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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리스 Jul 30. 2018

#1. 어느 여름날의 일기

작년이었던가.

 가끔은 한없이 잠만 자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처럼. 바람은 설렁설렁 머리칼을 흔들지만 쉽사리 가시지 않는 여름의 공기는 주변을 달궜다.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찰떡같은 댕댕이들'처럼 침대에 등과 배를 붙이고 뒹굴거리는 것이 낙일 때. 뭔가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던 때가 언제 있었는지 가물가물했다. 한구석에서 불타고 있던 열정은 현실의 불길에 밀려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듯한 버킷 리스트는 마음속에 간직해두고 해야지, 해야지, 하는 입속 버릇은 뱅글뱅글 맴돌기만 했다. SNS는 한창때에 비해 많이 가라앉았지만 요즈음 나는 다시 비활성화를 풀고 끊임없이 화면을 주르륵 내리고 있었다. 언제부턴지도 모르게. 휴대폰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준비물을 놓고 와 공중전화로 엄마를 찾던 시절은 아주아주 오래된 이야기인 마냥 흐릿했다. 1541 콜렉트콜을 아직도 기억하는데도, 지금 나는 휴대폰이 보이지 않으면 급하게 주머니를 뒤적인다. 보다 보면 더 이상 볼 것도 없는데 새로운 게 나올 때까지 똑같은 것을 읽어댄다. 심지어는 걸으면서도-작은 네모난 화면에 눈을 떼면 아주 중요한 뭔가를 놓칠까 봐. 중요한 게 뭔지도 헷갈리는 시대에.


 강의를 듣는 성실한 학생은 사실 뭘 할지 몰라서 등교를 하고 강의를 듣는 것일지도 몰랐다. 중간중간 밖으로 보이는 찬란한 햇살, 빛을 눈에 담으면서 귀로는 강의를 흘리고 토독이며 분필이 글씨를 쓰고 교단이 내는 덜컹거리는 소리, 뒤에선 이미 나른히 잠에 빠져들어 옆사람 폰에 웃긴 얘기가 있는지도 모르고-교수님은 사실 반쯤, 아니 완전히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게 강의를 하고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우러 나간다. 담배는 싫어. 몽롱히 흘러가는 생각을 타고 자기주장이 강한 녀석도 꼬리를 질질 끌며 같이 흘러갔다. 담배 피는 사람도 싫어. 티 내지 않았더니 괜찮은 줄 알고 앞에서 뻑뻑 피워대는 놈들을 생각했더니 또 뭉근히 성질이 올랐다. 허세 부리면서 어린애 취급하는, 착각하는 것도 싫고 오해하는 것도 싫어- 꽃도 좋고 바람도 좋고 햇살도 좋고 너도 좋은 시절이 있었는데. 새 대통령이 너무 좋아서 한창 덕질을 했지만 또 그것도 잠시뿐 내가 가진 에너지는 도대체 누가 가져간 건지 게을러터진 몸은 마음의 혈기를 감당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주변에서 다들 연애하는 것을 보면 내게도 달콤하게 웃어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 같으면서도 그걸 위해 또 꾸밀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귀찮았다.


 또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다 빨리 졸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저께 술자리에서 만난 본과 선배는 지나온 일을 생각하면 후배들이 안쓰럽다고 했다. 멈칫한 내 모습에 짐작하고 웃음을 빵 터뜨린 그 선배는 나 자신을 잃지 말라는 오묘한 얘기를 하고 일어섰다. 나 자신. 아주 오랫동안 담아왔지만 한동안 잊고 있었던 생각을 일깨웠다. 요즘 나는 나 같아요. 그 얘기에 덜컥 또 겁이 났지만 괜찮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들 정도로. 지금 나는 성장통을 겪으면서 컸는데, 어리고 싶기도 하고, 어른이고 싶기도 하고, 또 되돌아갈 수 없는 소중함을 더 생생히 기억하지 못해 슬픈- 이런 슬픔은 언제나 천천히 스며들고 아주 천천히 증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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