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서 쿠팡을 지우다
스마트폰 불편하게 사용하기
TV '나 혼자 산다'에서 성훈이 집에서 PC로 물건을 구매하는 장면이 나왔다. 결제를 해야 하는데 공인인증서가 없으니 결국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대신 결제를 부탁한다. 스튜디오의 다른 출연진들은 인터넷 뱅킹도 안 쓰냐고 핀잔을 주었고, 그 과정에서 힘들어하는 성훈의 모습이 웃음의 요소가 되었다
나중 회차에서는 성훈이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아 스스로 결제하는 진보된 성훈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데 난 그 모습마저도 생경하게 느껴졌다. PC 앞에 앉아서 구매를 결정하는 모습도, 결제를 할 때 공인인증서를 꺼내 번호를 입력하는 모습도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엔 결제를 위해 비밀번호 6자리만 누르면 되는 "스마트(폰) 시대"이기 때문이다.
나는 필요한 게 떠오르는 "순간", 쿠팡, 마켓컬리, 네이버 쇼핑을 검색하고 비밀번호 6자리를 눌러 결제해 버리고 만다. (말았던 적이 있다)
1."칫솔 떨어졌다."는 생각이 듦
2. 쿠팡 앱 터치
3. 검색창에 칫솔 검색
4. 마음에 드는 상품 터치
5. (구매하기) 터치
6. (장바구니) 또는 (바로구매) 터치
6. (결제하기) 터치
7. 결제 비밀번호 6자리 넣기
필요한 게 떠오르는 순간에서 결제에 이르기까지 1분도 안 걸릴 수 있다. 5번의 터치와, 칫솔, 6자리 숫자의 입력만으로 구입이 가능하다. 그리고 오후에 문 앞에 도착한다. 진짜 혁신이다. 정말 편리하다. 이걸 모르는 게 안타까울 정도다. 그런데 이건 스마트폰 쇼핑의 밝은 면이다. 고민의 여지없이 사야 하는 생필품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이가 친구 집에서 헬로키티 블록을 너무 잘 가지고 놀았다. 오후에 집에와서 아이랑 놀아주다가 문득 그 모습이 떠오랐다.바로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쿠팡에 '헬로키티 블록'을 검색한다. 43960원 정상가보다 40프로 할인된 가격이다.
'살까?아 맞다 가격비교를 해서 "합리적인" 구매 를 해야지.'
네이버에서 최저가를 검색하며 가격을 비교 한다.
'오 쿠팡이 제일 싸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구매를 자극한다. 다시 쿠팡에 가서 결제.
이런 식으로 산 장난감과 인테리어 소품들이 넘쳐난다.
만약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헬로키티를 잘 가지고 놀았던 모습이 떠오르더라도 PC로 가서 전원을 켜고 부팅이 되어 쇼핑 웹이 뜨는 과정을 그리 쉽게 할 수 있었을까? (옆에 있던 스마트폰을 들어 쿠팡 앱 클릭한 번으로 그 과정을 대신할 수 있다니 스마트폰 넌 참 대단하긴 하다.) 몇 번 더 그 생각이 떠오르고 그 과정의 번거로움을 감내해야 할 만큼의 필요성을 느꼈을 때 구매했을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구매의 편의성이 높아지자 충동구매를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검색과 결제가 편리해져서 충동구매도 잦아진 것 말고 어두운 면이 또 있다. 사고 싶은 어떤 물건이 떠오르는 '순간' 바로 스마트폰을 집어 들어 검색을 하며, 마음과 정신은 유체 이탈되듯 그 장소와 관계를 빠져나와 스마트폰 세계로 들어간다. 분명 그 어떤 물건을 검색하려고 들어갔는데, 우연히 보게 된 선정적인 기사 문구와 사진들에 이끌려 터치, 터치를 거듭하며 들어간다. 가끔은 내가 무얼 검색하려고 했는지 조차 까먹을 때도 있다. 처음에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스마트 폰을 집어 들었는데, 어느새 너무나 많은 잡동사니 정보들이 줄기차게 주의를 끌어당기고 나는 조종당하고 있다.
지금 스마트폰에는 쇼핑앱을 모두 지웠다. 구매가 필요할 땐 PC나 예전에 쓰던 스마트폰(에 있는 쿠팡앱)으로 구매한다. 필요한 게 생각났을 때 바로 구입할 수 없다. 하루의 정해진 어느 시간에 하루 동안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을 구입하면 된다. 그 모든 과정을 거치기까지 구매를 고민할 수 있도록 장치를 둔 셈이다.
덕분에 충동구매도 줄고 사고 싶은 게 떠올랐을 때 바로 스마트폰을 집어 들어 검색을 하는 바람에, '지금' '옆에 있는' 아이와 하던 놀이가 끊기는 일은 없다.
그러고 보니 최신 기종인 갤럭시 노트10 '스마트폰'을 정말 "불편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사용하는 나의 방식이다. 스마트폰이 나의 삶을 좀먹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