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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서아인 Feb 24. 2021

삶이 미지 #1







내가 보는 이 모든 이미지가 나야.


손가락 끝까지만 느껴지는 이 감각이 나를 이 몸의 형태 안에 제한시키고 있지만,


촉각이라는 감각뿐만 아니라, 시각으로서 인지하는 이미지조차 나야.



들리는 소리, 맛보는 모든 것들이 그냥 다 나라고 해.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나를 알고 있어.


내가 나라고 인지하는 그 범위를 말이지.


그런데 이제부터, 그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되는지 생각해볼까.



그림 속 그녀가 바라보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 그것을 담고 있는 실내의 풍경,


캔버스 가득 채워진 형태와 색채들을, 


나는 내게 저장된 정보들로 그것들의 테두리를 정하고 세상을 분리시켜내.



테이블 위에서 커피 컵을 분리시키고, 거울과 바닥을 분리시키고,


거울 속 그녀의 모습과 그녀 스스로를 분리시켜.






점점이 찍힌 점들이 스스로 연결되어 선을 긋고 경계를 만들기 시작해.


그 선들이 그어지고 휘어지며 면을 만들어 형태라는 것을 그려내기 시작해.


그려진 면 속에 색채들이 채워지고, 그 색채는 한 가지 색채 속에서도 밝고 어두움이라는 명암법을 이용해서


마치 그 면들이 실제 튀어나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해.



그것들은 단지 하나의 점이었고, 그냥 색이었는데 우리가 가진 정보와 인식은 그것을 세상으로 해석해.


여기까지가, 컵이야.


여기까지가 기둥이고, 창문이지.



여기까지가 내 몸이야. 그러니 이것만 나야.



그러니 그 경계를 지켜.


선으로 명확히 그어놨거든. 



여기까지가 나라는 것을 알고, 그렇게 시작해.


이 세상을 그렇게 살아가 봐.



그리고, 그런 분리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다시 그 면들이 선으로 분리되고, 그 선들이 점점이 부스러질 거야. 그 점들은 먼지처럼 사라지다 진공 속으로 사라져.



그때 다시 돌아오는 거야.


그어진 경계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는 이 캔버스 전체가 돼버릴 거야.



나는 분명 여기, 이 몸까지 선을 그어놨는데,


그런 선이 슥슥 지워지고, 점점이 사라지고, 그땐 보고 듣고 느끼게 될 거야.



내가 컵이라고 그었던 그 선과 점들도 나,


내가 기둥이라고 그었던 선과 점들도 나,


내가 너라고 그었던 그 선과 점들도 나라는 것을.



그러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거야.


내가 보고 듣고 만지고 느꼈던 모든 것, 모든 사람, 내가 속했던 모든 시공간 자체가 나라는 것을.



그리고, 그 세상이라는 캔버스를 그려낸 화가가, 


나이고 그 모든 것이었다는 것을.


그걸 알게 될 거야.



참 신비롭지? 


내가 만든 세상 속에서 하나의 점, 선, 면, 입체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것의 경계를 긋는 자가 나였다는 것.




그리고 그 선을 지우는 자도 나였다는 것 말이야.





 2018_05_22

Nevilly-sur-Seine,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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