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놀부는.
비가 오는 날엔, 난 항상 널 그리워해-
서쪽 하늘은 벌써 노을로 물들고 있었다. 오늘의 할당량은 이미 마무리했지만 컴퓨터를 끄진 않았다. 집안을 가볍게 울리는 느낌으로 볼륨이 정교하게 맞춰진 스피커는 하루 종일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듣는 감상적인 노래. 웃고 떠들면서 시간을 스쳐 지나가다 보면 갑자기 붕 떠버린 기분이 들기 마련이었다. 감정은 언제나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내 이론은, 심리적인지 아니면 그저 우연인지, 꽤 정확했다. 넘치도록 즐겁다 보면, 자기 전에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흥부가 해외로 떠난지는 조금 되었다. 돌아올 날짜를 셀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내 탓이었다. 무엇 때문인지 유학을 망설이던 녀석을 모진 말로 내쫓아 버린 것은 말이다. 가끔 전화는 왔다. 아니, 생각보다 자주. 외로움을 타는 녀석이 웅얼거리듯 하소연을 하면 나는 웃기게도 말을 잇지 못했다. 힘내, 힘내. 힘이 든다는 사람에게 힘을 내라니. 그 와중에도 제비는 흥부가 귀국할 때마다 자꾸 귀찮게 굴었다. 다리 몽댕이를 분질러 버리겠어, 라며 주먹을 흔든 것은 내 기준에선 잘 한 일이었다. 착해 빠진 애를 데리고 왜, 부탁한답시고 자꾸 뭘 들고 오는데, 스팸은 먹지 않는다고 말해도 자꾸만 선물용 스팸세트를 사들고 오는 것은 무슨 속셈인가 싶었다. 요즘은 뜸해졌단다.
흩어진 내 눈물로 널 잊고 싶은데-
노래 가사가 갑자기 귀에 들렸다. 잊고 싶다는 걸까 잊기 싫다는 걸까. 이런 쓸데없는 것들로 골똘히 생각해보면 철학자 흉내는 참 쉬워 보였다. 괜찮은 철학자가 되는 것은 어렵겠지만. 블라인드를 내리려다 말았다. 해는 순식간에 떨어졌다. 한참 쳐다보고 있으면 잘 모르겠는데, 글자 몇 개 읽고 보면 어둠은 물감 번지는 것 마냥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럼 집안 불빛은 신나서 더 반짝거렸다. 나비는 저쪽에서 벌써부터 자고 있었다. 고양이는 야행성이라던데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물그릇을 채워주고 책장을 훑는데 아주 오래된 노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흥부와 놀부. 아마도 시리즈, 는 가장 최근 것이 반년은 넘었을 것이었다. 기억도 안나는 걸 보면. 난 특별한 이유 없이 나이가 많다는 것 하나로 놀부였다. 어렸을 땐 억울했지만 이게 무슨 이유인지 점점 놀부가 '괜찮아' 보이게 되면서 나름 놀부에 애착을 가지게 되었고, 그건 아마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흥부는.
마지막 쪽은 이렇게 끝나 있었다. 처음 보는 내용이었다.
흥부는 놀부에게 말했다. "형, 박씨를 심었는데, 대박이 났어. 반띵, 콜?"
콜. 뭔진 모르겠지만.
p.s. 토끼와 거북이를 중간에 끊게 되어 매우 아쉽습니다ㅠ
하지만 생각해둔 내용이 굉장히 현실과 닮아 있었다는 놀라운 일 덕분에, 뉴스가 더 재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간이 지나면 다시 꺼내오려구요. 하하. 새롭게 데려온 흥부와 놀부, 즐겁게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