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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비 Dec 17. 2015

세 자리의 미소

고백컨대 이십 사 년 살면서 몸무게 세 자리인 사람은 그날 처음 봤다. 키가 워낙 커서 뚱뚱하다고 생각되진 않았기에 몸무게가 세 자리라고 말했을 때 정말 놀랐다. 세 자리라고? 내 머릿 속 몸무게 세 자리는 그보다 더... 과장된 체형이었다. 아마 절반은 근육이겠지, 남자는 근육량이 많으니까 하며 그간 협소했던 내 사고를 부끄러워했다.



낮은 목소리에 상냥한 어투, 아니 무엇보다 그 사람 푸근하게 웃는 모습이 좋았다. 웃는 모습이 이상한 사람은 없다고 쉽게 말하지만, 단언컨대 나는 웃는 모습이 썩 예쁘지 않다. 하지만 그 남자는 예쁘게 웃었고, 자주 웃었고, 날 보고 웃었다. 



그러다 코 꿰였지 뭐.




어릴 적 나는 참 무례했다. 뭐든 내멋대로 해야 했고 충동적인 욕구에 쉽게 응해 수시로 마음을 바꿨다. 이십 년 넘게 살았어도 사는게 서툴었다. 서른이 되면 좀 나아질까, 아니 나는 서른이 되어서도 사는게 서툴 것 같았다. 사실 변명이다. 과거의 못된 짓을 어떻게든 예쁘게 포장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쁜 짓은 나쁜 짓이다. 나는 나빴다. 그저 내 마음이 변했다고 겨울바람처럼 갑자기 방향을 바꿔 불어버리면 안 되는 것이었다. 서로 배타적 인간관계에 돌입했다면, 그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애초에 의지가 없었다. 사람을 너무 쉽게, 그리고 가볍게 알았다. 봄바람에 섞인 꽃가루처럼 잠깐 지나면 괜찮아 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다.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햇볕을 쬐다가,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그 미소가 떠올랐다. 얼굴을 기분좋게 간지르던 햇빛이 목덜미를 따갑게 찔러대기 시작했다.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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