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점이 그게 뭐라고
“언니, 초등 단원평가 점수는 안 중요해요~ 다 시키면 잘하는데 뭘 신경 써요~ 나중에 열심히 하면 잘하는 아이들 많다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우리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칭찬만 해줘요.”
쿨한 척 말했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 쿨하지 못하다.
엄마표 학습이란 참 묘하다. 아이의 점수가 마치 엄마의 실력처럼 평가되는 기분이 든다. 엄마들의 세계는 진짜 그런 세계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신경이 쓰인다. 엄마들을 만나지 않아도 소문나는 신기한 세계.
“학원도 안 보내고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래도 진짜 대단하다, 집에서 다 시키다니.”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 학원에 보내야 하나? 아니면 이 말을 진심으로 하는 걸까?
학원도 안 보내고 뭘 하느냐는 질책 같다.
‘점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스스로 되뇌었지만, 아이가수학 쪽지 시험을 보고 온 날이면 내가 괜히 예민해진다.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어떻게 됐어?"
역시나, 점수가 아쉽다. 100점이 아닌 것도 그렇지만 실수로 틀린 문제들 투성이다.
‘덜렁덜렁, 대강대강이 몸에 뱄니?’ 하는 마음에 아쉬움이 주렁주렁 나오려는 걸 그 아쉬움을 꾹 참고
“수고했네, 잘했어.”라고 겨우 내뱉는다.
“틀린 문제 보니 실수네~” 쿨하게 말하는 우리 집 그녀는 여전히 해맑다. 그녀의 마음속은 태평성대이다.
그래도 실수까지 사랑하기란 속세에 찌든 이 엄마는 조금은 속상하네.
열심히 알려주고 시험 때 눈 크게 뜨고 문제 잘 읽고 풀라고 단단히 말해 주었는데, 집에서 공부해서 이런가 하면서 의심의 싹이 튼다.
100점 그게 뭐라고 이렇게 될까 싶다. 인생의 점수도 아닌 것을
엄마표 학습이라는 꼬리표를 떼면 내 마음이 좀 편해질까? 당장 학원에 등록해서 내 맘이라도 편하고 싶다.
공부하다가 실랑이라도 하는 날엔 “그럴 거면 학원가라”하며 시작해서 줄줄이 비엔나 같은 잔소리가 끊이지 않고 나온다.
애써 아이에게는 숨기지만, 비집고 나오는 점수에 대한 본심이 못내 미안한 밤이다.
엄마표학습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사교육에 치여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삶을 살아가게 만들어고 싶지 않아서 선택했으며 , 스스로 학습하는 습관을 잡아주고 싶었기 때문 아닌가.
그런데 아이 점수를 보고 초심을 잃은 엄마는 오늘도 반성을 한다.
한 번의 시험 점수보다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더 가치 있고 소중하다는 걸 되새기자.
우리 집에 온 귀한 손님을 대하듯,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따스하게 지켜주고 싶다.
아이의 일호팬이 되어 아이의 일상을 응원해 주고, 독립된 한 사람으로 세상을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힘을 기를 수 있게 뒤에서 은밀히 도와주는 키다리엄마다.
엄마표 학습이 쉽진 않지만, 그래도 이 방법을 지지한다. 물론 학원을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언제든 학원을 보내고 싶은 활짝 열린 마음의 엄마다.
다만, 우리 집 그녀는 학원에 가지 않겠다는 선언에 불가피하게 나는 엄마표 선생님이 되어있다.
오늘도 주문을 외우자.
‘화내지 말기’, '짜증 내지 않기', '안아주기'
그렇게 다정한 엄마가 되어가 보자.