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예술가들의 공동묘지'가 된 대한민국
최근 한 거대 주거 단지 앞을 지나다, 시선을 끄는 백색 조형물 하나를 마주했다. 압도적인 크기였지만 무엇을 말하려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무런 맥락 없이 던져진 이 기묘한 덩어리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왜 빌딩 앞에는 항상 조형물이 있을까?]
우리가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이 조형물들은 건축주의 자발적인 예술 사랑 덕분이 아니다. 이른바 ‘1% 법(건축물 미술작품 설치 제도)’이라 불리는 법적 의무 때문이다. 연면적 1만㎡ 이상의 건물을 지을 때 공사비의 약 1%를 미술작품 설치에 쓰도록 강제한 이 제도는, 2024년 기준 대한민국에 약 1,400억 원 규모의 거대한 예술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막대한 자금의 93% 이상이 오직 ‘조각’이라는 단일 장르에만 기형적으로 쏠려 있다는 점이다.
강산이 변해도 박제된 도시의 미학
하지만 이 거액의 '의무'가 만들어내는 낯익은 기시감은 도처에 널려 있다. 도심의 오피스 앞에는 2010년대 초반에 세워진 '롱다리 아저씨'가 서 있고, 2020년대 중반에 준공된 부도심의 주상복합 앞에도 여전히 비슷한 조형물이 우리를 반긴다.
강산이 한 번 바뀌고도 남을 시간 동안 반도체 공정은 나노 단위로 진화했지만, 미술 조형물들의 시계는 철저히 멈춰있다. 이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상상력을 검열하고 자본을 낭비하게 만드는 낡은 시스템의 버그다.
진화한 제도, 그러나 정체된 결과물
물론 제도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과거의 밀어주기 관행을 막기 위해 작가를 가리고 뽑는 '블라인드 심의'가 도입되었고, 직접 설치 대신 돈으로 내는 '기금 출연제'도 생겼다. 겉으로 보기엔 공정해졌고 세련되게 보완된 듯하다. 하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본질은 여전히 서늘하다.
행정적 심의 통과에 특화된 대행업체들이 성행하면서, '가장 안전하고 무색무취한' 작품들만 선택되는 역설이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매년 수백억, 수천억 원씩 쏟아지는 자금은 그렇게 예술적 영감이 아닌, 사용 승인을 위해 입주민이 지불하는 일종의 '행정 통행세'로 소진된다.
망상적 해법: 9,058억 원의 자본을 '해킹'하라
왜 우리는 지난 10년간 누적된 9,058억 원이라는 이 엄청난 재원을 빌딩 구석진 공개공지에 '파편화'하여 버리고 있었는가? 이미 국제 무대에서 혁신적인 실험을 이어가는 훌륭한 국내 작가들이 셀 수 없이 많다. 문제는 인재의 부재가 아니라, 그 역량을 국가적·도시적 전략으로 묶어내지 못하는 구조다.
만약 이 예산을 지구 단위로 묶어 '글로벌 예술 펀드'로 운영한다면 어떨까? 특정 구역의 예산을 합쳐 제프 쿤스의 신작을 유치하거나 실력 있는 신진 작가들의 설치 미술을 거리 한복판에 세운다면, 대한민국은 굳이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이나 뉴욕의 모마(MoMA)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지구상에서 가장 핫한 야외 미술관'으로 거듭날 것이다.
비정상의 정상화, 예술의 해방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공사장 앞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분자구조'와 같은 조형물들이 트럭에 실려 오고 있다. 조각난 1%의 예산이 기득권의 연금이 아닌, 시민의 일상에 영감을 주는 진짜 인프라로 전환될 때 도시의 품격은 시작된다.
가장 복잡해 보이는 도시 미학의 난제 역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낡은 관행 하나를 해킹하는 데서 그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예술은 구석진 자리에 설치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가치 위에 설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