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비구름을 몇 번이나 거치고 난 뒤에야 싸늘한 밤이 찾아왔다. 웃옷 없이는 어깨가 시려오는 어둠이 둘 사이를 가득 메웠다. 성긴 스트랩의 샌들 사이로 비죽 튀어나온 발가락이 시린 듯 아려왔다. 양 다리를 맞붙이고 손으로 종아리를 연신 쓸어내렸다.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았다가 누웠다가 서로 눈을 바라보다가 멀리 한강을 보다가 하늘의 별을 보다가 네가 말했다.
농담처럼 꺼냈던 말과 사뭇 진지한 눈매로 네가 꺼낸 말은 같지만 달랐다. 나는 겁이 많고 두려워 먼저 이야기하지 못하고 생각만 했다. 미래를 약속한다는 건 나와 너무 다른 이야기였다.
가끔 엉엉 울어버리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조금 아니 꽤 당황하지 않을까. 찔러서 피 한방울도 안 나올 것 처럼 살면서는 제 일도 아닌 것에 슬퍼서 엉엉 운다고 놀라지 않을까. 그냥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매일 살아남을것이고, 매일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끝내는 매일 마주보고 잠에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