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이번 여름이 우리 삶에 남은 여름 중에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거야. 점점 이른 시간부터 찾아오는 취기와 연일 연년 최악을 갱신한다는 더위를 뚫고 야장 테이블 위로 날아든 서늘한 농담 한마디에 책임이라는 말은 더 이상 멋있는 것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언젠간 더위를 견디는 것을 의지의 문제이자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에어컨을 켤 때 저렴한 냉매에 스스로를 팔지 않으면, 저렴하고 달콤한 서늘함에 기준을 내주지 않고 버티면 어떤 구원이 내가 견뎌온 모든 여름을 되갚아줄 것이고 믿었다. 순진하게도, 창문을 열고 가만히 누워 움직이지 않은 채 한여름의 더위를 견디면서 한철 그저 흘려보내는 소시민적 아비투스. 캠든 운하니 청계천이니 서래섬이니 하는 물가에서 맥주 몇 캔을 까먹으며 간지러운 밤바람에 기대 열대야를 보내면 찐득함에도 한철의 미학이 있는 것이라 간절하게 믿었던 때가 있었는데: 이 여름을 사랑한 적은 없지만서도.
두꺼운 콘크리트 천장이 무덤처럼 드리운 벙커 아래에서 세 번의 여름을 맞는 동안 어느새 저 바깥은 더욱 뜨겁게 굳어가 버렸다. 알지도 못하게. 매해 여름 기온과 집값은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이제 여름은 낭만보단 척박함으로 점철된 계절.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지 나도. 가끔 다 떠내려 보낼 기세로 쏟아지던 사근동의 장마조차도 그나마 어느 한 주말을 겨우 적시고 반나절 여름볕에 언제 그랬냐는 듯 바삭하고 무용하게 말라버렸으니. 이럴 때 첫사랑의 소박함은 얼마나 순진하고 채비라는 것은 얼마나 무용한가.
아는지 모르는지, 야장 테이블에 놓인 캔맥주는 금방 미지근하게 식어갔고, 후끈거리는 아스팔트 위에 앉아 깃발을 흔드는 사람들의 열띤 항변이나 요란하게 돌아가는 실외기 바람은 안 그래도 열 오른 속을 더 뻗치게 해. 더워지겠지, 바닷물은 낮은 곳부터 차오를 테고, 사람 하나 누울 자리도 구하기 어려워져 우리는 서로에게 거슬리고 날카로울 일만 많아지겠지, 이 여름을 어떻게 해야만 하나: 같이 녹아들어야 하나, 이대로 말라 죽어버려야 하나. 그도 아니라면 어디 멀리 북유럽이나 캐나다 같은 곳으로 도망쳐야 하나.
허망하게 여기저기 흘러가는 생각 때문인지, 아니면 아스팔트가 진짜로 벌써 녹아버린 건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발은 계속 푹 푹 꺼지고, 애써 돌아온 집은 땀에 절은 티셔츠처럼 갑갑하게 내 몸을 짓눌렀다.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아무리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틀어봐도 그저 무거운 여름 공기의 순환일 뿐이라서, 이제부턴 더워질 일 투성이라서, 그냥 찬 바람이 고팠다. 책임이라는 말은 더 이상 멋있는 말이 아니게 돼 버렸고, 나는 그냥 에어컨을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