어떤 피해도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비용을 절약했죠. 어쩌면 이 이야기의 진짜 비극은 노동자들의 삶이 처절하게 부서지도록 원인을 제공한 기업은 아무렇지 않다는 것이 아닐까요?
<스웨트>에서는 모든 장면이 시작할 때마다, 그 날의 뉴스를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줄거리와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이 뉴스를 통해 작가는 문제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를 간접적으로 이야기하죠. 작품 속에서는 정규직과 임시직의 갈등처럼 보이지만 그것의 진짜 원인은 그 자리에 없는 권력자와 기업가들에게 있다는 것을 암시하죠. 이들의 실업은 주인공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요. 만약 정부가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폈더라면, 기업이 노동자를 비용이 아니라 사람의 문제로 바라봤더라면 이야기가 조금은 달라졌을지 모르죠.
현대 사회의 많은 문제들은 구조적 차원에서 생겨납니다. 하지만 이런 진짜 원인은 외면한 채 주변에 있는 약자들에게 분노와 혐오의 시선을 보내는 건 그저 피해자들끼리의 싸움일 뿐입니다. 그 사이 오히려 진짜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은 맘편히 피해자들의 싸움을 방관하죠.
연대와 협력이 필요한 이유도 이것 때문입니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분열은 문제의 본질로부터 우리의 시야를 가릴 뿐입니다. <스웨트> 같은 비극이 우리에게도 일어나지 않으려면, 모두가 힘을 합쳐 문제의 ‘진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너무 어렵고 힘든 과정일지라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