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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인류학자 May 14. 2020

택배 아저씨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당당했다

나는 아주 당당했다.
아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나 이건 불평하고 말 일이 아니었다. 민원을 넣어야 했다. 회사에서도 이런 민원이 접수되어야 시정조치가 내려지고 나 같은 불만을 품은 고객이 적어지게 될 테니 말이다. 민원을 넣는 수고가 정의롭다고 평할 정도는 아니지만, 건설적이 다고는 할 수 있겠다.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건다.
"거기 00 문고죠? 제가 책을 주문했는데, 안내 문자도 없이 무인 택배함에 두고 가셨더라고요. 제가 아이들 때문에 무인 택배함에도 편히 갈 사정이 안돼서 문 앞으로 배송지를 적었어요. 택배기사님 사정상 무인 택배함에 두고 가셔야 하셨다면 적어도 문자라도 주셔야는데, 계속 기다리기만 했어요. 여기 택배사로 배송이 오면 매번 이렇네요. 꼭 시정 조치해주세요."
"네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가 꼭 택배사에 그 부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했다. 아주 나이스 하고, 조리 있게 불편사항을 접수했으니 앞으로 나 말고도 다른 고객이 이런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조금 수고스러웠지만, 똑부러지게 잘했다.

어느 날, 집 밖을 나서다 주차장에서 한 아저씨를 보았다. 구부정한 자세, 새치 가득한 머리, 허름한 옷에 어딘가를 찾아 헤매고 계셨다. 그리고 손에는 책이 담겨있는 듯한 포장된 물건을 들고 계셨고, 그 뒤에는 파란색 '다마스' 봉고차가 세워 저 있었다. 다른 차들 가운데 작고 위태로워 보이는 그 차엔 내가 분노했던 그 택배사 로고가 적혀있었다.
"아저씨 11동 304호 찾으세요?"
"아... 아! 네!!"
"여기에요~ 저 주세요."
"아~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날의 그 당당함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아저씨에게 그때 일에 대한 자초지종을 들은 것도 아니었다. "당일배송 FTX(가칭)"은 나로 하여금 큰 트럭에 택배를 가득 실고, 세련된 전자기기를 손에 들고, 깔끔한 작업복을 입은 젊은 기사님을 상상하게 했다. 그런데 아저씨를 "만난" 순간, 내 마음대로 상상해버린 것, 그리고 분노하며 민원을 접수한 것, 남편에게 이 일에 대해 말하면서 보인 비난들이 머쓱해졌다.
그저 초라한 아저씨의 모습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을까?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아저씨를 만난 순간 그것이 아저씨의 최선이었고, 진심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에게는 불편하고 황당한 일이지만, 그 사람의 최선이고 진심이었다면 괜찮은 일이었다. 조금 손해 볼 수 있고, 수고로울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일로 깨달은 바가 있다.
그래 우리는 만나야 한다.
찰나이더라도 직접 대화를 하고, 얼굴을 보며 관계를 하는 순간, 열 마디 백 마디로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풀릴 수 있다.

악성 댓글로 자살한 유명 연예일들이 생각났다.
최진실, 설리, 구하라...
그들도 누군가의 가족으로 친구로 귀한 존재였을 것이다.
살면서 실수는 있을 수 있지만, 그 순간 진심과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실수를 돌이키고자 노력했을 것이고, 더 잘 살고 싶어 애썼을 거다.
그들의 기사에 악의적 댓글을 단 사람이 만약 그들을 아는 사람의 친구로 아주 잠깐이라도 소개받았다면, 그래서 찰나의 관계가 있었다면, 그래도 같은 댓글을 달 수 있었을까?

나는 다시 인터넷 책 주문을 하게 될 것이다. 그 택배사로 책이 전해진다면, 아저씨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아저씨~ 저희 집 입구 찾아 헤매지 마시고, 그냥 무인 택배함에 넣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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