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 라이브러리 / 뉴스뮤지엄 연희 전시
만약 하나의 기억만 남기고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면, '영원히 간직하고픈 단 하나의 기억' 당신에겐 무엇인가요? '이터널 라이브러리'에 당신의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도서관에 소중히 저장된 후 우연히 방문한 누군가에게 랜덤하게 열람됩니다. 한 조각의 빛과 같은 당신의 기억을 데이터의 영원성을 보장하는 블록체인에 새겨 이 세상에 영구히 보존할게요.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전시에 대한 스토리를 보게 되었다. 관객들이 참여하는 인터랙티브 전시로 사람들이 남긴 '이번 생의 단 하나의 기억'을 들을 수 있고 녹음실의 음향기기를 작동해 당신의 기억을 남겨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전시이다. 이 저자의 인스타그램에는 이런 문구가 남겨 있다.
수많은 날들 속, 단 하나의 기억을 찾는 여정에서 당신이 진정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그 힌트를 발견하게 될지도 몰라요.
헤드셋을 끼고 의자에 앉아 버튼을 누르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기억들이 들려져 온다.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져 오는 소중한 기억에 대한 스토리를 들으면서 왠지 모를 위안을 받았다. 낯선 땅에서 고유한 나로 존재했던 기억, 사랑하는 이에 대한 기억, 누군가의 온기, 사랑하는 사람의 팔베개. 저마다의 스토리들.
서사의 위기란 책에 따르면, 어루만짐은 치유력이 있다고 말한다. 접촉은 친밀함과 근원적 신뢰를 형성하며 고통과 질병으로 이끄는 긴장과 막힘을 풀어낸다. 접촉의 빈곤은 우리를 병들게 하며 고립시킨다.
그런 이유에서인진 모르겠으나 나에게 가장 떠오르는 기억은 누군가와 허그했던 순간들이었다. 사람의 온기가 내게 전해졌던 그 순간들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손을 잡아주었던 기억, 누군가와 허그했던 기억들은 내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나에게 이 메시지가 그렇게 중요했을까. 그리고 그 메시지가 큰 위안이 되었을까.
꽤 오래 전의 일이지만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 장례를 다 치르고 친한 언니를 만났을 때 언니가 나를 꼭 안아주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관계에서의 모든 포옹의 순간들, 내가 기억하고 싶은 한 가지의 기억이 있다면 그 포옹의 순간들이었다.
나는 녹음실에서 그 순간을 입 밖으로 꺼내며 나에게 그 순간들이 사랑으로 기억된다는 걸 느꼈다. 사랑의 표현, 누군가가 누군가를 안는 것, 어쩌면 내 깊은 고통은 고립된 어떤 느낌들과 가깝다고 생각되었다.
내 안에 있던 말들을 입 밖으로 내뱉어 녹음으로 기록되는 경험은 나에게 너무나 특별했다. 날 것의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언어라는 형태로써 발화되었고 그 목소리를 듣는 것이 다소 어색했으나 이 경험을 통해 불분명한 느낌이 조금 더 분명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접촉이라는 것은 내게 꽤 중요한 경험이라는 것과 그것이 내게 시사하는 건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진다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이 '연결'이라는 키워드는 꽤 중요하다고 여겨지며 이런 생각들은 '무엇과 연결될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이 전시가 끝나고 '나는 어떤 기억들을 만들며 살아가고 싶은가?' 에 대해 고민하고 싶어졌다. 이전의 기억들을 돌아봤을 때 누군가와 접촉하는 경험이 내게 소중한 단 한 가지의 기억이라고 말한다면, 앞으로는 어떤 경험들을 만들어가고 싶은지에 대해 답을 하고 싶어진 것이다.
삶에는 내가 의도한 일과 의도하지 않은 일들이 있다. 의도하지 않은 일은 선택할 수 없는 일들이고 의도한 일은 나의 선택과 관련되어 있다. 미래의 '나'에게 어떤 기억들을 들려주고 싶은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 그 미래의 영역을 '내가 하고자 하는 경험, 내가 기억하고 싶은 일들'로 채워가기를. 미래의 '나'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무엇일지를 한 번쯤 떠올려 보기를.
나에게 오늘의 전시는 과거의 기억을 넘어서서 미래의 '나'에게 주고 싶은 기억은 무엇인지 묻는다. 더 사랑하는 것. 사랑의 순간들을 많이 만드는 것. 사랑할 수 있는 순간들을 놓쳐버리지 않는 것. 사랑을 회의주의적인 생각으로 덮어버리지 말기를. 사랑을 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