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혹은 냉정
첫 작품으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경비원입니다'를 다뤘다.
이 작품은 형의 죽음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미술관에 취직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형이 죽었다고 직장을 그만두고 경비원이 된다?
언 듯 그 행보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책의 내용 중 더 이상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삶은 살 수 없었다는 이야기에
그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에게 형은 형 이상의 존재였던 것이다.
저자의 상태는 프로이트 적으로 이야기했을 때 멜랑꼴리에 빠진 거다.라고 나는 해석했다.
저자의 리비도는 형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그것이 상실되었을 때.
그는 그 에너지를 예술작품에 투영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예술품에서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저자의 애도의 시간 즉, 49제가 미술관에서 10년 동안 벌어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상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주제가 좀 무거워 조금 신경이 쓰였다.
거의 초면인 분들과 이 이야기가 될까? 했지만
이미 발제문을 전송한 뒤였다.
모임은 예상대로 흘러갔다.
각자 자기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피하며 수위가 찰랑 거렸다.
하지만 서로 무슨 얘기를 하는지 느낌적 느낌으로 알아듣는 것 같았다.
그래도 유쾌했던 무드가 이 부분에서 멈췄다.
(사실 나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상실에 대처하는 방법은 뭐가 있나요? ”
“직면하는 거죠.”
참석했던 한 분의 대답에 난 ‘거기엔 큰 용기가 필요하겠죠!‘
하고 맹탕 같은 말을 말했다.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뒤가 찜찜했다.
용기가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용기를 가진다고 행동이 되지 않으니까.
그리고 다시 생각해 봤다.
왜일까?
불신 때문 아닐까?
내가 또다시 잘못된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는 스스로에 대한 불신말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상실 이후 가장 필요한 것은 냉정이다.
상실감에 나에게만 보이는 세상에서 벗어나기.
그건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냉정할 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