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탐사일지 4화
두 친구가 바티칸 가이드 투어를 가자,
뜻밖의 자유가 생겼다.
혼자만의 시간.
심사숙고 끝에 숙소를 오가며 눈여겨보았던,
대문이 유난히 예뻐 보이던 언덕 위의 바르베르니 미술관으로 향했다.
비가 내려 한적해진 미술관엔 우아한 분수와 계단이 고요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몇 점 뿐이지만 눈길을 사로잡은 카라바조 전시.
마음을 사로잡는 그림들, 천정화.
비 냄새가 스며든 뒤뜰에서 나는 ‘로마의 비밀의 정원’을 발견한 듯했다.
그때 떠올랐다.
늘 가보고 싶었지만 일정이 맞지 않던 안젤리카 도서관.
문을 닫기까지 한 시간.
달리면… 갈 수 있다.
비 맞은 돌길을 가르며 뛰었다.
숨이 차기 직전, 건물 깊숙이 숨겨진 도서관 문이 눈앞에 나타났다.
천장까지 빼곡한 책들,
지구가 우주 중심이라 믿던 시대의 천구의들,
유리관 속에서 숨 쉬는 오래된 필사본들.
그러다 문득,
내 앞을 지나쳐간 직원 한 명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놀라 두리번거리는데, 그녀는 2층 서고 한가운데에 다시 나타나 있었다.
순간이동?
책장이… 열렸다.
그녀는 스윽 그 안으로 들어가더니, 책장 뒤로 사라졌다.
비밀 통로.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로마의 한복판, 수백 년 된 도서관에서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문을 본 것 같았다.
그 문 너머를 상상하던 나는 고색창연한 서고 앞에서 피식 웃음이 났다.
도서관을 나서려는데 친구들에게 메시지가 왔다.
“뭐해? 우리 점심 같이 먹자.”
“벌써 끝났어? 성 베드로 성당은 봤어?“
조금 아쉬웠다.
이제 막 혼자만의 시간이 깊어지려던 참이었으니까.
그래도, 바티칸까지 갔는데 대성당은 꼭 봐야지 싶었다.
그러자 친구에게서 또 메시지가 왔다.
“성당은 다음에 봐도 되지. 너 혼자잖아. 지금 어디야?”
나 때문에, 무려 베드로 성당을 패스하다니.
그 한마디에 나의 반나절 ‘로마의 휴일’은 바로 막을 내렸다.
아이 참, 얘들아.
다시 친구들을 향해 달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