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세를 대체할 가장 현실적인 기본소득 징수 모델
얼마 전 피지컬 AI의 상용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흥미로운 계산 하나가 튀어나왔다.
휴머노이드 로봇을 공장에 투입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녀석이 인간의 8시간 노동량을 대체하는 데 소모하는 전기요금은 과연 얼마일까? 혹시 모를 반론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전력의 산업용 요금 중 가장 비싼 피크 타임(최대부하) 단가를 적용해 보았다.
놀랍게도 '약 600원'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파업도 안 하고 하루 종일 일하는 노동자의 하루 식대가 편의점 생수 한 병 값도 안 되는 셈이다. 24시간 3교대로 풀가동해도 하루 1,800원에 불과하다.
(계산 근거: 테슬라 AI 데이에서 공식 발표된 휴머노이드 배터리 팩 용량은 약 2.4kWh다. 이를 한국전력의 산업용 전력 단가 중 가장 비싼 요금대인 kWh당 약 250원으로 넉넉히 곱해도 600원이 산출된다.)
만약 전국 산업 현장에 이 로봇 10만 대가 깔린다고 가정해도 전체 전기료는 1년 내내 돌려봐야 650억 원 남짓이다. 수십만 명의 인간 노동자를 대체하며 창출될 막대한 부가가치에 비하면, 국가 단위에서 징수하는 청구서치고는 지나치게 초라하다.
물론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향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백만 대의 산업용 자동화 로봇 전체가 이 전용 과세망에 편입된다면, 그 재원의 규모는 국가 단위의 기본소득을 논할 수 있을 만큼 폭발적으로 팽창할 것이다.
지금 전 세계의 학자와 정치인들은 다가올 AI 시대의 대량 실업을 걱정하며 '로봇세'를 거둬 기본소득을 주자고 논의한다. 하지만 이들은 치명적인 함정에 빠져 있다. 과세의 기준이 되는 '무엇을 로봇으로 볼 것인가?'를 도저히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컨베이어 벨트에 달린 로봇팔도 로봇인가? 휴머노이드 로봇만 로봇인가? 기준이 모호한 세금은 기업의 조세 회피와 엄청난 행정적 낭비만을 낳을 뿐, 현실에서 작동하기 어렵다.
해법(解)은 엉뚱한 곳에 있다. 복잡한 세법을 뜯어고치고 국세청 직원이 세무조사를 나갈 필요가 전혀 없다.
로봇이 밥 대신 먹는 것, '전기'
기계는 밥을 먹지 않는다. 전기를 먹는다. 현대차나 삼성의 공장에 사람 대신 피지컬 AI가 수천 대 깔린다면, 이들을 움직이는 핵심 혈관은 결국 전력망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이 송배전망을 완벽하게 독점하고 있는 기업은 오직 한국전력뿐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와도 한국에서 전기를 쓰려면 한전의 망을 타야 한다.
망상 같은 해법을 하나 던져보겠다. 새로운 세금을 만들 필요 없이, 그저 한전의 약관 하나만 고치면 된다. 이미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탄소 배출권(Scope 2) 정산과 ESG 공시를 위해 공정별 전력 사용량을 정밀하게 추적하는 시스템을 상당 수준 구현해 두고 있다.
이 인프라에 스마트 미터기(AMI)와 공장 에너지 관리 시스템(FEMS)의 데이터를 교차하면, '무인화/로봇 전용 공정'에서 소비되는 전력만 핀셋처럼 분리해 내는 것은 기술적으로 전혀 무리가 아니다. 그리고 이 전력에만 지금의 2배, 5배, 10배에 달하는 대폭 상향된 '노동 대체 프리미엄 요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국세청이 나설 필요도 없이, 한전이라는 거대한 독점 플랫폼이 매달 기업으로부터 막대한 '로봇 전기료'를 징수하게 된다. 정부는 이 초과 수익을 국가 전력망 업그레이드와 국민들을 위한 기본소득 재원으로 분배하면 끝난다.
'비정상의 정상화'와 낡은 교과서의 붕괴
이런 주장을 하면 낡은 경제학 교과서를 외운 사람들은 조건반사적으로 반발할 것이다. "산업용 전기를 급격하게 올리면 공장 가동 원가가 폭등해서 결국 물가가 오르지 않느냐!"
하지만 묻고 싶다. 인간의 지능을 복제하고, 완벽하게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해 가는 로봇에게, 과거 수동적인 쇳덩어리 기계들에게 물리던 낡은 산업용 요금표를 그대로 들이미는 것 자체가 새로운 시대의 '비정상' 아닌가? 로봇 전용 요금을 신설해 10배를 물리는 것은 기업을 옥죄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버그를 바로잡는 '비정상의 정상화'일 뿐이다.
물론 경제학자들은 로봇의 초기 도입 자본(CAPEX), 감가상각비,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비용 등을 근거로 총원가가 당장 극적으로 낮아지진 않을 것이라 반론할 수 있다. 하지만 매년 복리로 상승하며 파업과 휴가, 각종 노무 리스크를 동반하는 거대한 '인건비'가 영구히 소멸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연봉 1억 원을 받던 인간 노동자가 빠진 자리에 로봇이 들어간다. 로봇용 전기료를 10배로 올려 고지서가 날아온다 한들,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총생산 원가는 구조적으로 강력한 하방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기업은 무거운 전기료를 내고도 이전보다 높은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제품 가격을 인하할 여력마저 생긴다. 즉, 전기료가 폭등해도 물가는 오히려 하락 안정화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완벽한 파이프라인
로봇의 노동으로 기업은 초과 이익을 얻고, 국가는 '로봇 전기료'라는 명목으로 막대한 부를 징수하며, 사람들은 그 재원을 기본소득으로 배당받아 소비 생활을 영위한다. 조세 저항은 최소화되고 행정 비용은 0에 수렴하는, 그야말로 시스템의 버그를 역이용한 완벽한 해킹이다.
로봇에게 세금을 매길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먹는 전기에 매길 것인가. 어쩌면 가장 복잡한 미래의 난제에 대한 답은, 우리가 가장 당연하게 여겨온 오래된 인프라 안에 숨어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