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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비 Nov 28. 2015

칫솔


늦은 밤 우리는 마트에 들러 생필품을 사고 네가 이사한 지 얼마 안되는 원룸에 함께 들어갔다. 이사 후 첫 손님이었던 나는 네 집엘 간다는 것만 으로도 마냥 좋았다. 나는 어렸고, 선물을 사가야 한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네 냄새로 가득했던 그곳은 아늑했다. 닫힌 창문 너머로 발자국 소리와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근대는 말소리가 넘실대었다.


 내가 그곳에 남기고 온 건 칫솔 한 개와 수많은 머리카락들. 한순간에 사라지는 말소리와 내뱉은 숨 한자락. 같은 이불을 덮고 따끈한 바닥에서 살을 맞대고 잤던 기억, 네게 주었던 온기.


 그 후로도 종종 갔던 너의 원룸에는 점점 살림살이가 들어앉았다. 모든것이 전부 하나밖에 없었지만 칫솔만큼은 두개였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너는

 내 한숨이 흩어진 원룸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고 나 또한 네가 아닌 다른 이에게 온기를 주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많은 것들이 변했다. 다만 네게서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여전히 칫솔이 두개라는 점이었고

 내 것이었던 칫솔이 욕실 청소용으로 전락했다는 것은 내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정말 묘한 감정. 기분이 나쁜것은 아니었다. 제 용도를 잃은 물건이 다른 용도를 찾는 건 물건에겐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이상하다고밖에는 할 수 없는 감정이 자꾸만 마음 속으로 기어들어왔다. 이제 더 이상 너에게 내가 갈 자리는 없다는 생각과 함께

 한껏 몸을 옹송그리면서 지었던 너의 매혹적인 표정과, 한껏 바쁜 와중에 건네던 말들이 곧 망각의 서랍 속으로 깊이 들어 앉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는 네게 좋은 추억일까. 우리는 아직 잘 연락하고 재미나게 농담을 따먹으며 가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예전의 일들은 전혀 거론하지 않고 시시껄렁한 유머나 신변잡기의 이야기만을 한다. 너는 나에게 몇 되지 않는 좋은 추억 중 하나로 남아있는데 나도 네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길 바라는 것은 과욕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 많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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