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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비 Dec 17. 2015

후회, 그리고 또 후회

페이스북을 헤엄치다 K의 어머니를 만났다. 익숙한 이름 세 글자와 K가 찍은, 아주 행복해보이는 가족사진. 너무도 예상치 못했던 터라 심장이 덜컹 할 줄 알았는데 그냥 헉, 하고 말았다. 이제 괜찮아졌나 하고 생각했다. 


종종 기억을 헤집어 K의 얼굴을 그려본다. 동시에 내가 했던 못된 짓들을 생각한다. 나는 다시 너를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너 같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후회의 끝은 자기혐오였다.




너처럼 좋은 사람이 다시는 없을거라는 걸 몰랐던 내 잘못,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몰랐던 내 잘못.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뻐근했다. 이렇게 무감각해진 상태로 평생 가면 어쩌지, 이제는 사랑을 못 하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만 하다 시간을 버리는게 아닐까. 잔뜩 겁먹어 움추러든 마음이 엉킨 생각만 내뱉었다. 


매끈한 피부에 오똑한 코, 큰 눈에 선명한 쌍커풀. 두꺼운 안경이 주는 똑똑해보이는 이미지와 렌즈를 꼈을 때 오는 낯선 아름다움과 설렘. 너는 모든것이 완벽했고 아마 지금도 그럴 것이다.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고 그래서 너도 완벽해 보이는 거라고, P가 그랬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K는 완벽했다. 똑똑했고, 잘생겼고, 자기관리도 확실했으며 상냥하고 젠더감수성도 뛰어났다. 웃는 모습도 예뻣고 열정을 쏟는 취미도 있었다. 누군들 널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너는 이미 오래 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났는지도 모른다.


네게 입맞췄던 그 느낌도, 네 입술의 그 느낌도 모두 잊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너를 잊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니 잊는게 아니라 네게서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너는 진작에 내게서 멀리 떠났음을 이제 깨닫는다. 


혼자서도 잘 살고 있는 거 아니냐고 P가 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두 가지. 그 중에 하나는 거짓, 하나는 진실. 이제 나는 진실을 말한다. 아냐, 나는, 잘 살고 있지 않아. 그래보여도 그렇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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