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이 모든 이미지가 나야.
손가락 끝까지만 느껴지는 이 감각이 나를 이 몸의 형태 안에 제한시키고 있지만,
촉각이라는 감각뿐만 아니라, 시각으로서 인지하는 이미지조차 나야.
들리는 소리, 맛보는 모든 것들이 그냥 다 나라고 해.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나를 알고 있어.
내가 나라고 인지하는 그 범위를 말이지.
그런데 이제부터, 그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되는지 생각해볼까.
그림 속 그녀가 바라보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 그것을 담고 있는 실내의 풍경,
캔버스 가득 채워진 형태와 색채들을,
나는 내게 저장된 정보들로 그것들의 테두리를 정하고 세상을 분리시켜내.
테이블 위에서 커피 컵을 분리시키고, 거울과 바닥을 분리시키고,
거울 속 그녀의 모습과 그녀 스스로를 분리시켜.
점점이 찍힌 점들이 스스로 연결되어 선을 긋고 경계를 만들기 시작해.
그 선들이 그어지고 휘어지며 면을 만들어 형태라는 것을 그려내기 시작해.
그려진 면 속에 색채들이 채워지고, 그 색채는 한 가지 색채 속에서도 밝고 어두움이라는 명암법을 이용해서
마치 그 면들이 실제 튀어나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해.
그것들은 단지 하나의 점이었고, 그냥 색이었는데 우리가 가진 정보와 인식은 그것을 세상으로 해석해.
여기까지가, 컵이야.
여기까지가 기둥이고, 창문이지.
여기까지가 내 몸이야. 그러니 이것만 나야.
그러니 그 경계를 지켜.
선으로 명확히 그어놨거든.
여기까지가 나라는 것을 알고, 그렇게 시작해.
이 세상을 그렇게 살아가 봐.
그리고, 그런 분리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다시 그 면들이 선으로 분리되고, 그 선들이 점점이 부스러질 거야. 그 점들은 먼지처럼 사라지다 진공 속으로 사라져.
그때 다시 돌아오는 거야.
그어진 경계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는 이 캔버스 전체가 돼버릴 거야.
나는 분명 여기, 이 몸까지 선을 그어놨는데,
그런 선이 슥슥 지워지고, 점점이 사라지고, 그땐 보고 듣고 느끼게 될 거야.
내가 컵이라고 그었던 그 선과 점들도 나,
내가 기둥이라고 그었던 선과 점들도 나,
내가 너라고 그었던 그 선과 점들도 나라는 것을.
그러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거야.
내가 보고 듣고 만지고 느꼈던 모든 것, 모든 사람, 내가 속했던 모든 시공간 자체가 나라는 것을.
그리고, 그 세상이라는 캔버스를 그려낸 화가가,
나이고 그 모든 것이었다는 것을.
그걸 알게 될 거야.
참 신비롭지?
내가 만든 세상 속에서 하나의 점, 선, 면, 입체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것의 경계를 긋는 자가 나였다는 것.
그리고 그 선을 지우는 자도 나였다는 것 말이야.
2018_05_22
Nevilly-sur-Seine, Fr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