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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비 Jul 04. 2020

얼어붙은 바다 위에서

부동항이 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어붙은 바다를 실제로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일단 바다가 얼어붙었다는 것 부터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도착한 서해는 시간이 멈춘 듯, 움직임 없는 파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어붙은 눈처럼 버석거리는 파도를 밟고 바다를 걸었다. 내가 걸었던 것이 바다인지, 물이 빠진 뻘에 얼음만 있던 것인지는 모른다. 사소한 진실은 종종 더 중요한 것으로 가려진다. 이 또한 그랬다.



영하 14도의 날씨에 맨 손을 맞잡고 바다를 걸었다. 그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 시간이 이 때 만큼은 잠시 멈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시간은 멈출 리 없었음에도 어쩌면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시간의 흐름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너는 어느새 내 손을 놓고 저 멀리 걸었다. 파도 위에 서서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너를 순간의 빛으로 담았다. 잿빛 바다 위에서 너는 혼자였다.



네 손을 잡고 싶어서 파도에 올랐다. 단단할 수 없는 곳에 발을 디디고 네 손을 잡았다. 금방이라도 훅 꺼질 것 같은 불안함만큼 손을 세게 쥐었다.


작고 알찬 손을 맞잡고 파도 위에서 너를 보고 있었다.



얼어붙은 파도에서 내려온다 해도 블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두 발이 땅에 단단히 븥어있던 시간보다 재멋대로 떠다닌 순간들이 더 길 것이었다. 너는 그리고 나도 어느 한 구석도 멀쩡한 곳이 없는 천둥벌거숭이인 채로 눈을 마주쳤다.



내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한다해도


내가 나를 사랑하듯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믿음과 사랑은 별개의 문제다. 어쩌면 믿음보다 더 큰 것이 사랑일지도 모른다. 네가 쌓아놓은 단어의 산에서 진실은 멸종된지 오래라 할지라도, 나는 기꺼이 그 산을 오를 것이다. 이것이 너를 더욱 슬프게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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