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인류학자 Jan 13. 2021

그러다 결굴, 글쓰기가 멈춰졌다.

메세지가 없어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도 글을 쓰기 시작한다.

한동안 '엄마가 되고 나서'라는 매거진에 글을 쓰지 못했다.

글로 토해내고 싶은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들이 있었지만,

뭔가 글로 써내기에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점이 이 글을 매거진으로 내 보내도 될까라는 '자기 검열'을 하게 했다.

 

사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게 내 생각이 정리가 되어 남에게 읽힐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내가 느낀 감정과 생각을 얘기하고 싶었고 그러나 들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남편에게 얘기하기는 했지만, 엄마의 삶에서 느낀 통찰이 그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니 말하고 나서는 육아하는 엄마로서의 내 삶이, 내가 더 비루 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생각을 글로 적고 나니 나의 삶도 '작품'이 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좋았다.

또 다른 이유는 그냥 정리되지 않은 채로 있었던 일을 글로 적다 보면 어떤 육아서를 읽을 때 보다도 새롭게 내일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곤 했다.

   

그런데 그런 글들이 브런치에 옮겨서 읽히면서 글 쓰는 걸 주저하게 된다.

'이게 남에게 읽힐 만한 글인가?'

'이 글이 마무리가 될까?'

가끔은 발행은 하되 구독자에게 알림은 가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모순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

구독자가 읽지 않았으면.. 한다면 그냥 저장만 하고 말면 될 것이지,

관심은 받고 싶지만, 평가는 두려운 비겁한 마음이다.

그러다 결굴, 글쓰기가 멈춰졌다.


글쓰기는 나에게 치유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돌아왔다.

읽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위로가 될, 적어도 공감이 될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쓰지 않겠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마땅히 귀 기울여 들어줄 사람이 생각나지 않을 때

자판 앞으로 와 손가락을 움직여 자판을 두드리겠다.

그저 종이에 적어 노트를 덮을 때보다는,

브런치에 와서 글을 쓰고 "발행"을 누르면, 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기분이니까 조금 속이 시원하다.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기 위해 작은 골방이 아닌 '대나무 숲'을 굳이 찾아간 그 이야기 속 사내처럼 말이다.


앞으로 나의 글은 메세지가 담겨 있지 않을 수 있다. 온통 질문들로 끝나는 글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글은 다음 글을 이어가게 할 것이다.


앞으로 나의 글은 이랬다 저랬다 할 수도 있다. 이글에서는 이게 답이다 말했던 게, 다른 글에서는 저게  답이다라고 일관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정-반-합의 원리로 나는 마침내 합을 찾아갈 것이다.


앞으로 나의 글은 마무리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생각이 정리된 뒤에 글을 쓸 수도 있지만,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글을 쓰기 시작하다 마침내 질문으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누군가 답글로 그 생각을 정리해 줄 수도 있지 않은가. 꼭 글은 '선생님'이고, 댓글은 '방청객'이어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만한 메세지가 담겨 있지 않아도 글을 써도 괜찮아.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글감이어도 쓰기 시작해도 괜찮아."

 

오늘도 이렇게 내 마음과 생각을 글로 토해냈다. 글로 쓰다 보니 생각이 발전되고, 정리됐다.

아 기분이 좋다. 기운도 난다.

그래 이 맛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뷰티풀마인드 실천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