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듯이 살지 않아도 괜찮아
말로만 듣던, 영화에서만 보던
맛있는 요리가 가득하고 사랑이 떠다니는 나라, 이탈리아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나는 이곳에 왜 온것일까.
너는 무엇을 원하나. 나는 무엇을 원할까.
자유를 찾아 왔을까?
너무나 기본적인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기회를 찾아 왔을까?
꿈에 그리던 해외에서 일하는 미래의 나를 찾으러?
쉬러왔을까?
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나의 머리와 나르게 내 마음과 몸이 지쳐 제발 쉬라고 보내는 신호를 무시할 수 없어서?
그것도 아니면 대체, 난 어쩌다 왜 이곳에 온것일까.
이곳에선 모든 것이 급하지 않다.
사람들도 급하지 않고, 내 일정도 급하지 않고, 밥도 급하게 먹을 필요가 없다.
오늘 나의 일정은 오전에 학교를 가 잠시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밥을 먹고,
식료품점에 들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씨없는 청포도를 사서 집으로 와 글을 쓰는 것이다.
저녁에 뮌헨에서 넘어오는 남자친구를 데리러 가는 것 외에는
현재 시간 오후 3시 50분, 딱히 해야 할 일이 없다.
한국에서는 죄책감이 들었다.
지금 할 일이 없다는 것이, 분명 할 일이 있는데 떠올리지 못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라고
느껴졌었다.
이탈리아 나의 방 창문 옆 책상에 앉아있는 지금, 의자에 앉아 바람을 쐬고 햇빛을 쬐는 것이
나의 할 일이다.
가을이 다가왔음에도 따가운 햇살과 이에 반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앉아있다.
이것이야 말로 휴식인걸까.
어쩌면 휴가 때, 방학 때 몇일 가능하다고 여겼던 하루가
이곳의 사람들과 문화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는 것을 느낀 후
내가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인가?
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나에게 던지고 있다.
미친듯이 살지 않아도 틀리지 않은 삶이라면, 나는 이쪽 삶을 선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