쏙'집어 라오
"그럴 거면 호텔 가서 처먹어."
나의 소울메이트 언니와 오래전 서울 동대문 시장을 둘러보던 날이었다. 허기진 배도 달래고 발도 쉴 겸 식당 한 곳을 골라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북적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둘이 앉을 만한 테이블을 겨우 잡아서 앉았다. 음식을 주문했고 기다림이 지루해질즈음 음식이 나왔다.
허기진 배가 채워지면서 얘기도 나누려는데 식당 직원의 손이 양해도 구하지 않고 우리 음식이 차려진 식탁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수저통도 가져가고 양념통도 가져갔다. 그 덕분에 집고 있던 국수가락을 다시 국물 안으로 강제 입수 시키기를 몇 차례.
"호텔이었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 몇 번째야 이게."
짜증이 났다. 하지만 사실은 호텔씩이나 되는 곳에서 호텔인으로 일하는 티를 내고 싶었던 걸까. 일종의 허세였고 잘난'척'이 숨어있었다. 언니의 레이더망에 그 허세와 '척'이 걸려들지 않았을 리가 없었던 거다.
언니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국수그릇에 시선을 둔 채 젓가락으로 국수를 고르고 있었고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럴 거면 호텔 가서 처먹어."
언니는 차분했지만 내게 쏜 건 전기충격기 같았다. 전기에 감전됐던 것 마냥 그날의 기억은 이게 전부 다다. 식당에서 나눈 어떤 대화도 기억나지 않지만 언니의 그 한마디는 수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부터 쭉 정신못차리거나 그런 상황에 처할 때면 그 말이 떠올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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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우유가 왜 없어??!!?"
이곳은 라오스의 한인마트 안이다. 라오스에 사는 교민분들에게는 엄마네 같은 곳이고 여행차 온 분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시간을 잘 맞춰오면 현지에서 만든 한국식 떡, 반찬 등을 온기가 남아 있는 중에 살 수 있다. 특히 우리 식구는 팥고물 든 찹쌀떡을 좋아해서 자주 참새가 되어 방앗간에 들른다. 그런데 이곳에서 수년 전 그때의 동대문 일화가 자꾸 떠오르는 중이다.
아까부터 계속 정신 못 차리는 어떤 시추에이션에 신경이 쓰인다. 이곳 한인마트에 직원분들은 라오스 현지인들인데, 어떤 한국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서울우유 없어!? 서울 우유가 왜 없어?!?" 한국어로 아주 또박또박. 반말로.
사실 내가 알기로는 라오스 교민분들은 한인마트의 물건이 입고되는 종류를 대부분 파악하고 있고 라오스에 우유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모르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유통기한도 짧은 신선한 우유가 한국에서 이곳까지 수입되는 것도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닐 거다. 라오스에 우유가 없는 것도 아니고.(마트마다 저지방, 락토프리, 커피전용 우유까지 다양하다.) 이런 이유로 비추어봤을 때 그 사람은 관광을 온 사람일 확률이 높아 보였다.
[현지 여러 마트에서 여러 우유가 판매되고 있다.사진은 라오스의 마트중 한곳.]
물론 백번 양보해서 영어도 아닌 전혀 모르겠는 언어로만 소통되는 곳이 낯설고, 조금 겁도 나다 보니 되레 센척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더욱 조용하게 혹은 지혜롭게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함이 옳았으리라. 그가 있는 곳이 고객이 대부분 한국인인 '한인마트'란 걸 모르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렇게 계산대 직원들에게 괴성에 가까운 고성을 쏘아대던 사람은 홀연히 나가버렸다. 결국 직원들과 눈으로 미안함과 괜찮냐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미처 주인을 따라나가지 못한 망신스러움과 민망함을 치우는 건 마트에 남아있던 손님들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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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기 여행자보다는 장기여행자에 가까울까. 단기여행으로는 볼 수 없는, 매일 보는 각색의 라오스 사람들과 매주 가는 라오스 시장 안에서 이들의 삶이 결코 내 나라 사람들의 삶보다 가볍지도 하찮지도 않다는 것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모두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고 더 나은 생활을 꿈꾸는 부모이고 자식들이다.
부디, 그런 사람들이 주인 되어 살고 있는 땅으로 여행을 간다면 조심스럽게, 행여 나의 눈짓 하나로도 그곳을 다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나라가 못살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고 무례하게 굴 수는 결코 없다는 것도 진지하게 가슴팍에 딱 새기고 다니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제발
"서울우유'는 서울 가서 처마시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