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것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태한 톱니바퀴 되기

by 별비

요즘은 어딜 가나 소비가 미덕처럼 여겨진다. 몇 천 만원 짜리 하울 영상의 조회수가 천장 없이 치솟고,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을 표방하는 온갖 매체에서는 새롭고 더 예쁜 하지만 가격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상품을 매일같이 소개한다. 견물생심이라고,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는 상품을 여러 번 보는 것 만으로도 갖고싶다는 욕망이 생겨난다. 옛 말 틀린 거 하나 없다. 자꾸 보면 예뻐보이고, 그러면 갖고싶어진다. 그렇게 결제를 하고, 택배 상자를 받아 즐겁게 언박싱을 하고 방 구석에 처박힌 것들이 누구나 집에 하나쯤은 있다. 필요해서 산 것 보다 필요는 없지만 갖고싶어서 산 것 들이 내 집을 채우고 있다.




얼마 전 까지 온갖 브랜드에서 줄지어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을 열었다. 휴대폰을 옆에 끼고 사는 현대인에게는 피할 수 없는 이벤트였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나는 곧 이사를 앞두고 있는데, 괜히 이것저것 보다 보니 소파도 새 것으로 바꾸고 싶고, 식탁도, 의자도, 책상도, 서랍장도, 에어프라이어도, 청소기도, 옷장도 그랬다. 옆 사람을 붙잡고 이 소파 어때? 이쁘지? 가격도 괜찮고 이사 갈 집에도 알맞게 들어갈 것 같아. 색깔은 이게 좋을 것 같다. 지금 있는 건 당근하면 되겠지? 나중에 또 이사 갈 걸 생각하면 모듈형 소파가 좋겠더라며 한참 새 소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렇게 곧 당근을 해버릴 것 만 같았던 소파에 앉아 새 소파를 찾기 위해 SNS를 뒤지던 중에, 멀쩡한 걸 버리고 왜 새 걸 사려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아직도 소파의 스프링은 이렇게 튼튼한데, 쿠션도 멀쩡하고, 때 탄 곳도 없고, 어디 망가진 곳도 없고, 옆 면에 작은 얼룩이 있지만 그게 새 소파를 사야 할 문제인가? 소파는 편히 앉을 수 있으면 그걸로 제 역할은 다 한 셈 아닌가. 그저 소파가 저렴하고, 모양새가 질렸고, 새 집에는 새 소파가 좋을 것 같다는 이유로 버리기에는 너무나 멀쩡했다.

결국 온갖 살림을 새로 사겠다는 생각은 버렸고, 먼지통에서 머리카락이 삐져나오는 청소기 정도는 새로 사도 될 것 같다고 결정했다.




불현듯 나를 찾아오는 소비욕에 대해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라고 물었을때 그렇다 고 대답할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사야 하는 이유를 되물었을 때 그냥 갖고 싶으니까 가 아닌 답을 하는 경우도 그리 많지 않다.

소비를 합리화하는 말들은 수도없이 쏟아져 나오지만, 소비를 절제하는 말은 지루하고 식상하다. 재미가 없으면 죄가 되는 시대에, 매 분 매 초마다 새로운 콘텐츠가 쏟아져나오는 세상에서 내가 주목받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것을 내보여야 한다. 그리고 타인의 이목을 끌기에 가장 쉬운 것이 내가 소유한 것들을 늘어놓고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남들이 사고싶어하는 걸 내가 샀다고 보여주기. 부끄러운 소비는 이런 것이다.




얼마 전에는 겨울 신발을 한 켤레 구매했다. 크기가 좀 크지만 수 년간 잘 신었던 닥터마틴 단화와 산지 한 십 년은 된 낮은 굽 부츠는 이제 버릴 계획이다. 발이 시려워서 겨울에는 신기 어렵기도 하고, 눈이 오는 날에는 신지 못하기도 하고, 신발장에 처박아 둔 채로 신지 않은 게 몇 년이 지났다. 로퍼는 여러 켤레 샀어도 겨울 신발을 산 건 꽤 오랜만이었다. 방한이 되는 신발을 찾던 와중에 제법 워커처럼 보이는 운동화를 발견했고, 찾아놓고서도 일 주일 정도는 고민을 계속했다. 이걸 사면 내가 얼마나 자주 신을 수 있을까? 매일같이 신지는 않아도 큰 고민 없이 아무 옷에나 잘 어울릴 수 있을지, 혹여 애물단지가 되지는 않을지.

그리고 장고 끝에 구매한 신발은 크기도 딱 맞고 내가 가진 겨울 옷들과 무난하게 잘 어울려 아주 만족스럽게 신고 있다. 구매하는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신발을 보면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어 돈이 아깝지 않다. 부끄럽지 않은 소비는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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